그런데 잘 보면 다 할리우드산 영화들이다. 한국 사람들이 주로 찾는 외계인 영화는 배경이 미국의 뉴욕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 관객들은 외계인이라 함은 자고로 지구상에서 제일 부강한 나라의 가장 유명한 도시인 뉴욕에 출몰해야 납득을 하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도 외계인을 다루는 영화가 많지는 않아도 몇몇 눈에 띄는 작품들이 있다. 예컨대 영화 ‘지구를 지켜라’나 ‘외계+인’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 두 작품을 비롯한 한국산 외계인 영화는 대부분 흥행에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뉴욕에 나타난 외계인은 익숙하게 받아들이면서 서울에 나타난 외계인은 어찌하여 낯설기만 한지.
사실 그 차이는 한·미 양국 영화 산업의 규모가 다른 것에서 기인한다. 거대한 우주선이 지구의 대기권을 뚫고 쳐들어와 안에서 쏟아지듯 몰아쳐오는 수천수만 외계인들의 침공을 다루려면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필요하다.
‘어벤져스’의 관객 혼을 쏙 빼놓는 극강의 특수효과는 고사하고 ‘아바타’나 ‘맨 인 블랙’만큼의 정교한 CG 결과물도 낼 수 없는 한국 영화의 소소한 자본력은 수천수만이 아닌 딱 한명의 외계인을 등장시켜 그 주변의 서사에 집중한다.
그 대표적인 영화가 ‘지구를 지켜라’다. 흔히 ‘저주받은 걸작’이라 불리는 이 영화는 2003년 개봉 당시 극장가에서는 철저하게 외면받았다. ‘올드보이’와 ‘살인의 추억’이 함께 공개된 그 해 한국영화의 황금기 한가운데서 개봉했지만 관객수가 10만명이 채 되지 않았다.
이 영화는 처음 공개 당시 외계인 영화임은 숨기고 코믹스러운 주인공의 얼굴을 가득 담은 포스터로 영화를 보기도 전에 오해를 불러일으킨 실책이 있다. 그 탓에 당시에 외면 받은 이 영화는 2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희대의 걸작으로 계속 언급되는 작품이다.
저예산 영화 ‘지구를 지켜라’에서 만났던 외계인은 그 어떤 특수효과도 필요 없는 평범한 중년 남성이다. 주인공 병구(신하균)는 악덕 자본가이면서 중소기업의 사장인 강만식(백윤식)이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임을 굳게 믿고 있다.
깊은 산 속에서 수제 마네킹이나 만들며 근근히 사는 병구는 외계인 강만식을 고문하기 위해 온갖 기상천외한 짓거리를 서슴지 않는다. 무슨 짓을 벌이냐면 텔레파시 능력이 있는 머리카락을 싹 밀어버리고, 신경시스템 약화를 위해 발등을 때수건으로 밀어서 피부를 벗겨낸 뒤 물파스를 바른다. 또한 300v 이상의 전기고문을 가하는데 강만식은 용케 죽지 않고 견뎌낸다.
그 이후 벌어지는 더욱 놀라운 이야기 전개는 차치하고, 여기까지의 영화 속 설정을 보면 한국에서 그려지는 외계인이라는 것은 이 정도의 기발함은 갖춰야 큰 돈 쓰지 않고 활용이 가능함을 알 수 있다. 대개 한국의 외계인은 이처럼 다소 코믹스럽거나 우스꽝스럽고 기발한 설정과 함께 해야 비로소 영화적 소재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관객을 설득시키지는 못해서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거의 없다.
이후 약 20여년의 세월이 흘러 한국 영화산업의 규모도 어지간히 커졌을 때, 만드는 영화마다 거의 다 성공시켰던 흥행불패의 최동훈 감독이 본격적인 외계인 영화를 들고 왔다. ‘외계+인’이다. 무려 360억의 제작비를 들였고 최동훈 감독에 네임드 배우들이 떼로 출연한 바, 영화의 기대감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결론만 말하면 ‘외계+인’은 1부 2부 모두 처참하게 실패했다. 외계인이 등장하고 고려시대와 현대를 오가는 시간여행 등 흥미로운 요소가 가득한 상업영화였지만 관객을 설득시키지 못했다. 기괴한 모습으로 서울 한복판에 나타난 외계인을 한국의 관객들은 여전히 낯설어했다.
이러한 경향은 외계인 영화뿐 아니라 이야기의 배경이 우주로 향하는 SF 영화들 대부분에 해당된다. 이 영화들은 한국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영화 ‘승리호’나 ‘더 문’ 등이 대표적인데, 화려한 CG 기술이 약간의 호평을 받긴 했으나 상업적으로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한국사람들은 SF 영화를 싫어한다고 오해하곤 하는데 ‘인터스텔라’나 ‘그래비티’, ‘마션’ 등 한국에서의 흥행 성적을 보면 또 그렇지도 않다. 결국 한국 관객들은 한국이 배경인 SF를 보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한국 관객들은 해외 영화의 경우 말도 안되는 SF적 설정을 자본으로 빚어낸 스펙터클과 맞바꾼 영화적 허용으로 너그럽게 봐주지만, 한국 영화는 조금이라도 무리한 설정이나 맞지 않는 서사가 있으면 참지 않는다. 한국의 SF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할리우드 영화보다 더 디테일한 묘사와 더욱 더 그럴듯한 서사가 반드시 따라와줘야 한다. 그 기준을 충실히 만족시킨 한국영화는 아직 안 나온 것 같다. 한반도 안에 갇힌 우리의 시야는 한국에 SF 장르의 불모지라는 오명을 씌웠다.
이런 와중에 오늘(15일) 개봉한 영화 ‘호프’는 한국영화 역사에서 꽤 중차대한 임무를 본의 아니게 수여받은 꼴이 됐다. 나홍진 감독은 그러한 영화계의 시선에 질색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영화 ‘호프’는 최근 10여년 동안의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확신의 화제작이다.
공개된 ‘호프’의 예고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대낮에 외계인이 출몰하는 본격 SF 장르 작품이다. 느와르와 오컬트를 오가며 그 누구도 어찌하지 못하는 어떤 거대한 힘이나 운명에 짓눌리는 인간의 모습을 지독한 서사로 표현했던 나홍진 감독이 이번에는 외계인을 등장시켰다.
현재까지의 반응은 호불호가 엇갈리고 있으나 현재 사전 예매량이 60만장 이상이라고 하니 괜찮은 출발이다. 한국 영화 사상 최대의 제작비를 들였고 마이클 패스벤더와 알리시아 비칸데르 등 해외 유명한 배우들이 참여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이 영화 속 외계인은 어느 정도의 퀄리티와 서사로 한국의 관객들을 설득시킬 것인가.
결과가 어떨지는 아직 판가름 나지 않았지만 영화 ‘호프’의 흥망이 한국영화의 SF 장르가 살아날지 여전히 척박한 불모지로 남을지, 첫 이정표가 될 운명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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