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환의 세상 돋보기] 부동산 시세표에 갇힌 청년들, 대한민국 공간을 리디자인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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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과 무너진 계층 사다리에 분노
부모 세대는 결혼을 먼저 고민하고 집은 살면서 마련했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들은 결혼보다 집을 먼저 걱정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꿈보다 전세보증금과 대출 한도를 먼저 계산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미래를 설계해야 할 청춘이 부동산 시세표부터 들여다보는 현실. 그것이 오늘 대한민국 청년들의 자화상이다.

하지만 청년들이 분노하는 이유를 단순히 집값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문제의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청년들은 집이 없어서만 화가 난 것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집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 그리고 열심히 살아도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을 잃어버린 데서 분노가 시작된다. 과거 부모 세대는 비록 가난했을지언정 노력하면 언젠가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직장을 다니고 저축을 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면 내 집 한 채쯤은 마련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들은 다르다. 월급을 모아서는 집값 상승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좌절하고, 그래서 분노한다.

사실 오늘날 청년들의 분노는 가난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불공정에서 시작됐다. 내가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뒤처진 것이 아니라, 애초에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부모의 자산이 미래를 결정하고, 능력보다 배경이 더 큰 영향을 미치며, 성실함보다 상속이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사회라고 느끼는 순간 청년들은 희망보다 체념을 먼저 배우게 된다. 취업시장에 대한 불신, 부동산 시장에 대한 냉소, 정치권에 대한 분노 역시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다. 최소한의 공정이다.
 
정권은 바뀌어도 강남 아파트값은 우상향
 이러한 청년들의 좌절이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바로 부동산 시장이다.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고 수많은 정책을 내놓았다. 세금을 올리고, 대출을 규제하고, 거래를 제한하고, 다주택자를 압박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의 이름은 달라졌지만 시장을 규제로 통제하려는 접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는가. 서울 핵심 지역의 집값은 장기적으로 계속 상승했다. 정권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강남 아파트 가격은 결국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경제학의 기본 원리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수요가 많은데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은 오른다. 서울 부동산 문제 역시 결국 그 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모든 것을 수도권에 집중시켜 왔다. 좋은 대학도 서울에 있고, 좋은 병원도 서울에 있고, 좋은 문화시설도 서울에 있고, 좋은 일자리 역시 서울에 몰려 있다. 사람들은 단순히 아파트 한 채를 사는 것이 아니다. 교육과 교통, 문화와 의료, 그리고 미래의 기회를 함께 사는 것이다. 따라서 서울 집값에는 콘크리트 값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집중시켜 놓은 모든 가치가 함께 포함돼 있다.

문제는 수요가 집중되는 동안 공급은 충분히 따라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재건축은 각종 규제로 지연됐고 재개발은 이해관계 충돌 속에 늦어졌다. 인허가와 착공은 줄었고 입주 물량 역시 감소했다. 공급 부족 신호는 여러 차례 나타났지만 많은 정책은 투기 억제에 더 무게를 두었다. 물론 투기는 억제해야 한다. 그러나 공급 확대와 투기 억제는 서로 대체 관계가 아니다. 둘 다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오랫동안 공급 문제를 외면한 채 수요 통제에만 집중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그 결과 시장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규제가 강화될수록 매물은 잠겼고, 희소성은 커졌으며, 가격은 오히려 더 상승했다. 특히 서울 강남과 용산, 목동, 여의도 등 핵심 지역에서는 ‘살 사람은 많은데 팔 사람이 없는 시장’이 만들어졌다. 거래량은 줄어드는데 가격은 오르는 기현상이 반복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똘똘한 한 채’도 좋지만 ‘풍요로운 지방’도 해결책
 최근 논란이 되는 이른바 ‘똘똘한 한 채’ 현상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서울 핵심 지역에 아파트 한 채를 보유한 뒤 전세를 주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역에서 생활하는 은퇴자나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정부는 이를 투기 수요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지만 현실은 조금 더 복합적이다. 많은 은퇴자들에게 집 한 채는 노후를 지탱하는 마지막 자산이기도 하다. 모든 다주택자를 투기세력으로 규정하고 모든 자산 보유를 불로소득으로만 해석하는 접근은 시장을 지나치게 단순화할 위험이 있다. 정책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균형의 문제다. 투기를 막아야 하지만 동시에 시장 기능도 존중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대한민국 부동산 정책 40년은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강남 집값은 행정명령만으로 잡히지 않았다. 역대 어느 정부도 규제만으로 서울 핵심 지역의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반대로 공급이 충분히 이뤄졌을 때는 시장이 비교적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노태우 정부 시절 200만 호 공급 정책이 일정 부분 효과를 거둔 것도 결국 공급 때문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시장이 안정됐던 시기 역시 공급 증가와 경제 여건 변화가 함께 작용한 결과였다. 시장을 이기려는 정책은 실패했고, 시장을 이해하는 정책만이 성과를 냈다.

최근 서울시장 선거와 지방선거에서도 부동산 문제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부동산은 결코 강남 사람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강북의 전세 세입자도, 수도권의 신혼부부도, 지방의 청년도 관심을 갖는다. 집값은 단순한 경제 지표가 아니라 삶의 질을 결정하는 변수이며 미래에 대한 기대를 좌우하는 기준이다. 국민은 정치인의 구호보다 자신의 생활을 먼저 평가한다. 집값이 불안하면 정부를 불안하게 보고, 전셋값이 오르면 미래를 불안하게 본다. 그래서 부동산은 언제나 정치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청년들이 서울 아파트를 사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서울에 모든 기회가 몰려 있기 때문이다. 결국 부동산 문제의 본질은 수도권 집중 문제이며, 더 나아가 대한민국 성장 모델의 한계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서울에만 사람이 몰리고 기업이 몰리고 자본이 몰리는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집값만 잡겠다는 것은 증상만 치료하고 원인을 방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판을 다시 짜야 한다. 좋은 일자리가 지방에도 있어야 한다. 좋은 대학과 연구기관이 지방에도 있어야 한다. 좋은 병원과 문화시설 역시 지방에 자리 잡아야 한다. 공공기관 2차 지방 이전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가철도망 확충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북과 광주, 대구와 부산, 대전과 강원이 각자의 경쟁력을 갖춘 성장 거점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래야 서울에 몰린 수요가 자연스럽게 분산될 수 있다.
 
피지컬 AI·반도체 등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정책을
특히 인공지능(AI)과 피지컬 AI, 첨단 제조업과 바이오산업은 이러한 국가 재설계의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 대한민국은 늘 수도권 중심 성장 모델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지방도 충분히 새로운 성장 중심지가 될 수 있다. 전북의 피지컬 AI 전략, 새만금의 첨단산업 클러스터, 부산과 광주의 미래산업 육성 정책은 단순한 지역 개발 사업이 아니라 대한민국 공간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국가 프로젝트로 봐야 한다.

최근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둘러싼 청년들의 분노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이 분노한 이유는 종이 몇 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국가가 가장 기본적인 절차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는 실망감 때문이다. 부동산에서도, 취업에서도, 정치에서도 청년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공정성이다. 공정하다고 믿으면 결과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사회에 대한 신뢰는 무너진다.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한 가장 큰 위기는 경제위기만도 아니고 저출생 위기만도 아니다. 신뢰의 위기다. 청년들이 사회를 믿지 못하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노력하면 보상받을 수 있다는 믿음, 정직하게 살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사라진 사회는 결국 활력을 잃는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집값을 잡는 정책을 넘어 사다리를 복원하는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청년들이 다시 꿈을 꿀 수 있는 나라, 노력하면 올라갈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나라, 출발선이 달라도 도착점에 도전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정치의 존재 이유이고 국가의 역할이다.

대한민국의 판을 새로 짜야 한다는 말은 결국 다른 의미가 아니다. 무너진 공정을 바로 세우고, 사라진 희망을 되살리며, 청년들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는 이야기다. 청년의 분노를 잠재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 많은 구호가 아니다. 더 많은 규제도 아니다. 희망을 다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희망은 공정과 기회, 그리고 신뢰의 회복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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