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시장은 읽기 어렵습니다. 내 집 마련 역시 어렵습니다.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어’려운 ’부’동산 ’바’로보기는 거기서 출발합니다.
정비사업 이주비 대출 완화가 정부 부동산 대책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금융당국은 이주비처럼 집을 사는 돈이 아니라 사업 진행을 위해 필요한 대출을 일반 가계 주택담보대출과 따로 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주가 막히면 철거와 착공이 늦어지고, 착공이 늦어지면 공급 일정도 밀린다는 서울시와 정비업계의 요구가 반영된 흐름이다. 정부도 이주비 대출을 지금처럼 일반 주택담보대출 규제 안에 그대로 묶어둘지 다시 따져보는 셈이다.
서울시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정비사업 이주비 대출을 일반 주택담보대출과 분리해 담보인정비율(LTV)을 70%까지 풀어 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 현재 투기과열지구에서는 이주비 대출도 일반 주택담보대출처럼 1주택자 LTV 40%, 다주택자 0%, 한도 6억원 규제를 적용받는다. 서울 전역이 규제지역으로 묶인 상황에서 이 규제가 정비사업의 병목이 됐다는 게 서울시의 판단이다. 다만 완화가 필요하다는 것과 어디까지 풀 것이냐는 다른 문제다.
이주비 대출을 무조건 나쁘다고 볼 일은 아니다. 이 돈은 새 집을 사기 위한 매입 자금이 아니다. 공사 기간 조합원이 임시 거처를 마련하는 데 쓰이는 돈이다. 이주비가 막히면 자금 여력이 약한 조합원은 이주에 동의하기 어렵고, 조합 내부 갈등은 커진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이주를 앞둔 정비사업 구역 43곳 중 39곳, 약 3만1000가구가 이주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모아주택 등 소규모 정비사업장은 시공사 지급보증을 통한 추가 대출도 쉽지 않다.
대형 사업장과 소규모 사업장의 사정도 다르다. 사업성이 높은 대형 정비사업장은 시공사 지급보증을 통해 추가 이주비를 마련할 여지가 있다. 반면 규모가 작고 신용도가 낮은 사업장은 은행 문턱부터 높다. 지급보증으로 대출을 받더라도 금리가 높아 조합원 부담이 커진다. 이런 현장을 보면 이주비 대출 완화는 정비사업의 막힌 숨통을 틔우는 현실적 장치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완화의 방향이다. 이주비 대출 완화가 필요하다는 말과 모든 조합원에게 똑같이 대출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는 말은 다르다. 실거주 1주택 조합원과 소규모 사업장의 병목을 푸는 것인지, 다주택·비거주 조합원과 대형 사업장까지 같은 완화 대상에 넣는 것인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이주비 완화는 대상에 따라 주거비 지원이 될 수도 있고, 자산 보유자의 금융 부담 완화가 될 수도 있다.
좁은 지원이 넓어질 때
서울시의 자체 지원 흐름을 보면 이 질문은 더 중요해진다. 서울시는 올해 초 주택진흥기금 500억원을 편성해 이주비 융자 지원을 다시 시작했다. 출발은 비교적 좁았다. 시공사와 협의하고도 이주비를 마련하지 못한 사업지, 그중에서도 신용도가 낮고 규모가 작아 시중은행 문턱을 넘기 어려운 중소규모 구역을 겨냥했다. 취약한 곳을 좁게 돕는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후 방향은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서울시는 기금을 1000억원 규모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지원 한도를 3억원에서 5억원으로 올리며, 대환대출까지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상도 500명 이하 중소규모 조합에서 모든 조합으로 넓히는 쪽이 거론된다.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는 작은 곳에서 출발한 지원이 모든 조합으로 향한다면, 정책의 성격은 달라진다. 취약 사업장 보완책이 아니라 정비사업 전반의 금융지원으로 읽힐 수 있다.
서울시의 10대 법령 개정 건의안도 같은 흐름에 있다. 이주비 대출 규제 완화만 담긴 것이 아니다. 조합원 지위양도 제한 완화, 민간 정비사업 용적률 상향, 임대주택 비율 완화, 재개발 조합설립 동의율 완화, 조합설립인가 통지기간 단축, 시공자 선정 절차 개선 등이 한 묶음으로 들어갔다. 분담금을 감당하기 어려운 조합원이 조합원 지위를 넘길 수 있도록 하고, 사업성을 높이고, 절차를 줄여 정비사업 속도를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이 묶음 안에서 이주비 지원은 단순한 이사비가 아니라 속도전의 금융 장치에 가깝다.
다주택자까지 풀어줄 것인가
가장 첨예한 대목은 다주택 조합원이다. 서울시는 다주택 조합원에게도 대출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다주택자 대출 불가 원칙에는 변함이 없고, 다주택자 규제 완화는 검토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충돌이 이주비 논쟁의 본질을 드러낸다. 정부가 이주비 완화 필요성을 들여다보는 것과 다주택자까지 같은 기준으로 대출을 풀어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여기서 불편한 사실 하나를 마주해야 한다. 일부 서울 정비사업장에서는 다주택자와 기존 주택 대신 2가구를 받는 1+1 분양 신청자 등 기본 이주비 대출 제한 대상이 조합원의 70% 안팎에 이르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을 모두 제외하면 일부 사업장은 이주와 착공이 늦어질 수 있다. 다주택자를 무조건 제외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같은 사실은 반대 방향도 가리킨다. 제한 대상이 많은 사업장일수록 이주비 완화는 곧바로 그 지역의 자산 가치 기대와 맞물릴 수 있다.
다주택 조합원에게 이주비의 의미는 실거주 조합원과 다르다. 실거주 1주택 조합원에게 이주비는 공사 기간을 버틸 주거비에 가깝지만, 비거주 조합원이나 다주택 조합원에게는 사업 부담을 낮추는 금융 수단에 가까울 수 있다. 이주비가 주택구입자금은 아니더라도 정비사업장의 속도, 조합원 의사결정, 주변 집값 기대에 영향을 주는 돈인 만큼 다주택자 대출 완화는 훨씬 엄격한 조건 아래에서만 논의돼야 한다.
입주보다 먼저 오는 이주 수요
이주비 완화의 첫 효과도 공급이 아니라 이주다. 새 아파트 입주는 몇 년 뒤의 일이다. 그러나 조합원과 세입자의 이동은 착공 전에 먼저 일어난다. 이주가 빨라지면 기존 주택의 공실과 멸실도 앞당겨지고, 주변 전월세 시장에는 새 수요가 붙는다. 이주가 막혀 공급이 늦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이주가 한꺼번에 풀려 전셋값을 밀어 올리는 것도 부담이다. 공급 효과를 말하려면 그 전에 생길 이주 수요와 임대차 충격도 함께 계산해야 한다.
그래서 이주비 대출 완화는 좁고 정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소규모 정비사업장, 실거주 1주택 조합원, 고령·저소득 조합원처럼 실제로 이주비 조달이 어려운 대상부터 가는 식이어야 한다. 반대로 사업성이 높은 대형 사업장이나 비거주·다주택 조합원에게까지 같은 기준으로 대출 규제를 풀어준다면 공급금융이라는 명분은 약해진다. 주거 안정을 위한 지원이 자산 보유자의 금융 부담을 덜어 주는 정책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건부 절충도 가능하다. 다주택 조합원에게 대출을 풀어줘야 한다면 처분 조건, 실거주 요건, 대출 목적 제한, 사후 검증이 붙어야 한다. 조합원 지위양도 제한 완화도 마찬가지다. 분담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조합원에게 출구를 열어주는 장치라면 검토할 수 있지만, 투자성 거래를 되살리는 통로가 돼서는 안 된다. 지원의 크기를 늘리는 것보다, 그 지원이 어디에 닿는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
이주비 대출 완화는 정비사업의 병목을 푸는 현실적 수단일 수 있다. 정부가 이를 검토하는 것도 그 필요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요가 곧 전면 확대의 근거는 아니다. 이주비가 주택구입자금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조합, 모든 조합원, 다주택자까지 같은 완화 대상에 넣을 수는 없다. 정부의 종합대책이 이주비 완화를 담는다면 첫 기준은 분명해야 한다. 풀어야 할 것은 대출 규제 전체가 아니라 실제로 막힌 이주이고, 도와야 할 대상은 모든 조합원이 아니라 취약한 조합원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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