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북중 정상회담 이야기] 시진핑의 평양행, 북핵과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흔들리는 세계 질서

2026년 6월8일, 세계의 시선이 다시 평양으로 향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한다. 시 주석의 방북은 2019년 이후 7년 만이다. 표면적으로는 북중 우호관계를 재확인하는 정상외교다. 그러나 국제정치는 언제나 타이밍이 본질을 말해준다. 이번 방북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북한은 최근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하며 핵능력 강화를 대내외에 과시했다.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 원칙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장기화되고 있으며, 중동 역시 불안정한 휴전과 군사적 긴장이 반복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AI와 반도체, 첨단산업과 군사기술을 둘러싸고 사실상의 전략 경쟁에 들어가 있다. 

이러한 시점에 이루어지는 시진핑의 평양행은 단순한 양국 정상회담이 아니다. 그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변화한 세계 질서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며, 한반도가 여전히 국제정치의 중심 무대 가운데 하나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오늘의 평양은 더 이상 평양만의 문제가 아니다. 평양은 워싱턴과 베이징, 모스크바와 도쿄, 서울과 브뤼셀까지 연결되는 국제정치의 교차점이 되고 있다. 세계는 다시 거대한 지정학의 시대로 돌아오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인류는 자유무역과 세계화가 국가 간 갈등을 줄일 것이라고 믿었다. 경제가 발전하면 전쟁도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2022년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러한 믿음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러시아는 무력으로 국경을 바꾸려 했고 미국과 유럽은 대규모 군사 지원과 경제 제재로 대응했다. 세계는 다시 힘의 정치가 지배하는 시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전쟁은 단순히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에너지 시장이 흔들렸고 곡물 가격이 급등했으며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었다. 국제금융시장은 새로운 불확실성에 직면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국제정치의 진영화였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방 진영과 중국·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전략적 연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물론 과거 냉전처럼 선명하게 둘로 나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계가 다시 전략과 안보, 국익과 힘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북한 역시 자신의 위치를 재정립하고 있다.

북한은 오랫동안 핵무기를 체제 생존의 보장 수단으로 간주해 왔다. 최근 북한의 행보를 보면 핵무기를 단순한 억지력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의 일부로 자리매김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북한은 국제사회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핵보유국 현실을 기정사실화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물론 국제사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미국과 한국, 일본은 물론 유엔 역시 북한을 공식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은 핵 능력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하면서 협상력을 높이고 있다. 일부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북한이 러시아와 협력을 강화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전략적 공간을 넓히려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국제적 위상 제고를 꼽기도 한다. 특히 북한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더 이상 고립된 국가가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강대국과 전략적으로 연결된 국가라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이 곧 핵보유국 지위 인정으로 직결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가능성을 염두에 둔 전략적 계산이 존재할 수 있다는 분석은 충분히 제기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가 아니다. 북한은 경제 회복이라는 절실한 과제를 안고 있다. 국제 제재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산업 기반은 취약하다. 결국 중국과의 경제 협력은 북한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중국은 북한 최대의 무역 상대국이며 사실상 북한 경제의 생명선 역할을 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경제 협력 확대와 정치적 지지 확보를 기대할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국제사회에 북한이 결코 고립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보내려 할 것이다. 특히 북러 관계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북중 관계까지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북한 외교의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다.

시진핑 주석의 계산 역시 매우 복합적이다. 중국은 북한을 포기할 수 없다. 이는 단순히 이념적 이유 때문이 아니다. 지정학 때문이다. 중국 입장에서 북한은 미국 동맹 체계와 직접 맞닿아 있는 전략적 완충지대다. 중국은 한반도에서 급격한 변화나 혼란을 원하지 않는다. 북한 체제의 붕괴도 원하지 않고 북한의 과도한 군사적 도발도 원하지 않는다. 중국이 원하는 것은 안정이다. 안정적인 북한, 예측 가능한 한반도, 통제 가능한 긴장 상태가 중국의 기본 전략이다. 시진핑의 평양 방문 역시 이러한 전략적 목적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중국은 지금 미국과 전방위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반도체와 AI, 배터리와 전기차, 군사기술과 우주산업에 이르기까지 경쟁 영역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반도는 중국이 결코 놓칠 수 없는 전략 공간이다.

특히 오늘날 국제정치의 중심에는 AI가 자리하고 있다. 20세기 국제정치가 석유를 중심으로 움직였다면 21세기 국제정치는 반도체와 AI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도 결국 AI 경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사력도 AI, 산업 경쟁력도 AI, 국가 경쟁력도 AI가 좌우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AI 혁명의 핵심 공급망에 서 있다. 따라서 한반도 문제 역시 더 이상 단순한 안보 문제만은 아니다. 반도체와 AI, 공급망과 데이터센터, 첨단 제조업과 국가 전략이 함께 얽혀 있는 복합적 문제로 변하고 있다. 중국이 한국을 중요하게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미국이 한국을 핵심 동맹으로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기에 중동 변수까지 더해진다. 세계 경제는 여전히 에너지 위에 서 있다. 중동에서 전쟁이 발생하면 국제유가가 움직이고 국제유가가 움직이면 세계 경제가 흔들린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에너지 시장에 충격을 주었듯이 중동 역시 세계 경제의 불안 요인으로 남아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에너지 수입국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중국에게는 중동 안정과 동북아 안정이 모두 중요하다. 한반도에서 긴장이 과도하게 높아지는 것을 원치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오늘의 북중 정상회담은 북핵 문제와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중동 위기라는 세 개의 거대한 국제 현상과 연결되어 있다. 서로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거대한 국제질서 재편 과정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역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한국은 더 이상 국제정치의 변방 국가가 아니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며 세계 반도체 산업의 핵심 국가이고 민주주의와 산업화를 동시에 성공시킨 나라다. 그러나 국력이 커진 만큼 책임도 커졌다. 한미동맹은 여전히 한국 안보의 핵심 축이다. 동시에 중국은 한국 최대 교역국 가운데 하나다. 북한과는 군사적 긴장이 존재하지만 평화 역시 포기할 수 없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한국 외교는 어느 한쪽으로 단순히 기울 수 없는 복합적 과제를 안고 있다. 강대국의 선택을 강요받는 나라가 아니라 강대국들이 반드시 필요로 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오늘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한반도는 수많은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기도 했다. 지금의 세계는 다시 거대한 변곡점 위에 서 있다. AI 혁명은 산업 구조를 바꾸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질서를 흔들고 있고 중동의 갈등은 에너지 지형을 바꾸고 있다. 북한은 핵능력을 강화하고 있고 중국은 전략 공간을 넓히려 하고 있으며 미국은 동맹 네트워크를 재정비하고 있다. 이 모든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곳이 바로 한반도다. 그래서 시진핑의 평양 방문은 단순한 외교 일정이 아니다. 그것은 변화하는 세계 질서의 축소판이며 한반도가 여전히 세계 전략의 중심 무대 가운데 하나임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우리는 지금 역사의 현장을 목격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는 언제나 같은 질문을 던진다. 강대국 사이에서 흔들리는 나라가 될 것인가. 아니면 강대국들이 반드시 필요로 하는 나라가 될 것인가. 대한민국은 이제 그 질문에 답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한반도의 미래는 지정학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지정학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 시진핑과 김정은의 만남이 주는 가장 큰 교훈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세계는 다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의 한가운데에 한반도가 서 있다. 앞으로의 역사는 평양과 서울, 베이징과 워싱턴에서 동시에 쓰여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역사의 관찰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주인공이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 한반도는 다시 역사의 중심에 서 있다.
 
사진연합뉴스로이터
[사진=연합뉴스(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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