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음모론 키운 선관위, '분골쇄신'이 답

박자연 정치사회부 기자
박자연 정치사회부 기자.

"선거사무는 선관위에서 단독으로 하라. 더 이상 지자체 공무원을 총알받이로 쓰지 마라."

지난 3일 치른 지방선거 업무에 지원한 송파구 공무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울지역본부 송파구지부 홈페이지에 작성한 글이다. 작성자는 "긴말 안 한다. 어떻게 이런 사태가 벌어지도록 송파구선관위에서는 직원이 한 명도 현장에 안 올 수가 있냐"며 "더 이상 이런 모자란 집단들과는 일을 못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번 6·3 지방선거 도중 서울 강남권 투표소 곳곳에서는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강동구와 서대문구에서는 선거사무원 실수로 각각 유권자에게 투표용지가 2장씩 교부되는 일도 발생했다. 투표용지를 받지 못한 유권자들은 마감 시간을 저녁 10시로 연장해 투표할 수 있도록 조치했지만 이미 투표가 끝나기 전 출구조사 결과와 실시간 득표율이 실시간 공개됐다. 투표를 하기 위해 기다리다 지쳐 포기한 유권자들도 있었다.

단순 선거가 지연된 것뿐만 아니라 개인정보 유출 문제도 발생했다. 투표함이 빠진 투표소 내부에서 유권자 개인정보가 표기된 선거인명부 대조 전표가 일부 시위대의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 그대로 송출된 것이다.

허철훈 선관위 사무총장은 이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다시 한번 국민들의 신뢰만 무너졌다. ‘사전투표율이 높아 본투표 용지를 줄여 인쇄했다’는 변명만 늘어놓은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투표소마다 투표자 수에 편차가 있어 용지가 부족할 순 있다. 그러나 공무원들의 ‘투표용지가 부족할 것 같다'는 사전 보고에도 "아무런 대응이 없었다"는 유권자들 증언에는 어떠한 해명도 없었다.

결국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중심인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투표함이 지방선거 이틀 만에 열리면서 개표가 완료됐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역시 개표가 완료되자 5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 입장을 밝혔다. 그는 "허철훈 사무총장은 사무처 수장으로서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사의를 표명했다"며 "이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면서 저 역시 중앙선관위원장 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중앙선관위원장과 사무총장이 선거 관리 논란으로 동반 사퇴한 것은 2022년 대선 이후 4년 만이다.

선관위는 여전히 최근 사전투표율이 높아 본투표 용지를 감축해 인쇄했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투표용지가 부족할 경우 추가 용지를 이송할 대책은 마련하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애초에 투표용지가 부족할 것이라는 상황조차 예측하지 못해 구체적인 이송 절차도 없었던 것이다. 

실제 전국 1만4288개 투표소 중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투표소는 총 50곳으로 드러났다. 이 중 실제로 투표가 중지됐다가 재개된 투표소는 총 22곳이었다. 애초 알려진 것보다 많은 수치다.

투표함이 추가로 열리면서 오세훈 서울시장의 당선이 법적으로 확정됐지만 서울시의회 비례대표 의석에는 변동이 생겼다. 서울시의회 비례대표 1석이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넘어간 것이다. 지난 4일 잠실7동 개표가 완료되기 전 기준 비례대표 의석은 더불어민주당 8석·국민의힘 7석이었지만 투표함이 개표되면서 국민의힘 8석·민주당 7석으로 뒤바뀌었다. 기존 민주당 비례대표 8번 한기성 후보가 당선인 명단에서 제외되고 국민의힘 비례대표 8번 위성찬 후보가 새로 당선인 명단에 들어갔다. 

이처럼 한번 신뢰를 잃은 선거는 결과가 아무리 공정해도 의심받기 마련이다. 부정선거론자들에게 빌미를 주지 않으려 했던 사전 조치가 음모론을 더욱 키운 셈이다. 헌법이 선관위를 헌법 기관으로 명시하고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는 만큼 선관위는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 분골쇄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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