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BOJ)이 31년 만에 기준금리를 1%로 인상한 배경에는 미국과 시장의 압박도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물가 상승과 엔화 약세에 대응한 통화정책 결정이었지만, 금리 인상에 신중했던 다카이치 사나에 정권과 이를 의식한 일본은행이 미국 재무장관의 발언과 시장 압력에 등을 떠밀렸다는 것이다. 해외 시장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을 두고 "그림자 일본은행 총재"라는 말까지 나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베선트 장관이 지난달 11일 방일 중 가타야마 사쓰키 일본 재무상에게 "지금 금리를 올려야 나중에 금리를 크게 올리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고 18일 보도했다.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을 주저할수록 인플레이션이 가속되고, 나중에는 더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려야 해 경제와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취지다.
닛케이는 복수의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베선트 장관의 발언 이면에는 금리 인상에 신중한 다카이치 정권을 의식해 일본은행이 인상을 주저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고 전했다. 베선트 장관은 일주일 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회의 기간 중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와도 직접 만났다. 회담 뒤에는 자신의 엑스(X)에 "우에다 총재가 일본의 금융정책을 성공으로 이끌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썼다. 일본 재무성 간부는 이를 두고 "금리 인상에 나서지 못하는 일본은행을 다그친 것"으로 봤다.
미국 측 기류를 의식한 다카이치 정권도 움직였다. 지난달 22일 다카이치 총리와 우에다 총재는 3개월 만에 총리관저에서 회담했다. 우에다 총재는 회담 뒤 "여러 측면에서 유익한 의견 교환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본은행은 이 회담을 거치며 정부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지난 16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금리 인상 준비에 들어갔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4월 하순 열린 직전 회의 때만 해도 정부 내에서는 금리 인상에 신중한 목소리가 많았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경기 불안이 커진 상황에서 금리까지 올리면 기업 투자와 민간 소비가 더 위축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리와 우에다 총재의 회담 전후로 "세계의 흐름도 감안해 금리 인상을 용인하는 목소리도 나왔다"고 한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는 말했다.
실제로 주요국 중앙은행은 다시 인플레이션 억제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11일 약 3년 만에 금리 인상에 나섰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에서도 금리 인상을 언급하는 고위 인사들이 늘고 있다.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에서 뒤처지면 인플레이션 통제가 어려워지고 엔화 약세와 장기금리 상승이 가속될 수 있다. 정부 내에서는 금리 인상을 관망하는(静観) 분위기가 확산됐다. 외환·채권시장에서도 엔저와 금리 상승 압력이 이어지며 일본은행의 대응을 재촉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닛케이는 일본은행이 정책금리를 1995년 이후 처음으로 1%에 올렸지만, 그 과정에는 시장과 미국이라는 "두 외압"이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조사회사 SGH매크로어드바이저스는 "이제 베선트 장관이 '그림자 일본은행 총재'"라고 평가했다.
다만 일본 정부가 금리 인상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일본은행도 이를 의식하는 구도는 여전히 남아 있다. 16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 정부 대표로 참석한 기우치 미노루 경제재정상은 금리 인상이 기업과 가계의 자금 사정에 미칠 영향을 거론하며, 금리 인상에 따른 부담과 부작용은 일본은행이 국민과 시장에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압박을 가했다. 기우치 경제재정상은 주변에 "금리 인상을 한다면 얻을 것은 얻겠다"고 말해왔으며, 결정회의를 앞두고 다카이치 총리와 대응 방안을 사전 협의했다. 그는 일본은행이 내년 봄 국채 매입 축소를 중단하기로 한 것을 정부의 성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시장은 벌써 다음 금리 인상을 재촉하고 있지만, 일본은행이 언제 다시 움직일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엔화 약세와 물가 상승 압력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현 상황 자체가 외압에 떠밀려 단행한 이번 인상의 한계를 드러낸다고 닛케이는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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