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건의 심리렌즈] 김지영·윤수영의 동반 샤워는 왜 불편함을 샀을까?

  • 도덕 기반 이론으로 본 불쾌감과 악플 심리

사진유튜브 채널 김지영 영상 캡처
[사진=유튜브 채널 '김지영' 영상 캡처]

김지영이 사과했다. 그는 지난 7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SBS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 출연 이후 떠들썩했던 남편과의 동반 샤워 장면을 언급했다. "너무 TMI였다", "이런 것까지 알고 싶지 않았다"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쏟아진 데 대한 피드백이었다.

김지영은 "많은 분들이 불쾌해하셨다"며 "그걸 보고 '내가 너무 다가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남들이 알고 싶어하지 않을 수 있는데, 제 삶에서 그게 너무 당연한 부분이다 보니 그 부분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침식사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방송 촬영에 익숙하지 않아 그 장면이 그렇게 크게 부각될 줄 몰랐다는 설명이다. 시청자의 입장을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과는 차분했고, 불쾌했다는 반응을 무시하지도 않았다. 다만 남편을 향한 악플에는 속상함을 드러냈다. 방송 장면 하나만 보고 남편의 성격이나 부부 관계를 단정하는 반응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사진유튜브 채널 김지영 영상 캡처
[사진=유튜브 채널 '김지영' 영상 캡처]

여기서 먼저 짚어야 할 것이 있다. 부부가 함께 샤워하는 게 이상한 일일까. 아니다. 부부 사이 그 정도의 친밀함은 있을 수 있다. 그 친밀함이 카메라와 자막, 패널의 리액션을 거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을 뿐이다.

사랑은 볼거리로, 친밀함은 소재로, 사생활은 클립으로 탈바꿈한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는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굳이 이걸 내가 봐야 하나"라는 반응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의 책임을 김지영·윤수영 부부에게만 돌릴 수 있을까.
 
▲ 부부의 일상은 어떻게 '낯 뜨거운 장면'이 됐나

방송은 출연자가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다. 무엇을 찍을지, 어떤 대화를 살릴지, 어떤 자막을 붙일지, 어느 장면을 선공개 영상으로 뽑을지는 제작진의 선택이다. 출연자에게는 지나가는 일상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제작진의 손을 거치면 그 장면은 프로그램의 포인트가 된다.

부부가 "우리는 같이 샤워한다"고 말한 순간, 제작진은 이를 신혼부부의 특이한 애정 표현으로 배치했다. 패널의 놀란 반응은 그 장면을 더 자극적으로 만들었다. 시청자는 김지영 부부의 실제 일상을 본 게 아니라, 방송 문법으로 가공된 일상을 본 것이다.

 
사진SBS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 영상 캡처
[사진=SBS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 영상 캡처]

그렇다면 비판의 방향도 달라져야 한다. "부부가 왜 저러냐"가 아니라 "제작진은 왜 이 장면을 이렇게 소비했나"라고 물어야 한다. 사생활의 노출 수위를 결정한 사람은 출연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중의 분노는 눈에 보이는 대상을 향한다. "이 장면이 방송에 적절했나"라는 질문이 너무나 쉽게 "저 부부는 이상하다"는 말로 바뀐다.
 
▲ 도덕은 때로 '싫어하는 마음의 포장지'다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도덕을 "우리가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취하는 태도"라고 정의했다. 어쩌면 냉소적이고, 도덕을 너무 비틀어 본 문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누군가를 둘러싼 논란을 볼 때 이 문장은 자주 맞아떨어진다.

사람은 누군가를 싫어할 때 그 마음을 그대로 말하지 않는다.

'그냥 보기 싫다.'
'잘사는 모습이 아니꼽다.'
'예쁜 여자가 사랑받는 게 거슬린다.'
'괜히 저 부부가 마음에 안 든다.'

이렇게 말하기엔 너무 사적이고, 초라해 보인다. 그래서 자신의 불쾌감을 도덕의 언어로 바꾼다.

'품위가 없다.'
'선을 넘었다.'
'가족 예능에서 저게 말이 되냐.'
'상식적으로 낯 뜨겁다.'
'공인이면 조심해야 한다.'

모든 도덕적 비판이 가짜라는 뜻은 아니다. 불편했을 수 있고, 부부의 샤워 습관을 시청자가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느낄 수 있다.

다만 불편함이 비판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을 미워할 명분으로 바뀌면 위험하다. '내가 보기 민망했다'와 '저 부부는 문제 있다'는 다른 말이다.

도덕은 종종 이 경계를 흐린다. 사적인 반감이 공적인 비판처럼 보인다. 질투는 품위의 언어를 입고, 불쾌감은 상식의 얼굴을 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향한 불쾌감은 남을 향한 감정이면서, 나를 향한 문이다. 내가 유독 거슬려 하는 장면에는 이유가 있다. 그 안에는 내가 억누른 욕망, 인정하기 싫은 질투, 오래된 수치심, 혹은 스스로 금지해온 감정이 숨어 있을 수 있다. 
 
▲ 샤워 장면이 건드린 첫 번째 버튼, 순수와 오염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의 도덕 기반 이론은 이 논란을 나눠보는 데 유용하다. 이론에 따르면 사람의 도덕 판단은 돌봄/피해, 공정/속임, 충성/배신, 권위/질서, 순수/오염, 자유/억압이라는 여섯 기반 위에서 작동한다. 같은 장면을 봐도 누군가는 약자의 상처를, 누군가는 불공정을, 누군가는 질서의 훼손을 먼저 읽는다는 것이다.

김지영·윤수영 부부의 동반 샤워 장면에 불편함을 느낀 사람들 중 상당수는 순수/오염(Sanctity/Degradation) 기반에 반응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말하는 순수/오염은 위생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장면이 천박하게 느껴질 때, 너무 노골적이라고 느껴질 때, 혹은 품위가 훼손됐다고 느껴질 때 반응하는 도덕 기반이다. 

진심, 친밀함, 사생활처럼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할 것이 구경거리나 농담처럼 소비될 때 불편함을 느낀다.

'소중한 걸 왜 저렇게 가볍게 말하지?'

 
사진SBS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 영상 캡처
[사진=SBS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 영상 캡처]

부부가 같이 샤워하는 일은 부부 사이에선 자연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사적인 애정이 대중의 구경거리가 됐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그 장면이 다정함보다 민망함으로 먼저 들어온다.

'부부 사이의 은밀한 일은 둘만 알고 있으면 안 되나?'
'사랑스러운 게 아니라 낯 뜨겁다.'

보수적이라서 생기는 반응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사적 영역의 경계를 갖고 있다. 누구에게는 손잡는 장면까지 괜찮지만, 누구에게는 침실 대화부터 불편하다. 누구에게는 부부의 샤워가 일상적인 애정 표현이지만, 누구에게는 방송에 올릴 수 없는 내밀한 영역이다.
 
▲ 두 번째 버튼, 방송에는 선이 있다는 믿음

두 번째로 살펴볼 수 있는 도덕 기반은 권위/무질서(Authority/Subversion)다.

이 기반은 예의, 절차, 질서를 중요하게 본다. 말을 계속 끊거나, 합의된 역할과 절차를 무시하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이번 논란에 대입하면 "부부 사이에서는 그럴 수 있어도, 지상파 예능에 선이 있는 것 아니냐"라는 식으로 반응했을 가능성이 있다.

'가족들이 보는 예능인데?'
'지상파에서 이 정도 이야기를 해도 되나?'

이들에게 불편함의 핵심은 욕실이라는 사적 공간이 공적 방송으로 넘어온 점이다. 사회에는 암묵적인 선이 있고, 집에서 할 수 있는 말과 방송에서 할 수 있는 말은 다르다. 친구끼리 할 수 있는 농담과 가족 예능에서 할 수 있는 농담도 다르다.

권위/무질서 기반이 강한 사람은 그 선이 무너질 때 불편해한다. 이들은 김지영 부부의 친밀함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출연자와 제작진이 선을 지켰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말의 중심에는 질서가 있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질서, 방송이 지켜야 할 수위, 출연자와 제작진이 알아서 조절해야 한다는 기대… 그런 것들이 깨졌다고 느낄 때 도덕적 불쾌감을 느낀다.

문제는 이 불쾌감도 쉽게 사람을 향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기반에서라면 제작진을 더 강하게 비판하는 것이 맞다. 공적 방송의 선을 관리하는 쪽은 제작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노는 화면에 나온 부부에게 집중됐다. 질서 위반의 책임이 가장 잘 보이는 사람에게 떠넘겨진 것이다.
 
▲ 세 번째 버튼, 알고 싶지 않은 것을 알게 됐다는 불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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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축은 자유/억압(Liberty/Oppression) 기반이다.

통제, 압박, 강요를 받는다고 느낄 때 마음속에서는 '내가 결정할 일을 왜 네가 정하지?'라는 반응이 올라온다. 거절했는데도 계속 압박하거나, 선택을 강요당할 때 느끼는 불쾌감이다.

이번 논란에서는 "부부가 함께 샤워하는 건 자유지만, 그걸 내가 알고 싶었던 건 아니다"라는 반응으로 나타났을 수 있다. 시청자는 누군가의 사생활을 볼지 말지 선택하고 싶었는데, 방송은 그 장면을 예능 소재로 밀어 넣었다. 이때 불편함은 민망함을 넘어, 원치 않는 친밀함을 강제로 접한 듯한 느낌으로 번진다.

'왜 나한테 이런 정보를 주지?'
'그건 당신들끼리 알면 되는 일 아닌가?'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사생활을 갑자기 보게 됐다.'

우리는 타인의 사생활을 궁금해하면서도, 너무 가까이 들어오면 불편해한다. 연예인과 인플루언서의 일상은 보고 싶지만, 욕실과 몸의 영역까지 알고 싶지는 않을 수 있다. 가까이 보고 싶지만 너무 가까운 건 싫다. 그 모순이 리얼리티 예능의 힘이자 위험이다.

 
사진유튜브 채널 김지영 영상 캡처
[사진=유튜브 채널 '김지영' 영상 캡처]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사생활을 팔아 시청자의 호기심을 채운다. 하지만 사생활이 지나치게 가까워지는 순간 시청자는 뒤로 물러난다. '이건 내가 요청한 친밀함이 아니다'라고 느낀다. 김지영 부부의 샤워 장면은 이 선을 건드렸다.

이때 불편함은 억압감과 닮아 있다. 누가 강제로 본 것도 아닌데, 심리적으로는 강제로 알게 된 느낌이 든다. 김지영이 말한 "남들은 이것까지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건데"라는 해명은 이 지점을 짚는다. 출연자에게는 일상이었지만, 시청자에게는 원치 않은 정보였다.
 
▲ 불편함은 왜 악플로 바뀌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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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순수/오염의 기준에서 민망할 수 있고, 권위/무질서의 기준에서 방송 수위를 문제 삼을 수 있다. 자유/억압의 기준에서 'TMI'라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가능한 반응과 정당한 공격은 다르다. "방송에 나올 장면은 아니었다"는 말에서 멈추지 않고, 일부 반응은 김지영·윤수영 부부를 향한 조롱으로 번졌다. 남편의 표정과 분위기를 단정하고, 부부 관계를 예측하고, 인격을 평가했다. 왜 이렇게까지 갔을까.

첫째, 사람은 낯 뜨거움을 느끼면 그 민망함을 상대의 잘못으로 돌리고 싶어한다. 내가 불편해졌다는 사실은 애매하다. 그런데 "저 사람이 선을 넘었다"고 말하면 선명해진다. 내 민망함은 상대의 잘못이 된다.

둘째, 온라인에서는 도덕적 분노가 빠르게 커진다. 혼자라면 "좀 민망하네" 하고 넘겼을 장면도, 댓글이 모이면 "역시 문제였어"가 된다. 사람들은 서로의 불쾌감을 확인하며 더 강한 표현을 쓴다. 처음에는 장면을 비판하다가, 어느 순간 사람을 비난한다.

셋째, 출연자의 삶이 선망의 요소를 갖고 있을수록 반감은 더 쉽게 붙는다.

채널A '하트시그널4'로 얼굴을 알린 김지영은 승무원 출신 이력과 청초한 미모로 주목받았다. 남편은 독서 모임 기반 커뮤니티를 창업한 CEO다. 신혼의 애정, 임신, 여유로운 일상까지 더해지면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그림이 된다.

부러움은 나쁜 감정이 아니다. 하지만 자기 안에서 부러움이 인정되지 않으면, 마음은 다른 길을 찾는다.

"꼴 보기 싫다."
"과하다."
"저런 걸 왜 자랑하나."
"품위 없다."

부러움은 도덕적 불쾌감의 언어를 빌릴 때가 있다. 질투는 비판처럼, 박탈감은 상식처럼 말한다. 타인의 행복이 거슬리는 마음은 "방송 수위가 문제"라는 말 뒤에 숨기도 한다.

모든 비판이 질투는 아니지만, 과도한 악플을 설명하려면 질투와 비교심리를 빼놓기 어렵다. 방송 수위 논란이었다면 비판은 제작진을 향했어야 한다. 하지만 분노가 부부의 인격과 관계를 향했다면, 그 안에는 장면 이상의 감정이 섞였을 가능성이 있다.
 
▲ 가까이 보고 싶지만, 너무 가까우면 불편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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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 예능은 이상한 거래 위에 서 있다. 출연자는 사생활을 내놓고, 시청자는 그것을 본다. 시청자는 더 솔직한 장면을 원한다. 꾸며진 모습에는 "가식적"이라고 말하지만, 너무 솔직하면 "TMI"라고 말한다.

어디까지 보여줘야 진정성이고, 어디서부터 과잉 노출일까. 그 선은 고정돼 있지 않다. 시청자의 취향, 세대, 성별, 관계 경험, 도덕 기반에 따라 달라진다.

김지영·윤수영 부부의 동반 샤워 장면은 그 선 위에 걸렸다. 누군가에겐 신혼부부의 귀여운 일상이자 사적인 애정이었다. 누군가에겐 방송에서 굳이 꺼낼 필요 없는 이야기였고, 누군가에겐 낯 뜨겁고 품위 없는 노출이었다.

두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보다, 우리가 타인의 사생활을 어디까지 소비하고 어디서부터 불쾌해하는 사람들인지를 드러낸 방송이었다.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을 빌려 다시 이야기해본다. 도덕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취하는 태도다. 그래서 도덕적 분노가 올라올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 내가 정말 원칙을 말하고 있는지, 아니면 싫어진 사람을 벌주고 싶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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