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을(乙)과 을(乙)의 전쟁

  • 최저임금 1만2000원 논쟁이 놓치고 있는 것

내년도 최저임금 협상이 본격화되면서 노동계가 시급 1만2000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올해 최저임금 1만320원보다 16% 이상 높은 수준이다. 노동계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요구다. 장바구니 물가는 올랐고, 월세와 공공요금 부담도 커졌다.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이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최저임금 논쟁에는 늘 빠지는 질문이 하나 있다. 임금은 누가 올려주는가 하는 문제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노동자의 소득은 늘어난다. 그러나 그 비용은 누군가 부담해야 한다. 대기업이라면 생산성 향상이나 규모의 경제를 통해 일부 흡수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 경제의 현실이다. 국내 사업체의 대부분은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다. 편의점과 식당, 카페, 동네 마트, 소규모 제조업체들이 한국 고용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자영업자들이 겪은 현실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코로나19의 후유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고금리와 고물가가 이어졌고, 소비 부진은 장기화됐다. 임대료와 전기료, 식자재 가격은 꾸준히 올랐지만 매출은 예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곳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인상되면 사업주들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가격을 올리거나, 근로시간을 줄이거나, 신규 채용을 포기하거나, 결국 폐업을 선택하게 된다. 실제로 거리 곳곳에서 '임대 문의' 현수막이 붙은 점포를 발견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최저임금 논쟁이 반복될 때마다 우리는 흔히 노동자와 사용자의 대결 구도로 접근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동네 식당 사장과 아르바이트생의 관계는 재벌 대기업과 노동조합의 관계와 다르다. 하루 열두 시간 넘게 일하면서도 월급쟁이보다 적은 소득을 가져가는 자영업자도 적지 않다. 그들 역시 생존을 걱정하는 또 다른 약자다.

결국 지금의 최저임금 논쟁은 갑과 을의 대립이라기 보다 을과 을의 충돌에 가깝다. 노동자는 더 많은 임금을 원하고, 자영업자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말한다. 양측 모두 틀린 말이 아니다. 문제는 국가가 해결해야 할 부담을 시장의 가장 약한 고리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점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생산성이다. 임금은 결국 생산성이 뒷받침될 때 지속적으로 오를 수 있다.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들이 높은 임금을 유지하는 이유는 노동 생산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생산성 향상 없이 정책적으로 임금만 끌어올리면 부담은 고스란히 영세 사업장에 집중된다.

최저임금 인상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노동자의 삶은 보호받아야 하고, 저임금 문제 역시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와 현실을 외면한 채 숫자 경쟁만 벌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저임금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제도이지 또 다른 약자를 희생시키는 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최저임금위원회가 고민해야 할 것은 단순히 시급 1만2000원이 적정한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 숫자가 실제 현장에서 어떤 파장을 낳을 것인지, 그리고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하게 될 것인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노동자의 생계도 중요하지만 자영업자의 생존 역시 중요한 사회적 가치다.

한국 경제는 지금 내수 침체와 소비 부진, 고금리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이런 시기에 필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균형감각이다. 최저임금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다. 그리고 그 사람들 가운데는 노동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가게 문을 열며 한숨을 쉬는 수많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도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 18일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열린 제7차 전원회의에서 사용자 위원들이 최저임금의 업종별 구분적용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8일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열린 제7차 전원회의에서 사용자 위원들이 최저임금의 업종별 구분적용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