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32강 진출이 무산됐다. 비판은 경기장에서 시작됐다. 무기력한 경기력, 납득하기 어려운 선수 기용, 느슨한 전술 대응, 준비가 된 것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흐름…
경기 후 홍명보 감독의 인터뷰는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왜 갑자기 이런 경기력이 나왔는지 당황스럽다."
"선수들이 너무 잘하려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다."
"정신적·심리적인 면에 날씨까지 더운 상태였다."
하나하나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 선수들이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고, 더운 날씨가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 문제는 팬들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빠져 있었다는 점이다.
왜 그 전술을 선택했는지, 왜 그 선발 명단을 꺼냈는지, 무엇이 자신의 판단이었고 무엇이 실패였는지.
사람들은 패배보다 인터뷰에 더 화를 냈다. 패배를 지휘한 사람이 아니라, 패배를 관찰한 사람의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홍명보 감독은 왜 이런 식으로 실패를 설명했을까.
▲ 사람은 실패보다 자신을 먼저 지킨다
자기정당화(Self-justification)는 자신의 행동, 신념, 또는 과거의 결정이 옳았다고 믿기 위해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심리적 기제다.
책임감 없는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시험을 망치면 "문제가 어려웠다"고 말하고,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변수가 많았다"고 설명한다. 모두 사실일 수 있지만, 그 설명에서 자신의 선택은 뒤로 밀려난다.
홍명보 감독의 인터뷰도 비슷한 맥락을 보인다. 선수들의 멘탈, 무더운 날씨, 돌발 상황, 축구의 불확실성 모두 영향을 줬을 수 있다. 다만 팬들이 듣고 싶었던 건 외부 변수가 아닌 감독의 판단에 대해서였다.
선수들을 감싸려는 모습은 보였다. 선수 출신 감독으로서 패배 뒤 선수들이 여론의 표적이 되는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테다. 실제로 홍명보 감독은 "선수들에게는 나를 탓하라고 했다"고 말했고, 결과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내 탓"이라고 말했으면 무엇이 내 탓인지 설명해야 한다. 자기 탓이라고만 말하는 순간,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자기 탓이 아닌 것처럼 들린다. '유체 이탈 화법'이라는 비판이 쏟아진 이유다.
그렇게 홍명보 감독을 책임은 말하면서도 책임의 내부로 들어가지 않는 사람, 선수들을 보호하려 하지만 자기 진단은 못하는 리더가 됐다.
▲ 잘못을 구체화하지 못할 때
"다 내 책임이다"라는 말은 생각보다 하기 쉽다. 너무 큰 책임은 오히려 손에 잡히지 않는다. 정말 어려운 건 그다음이다.
"남아공의 속도와 압박 강도를 잘못 읽었다."
"상대 압박을 풀어낼 약속이 충분하지 않았다."
"교체 타이밍을 늦게 가져간 것이 실패였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 책임은 추상어가 아니라 항목이 된다. 막연한 책임감을 개인이 달성해야 할 구체적인 역할, 행동 지침, 수습 방안으로 명확히 정의하는 것이다. 책임이 구체화될수록 자기평가의 고통은 커지지만, 타인의 검증도 가능해진다.
홍명보 감독은 일부 선택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선택이 왜 나왔고, 어떤 흐름에서 무너졌는지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두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알고도 말하지 못했을 가능성이다. 실패 이유를 구체화하는 순간 자신의 판단 오류가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내 책임"이라는 말은 비교적 안전하지만, "그때 그 선택이 틀렸다"는 말은 위험하다. 책임이 항목이 되는 순간, 무능도 항목이 된다.
다른 하나는 아직 그렇게 말할 만큼 경기를 해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면 설명은 구체적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설명이 계속 날씨, 심리, 돌발 상황 같은 주변 변수에 머문다면 대중은 묻게 된다. 정말 실패를 알고 있는지, 아니면 실패를 아직 분석하지 못하고 있는지.
▲ '증명해본 사람'은 비판을 소음으로 듣기 쉽다
홍명보 감독은 감독 선임 과정부터 월드컵 졸전까지 끊임없는 비판을 받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진작 무너졌을 법한 압박이다. 하지만 그는 버텼다. 물러서지 않았고, 쉽게 선택을 접지 않았다. 그 버팀의 배경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홍명보 감독은 이미 증명해본 사람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장, 한국 축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 이후 지도자로 런던올림픽 동메달이라는 성과도 냈다. 이런 이력들은 한 사람의 자기확신을 만드는 재료다.
이런 경험은 강한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을 준다. '나는 큰 무대에서 증명해본 사람'이라는 생각. 자기효능감은 압박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게 하고, 모두가 흔들릴 때 버티게 한다. 물론 고집이 될 때도 있다.
큰 성공을 경험한 사람은 비판을 다르게 듣는다. 누군가 "안 된다"고 말하면, 그 말이 정보가 아니라 잡음처럼 들릴 수 있다.
여기에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도 스며들 수 있다. 자신의 믿음을 흔드는 정보보다, 자기 믿음을 지켜주는 기억을 더 크게 받아들이는 경향. '나는 결국 해낸 사람'이라는 기억이 강할수록, "이번엔 다를 수 있다"는 경고는 늦게 들어온다.
과거에도 사람들은 의심했고, 당시에도 쉽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난 결국 해냈다. 이런 기억이 쌓이면 현재의 비판도 잠시 견디면 지나갈 소음처럼 느껴진다.
'결과로 증명하면 된다.'
이 말은 스포츠 세계에서 강력하다. 실제로 결과가 나오면 여론은 바뀐다. 야유는 환호가, 의심은 찬사가 된다. 홍명보 감독은 선수로서든 지도자로서든 큰 무대에서 성과를 내본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비판은 판단을 수정하게 만드는 신호가 아니라, 결과를 내기 전까지 견뎌야 할 소음처럼 들릴 수 있다. 그래서 더 버텼을 수 있다.
▲ 사명감은 때로 사람을 닫히게 만든다
홍명보 감독은 대표팀 감독직을 맡는 과정에서도 개인보다 한국 축구를 앞세웠다. 자신을 버렸다는 표현, 대한민국 축구를 위한 선택이라는 말, 마지막 봉사라는 문장이 반복됐다.
이런 말에 진심이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진심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은 중요한 선택을 견디기 위해 의미가 필요하다. 비판을 감수하고 어려운 자리에 들어갈 때는 더욱 그렇다.
사람이 자기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이해하는 방식을 서사 정체성(Narrative Identity)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선택에 이름을 붙인다. '나는 도망치지 않는 사람', '나는 팀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 '나는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 식이다.
다만 사명감은 위험한 감정이기도 하다. 사명감은 개인의 선택을 더 큰 가치로 묶는다. 감독직을 맡은 건 하나의 직업적 선택이다. 권한이 있고, 연봉이 있고, 명예가 있고, 커리어상 이익을 동반하는 결정이다. 그런데 이 선택이 '한국 축구를 위한 봉사'로만 언어화되면, 자기 선택의 욕망과 이해관계를 점검하는 능력이 약해진다.
사람은 자신을 선한 동기로 설명하고 싶어 한다. 특히 비판받는 사람일수록 그렇다. '나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팀을 위해 왔다'는 믿음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닫히게 만든다. 비판이 들어와도 그것을 자기 선택에 대한 검토가 아니라, 자신이 지키려는 가치에 대한 공격처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홍명보 감독이 감독직을 고집한 이유는 복합적이었을 것이다. 2002년의 영광, 2014년의 상처, 다시 증명하고 싶은 마음, 선수들에 대한 애정, 한국 축구를 향한 책임감, 감독으로서의 명예 회복 욕구가 모두 얽혀 있었을 수 있다.
▲ 납득되지 않은 시작, 납득되지 않은 끝
홍명보 감독을 몰아세우려는 건 아니다. 다만 실패 앞에서 사람이 자기 선택을 어떻게 설명하고, 지키고, 때로는 흐리는지 들여다보려는 시도다.
대중의 분노는 패배 하나에서 시작된 게 아니었다. 홍명보 감독은 선임 과정에서부터 절차적 공정성 논란 한가운데 있었다. 왜 그여야 했는지, 왜 그런 방식이어야 했는지, 축구협회도 홍명보 감독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납득되지 않은 선택은 결과로라도 증명돼야 했다.
결과는 패배였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설명은 구체적이어야 했다. 어떤 판단으로 팀을 운영했고, 그 판단이 어디서 무너졌는지 말했어야 했다.
홍명보 감독은 선임 과정에서도, 패배 뒤에도 설명하지 못했다. 납득되지 않은 시작이, 납득되지 않은 끝으로 돌아온 것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