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평양의 나침판은 베이징 가리킨다

  • 중국을 닮아가는 북한 외교

주재우 경희대학교 교수
[주재우 경희대학교 교수]
 
 

최근 필자는 북한의 2023년에 선언한 ‘적대적 두 국가론’을 보다 구체적으로, 심도 있게 자료를 들여다볼 기회가 생겼다. 공부하면서 발견한 흥미로운 점은 이 이론이 북한의 외교와 갖는 연계성이다. 그리고 그 연계성은 마치 중국 외교의 논리와 관념과 상당한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북한이 외교에서 중국과 흡사한, 아니, 거의 일치하는 양상을 보이는 이유에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만약 우리 언론의 예측 보도와 같이 조만간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평양을 방문하면 상당히 흥미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적대적 두 국가론에서 보여준 북한 외교의 변화를 필자는 세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었다. 하나는 북한의 대외 정세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었다. 여기에는 북한의 정치적 정체성이 전제된다. 이는 자신이 국내외적으로 처한 지리적 위치, 국가적 위상에 대한 인식과 판단에 기초한다. 북한이 이를 명확하게 설정함으로써 비로소 대외 정세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자신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소위 북한의 ‘핵심 이익’의 설정이다. 즉, 북한 외교의 목표를 수반하는 원칙이 마련된 점을 주목할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북한이 외교 대상에 순위를 매기기 시작한 점이다. 공식적으로 어느 누가 더 중요하고 더 우선순위인지를 발표하진 않았다. 대신 이를 나열한 것도 처음이고, 이런 나열 순서가 우선순위를 의미한다고 봐도 무난하겠다는 점이다.

먼저 대내적인 요소로 북한이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했는지를 살펴봐야겠다. 국가의 정체성은 국내적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 세계 및 지역의 역학 구도에서 자기가 현재 점한 위치와 국가적 위상에 대해 객관적인 입장에서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만 정립이 가능하다. 북한은 2023년 말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개 국가' 관계로 선언한 후 2024년 1월 예고한 대로 영토 조항을 올해 3월에 신설했다.

헌법 개정을 통해 정당한 주권 행사를 할 수 있는 지리적 범위, 즉 영토, 영공과 영해를 명확히 했다. 개정된 헌법 제2조에 북한 영토가 “북쪽으로 중국 및 러시아와,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는 지역 및 이에 기초하여 설정된 영해와 영공”임을 규정했다. 그간 선대의 한반도 사업의 최종 목표가 한민족, 동일 민족에 근간한 대남 통일이었기 때문에 북한의 영토 규정을 법적으로 하는 것이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이의 정치적, 군사적 의미는 상당하다. 영토와 국경이 획정된 이상, 북한은 선언했다시피 적군이 0.001mm만 침공해도 군사적으로 적극 대응할 수 있는 정치적 정당성과 명분뿐 아니라 법적 근거까지 만들었다. 중국이 하나의 중국과 대만을 중국에 귀속된 ‘부분’으로 정의하면서 이와 관련된 주권 사항을 침범받을 때 즉각적인 군사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점에서 북한이 유사한 입장을 보이는 대목이다.

둘째, 국가적인 위상에서 보면 북한은 핵보유국의 입장에서 안전 보장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간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따라서 비핵화는 더 이상 북한과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북한은 이미 2005년부터 이런 국가적 위상 확립을 위한 노력을 개진했다. 2005년 핵보유국을 처음 선언한 후 2012년에는 헌법 개정을 통해 서문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하고 2017년에 ‘국가 핵 무력’의 완성을 선포했다. 2022년 9월에는 제14기 제7차 최고인민회의 법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 무력 정책에 대하여’를 채택, 입법화했다. 이를 통해 북한은 핵무기의 사명, 지휘통제, 사용 조건 및 비확산 의무 등을 명시하여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했다.

동 법안은 북한의 핵 선제 타격과 반격 권한을 합법적으로 부여했다. 그리고 동 회의 시정연설에 북한의 핵 지위가 불가역적이고, 핵 지위는 ‘불퇴’ 사안이고, ‘흥정물(협상 대상)’도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존엄과 안전을 수호하기 위한 절대병기라며 김정은의 판단에 따라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을 상세화하고 권한을 부여했다. 더 나아가 2023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9차 회의에서 핵 관련 헌법 개정을 통해 ‘책임 있는 핵보유국’의 역할과 사명을 명시했다. 이처럼 북한은 스스로 핵보유국임을 정의함으로써 국가 안전 보장이 완성되었음을 자부한다. 김정은의 말대로 ‘힘을 통한 평화(핵 억제력)’ 보장 능력 확보로 안보에 대한 자신감이 상승하면서 안전한 외부 안보 환경을 확보한 것으로 자평한다.

북한의 정치적 정체성 확립의 마지막 요소는 더 이상 남한을 한민족, 동일 민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주적으로 정의한 점이다. 적대적 두 국가론의 출현으로 ‘적’의 개념 정의 설정이 수반되어야만 한다. 여기에 미국도 포함되겠지만 이보다 더 일차적인 적성국의 규정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만 ‘적대적’ 두 국가론이 정당하게 정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김정은은 2024년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우리를 교전국이며 ‘제1의 적대국’이자 ‘불변의 주적’으로 정의했다. 그러면서 우리를 두고 화해와 통일의 대상이며 동족이라는 생각은 “현실 모순적인 기성 개념”이라며 철저한 타국이자 적대국임을 반영한 법률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그의 생각이 올해 헌법 개정으로 입법화되었다. 이에 근거하여 북한에 대한 우리의 군사적 도발 행위를 모두 선전포고로 간주할 것을 규정했다. 궁극적으로 유사시 북한은 한국을 점령, 평정, 수복하여 북한 영역에 편입하는 권한도 헌법 개정을 통해 보장했다. 다시 말해, 흡수통일을 포함한 우리의 통일방안을 모두 부정한 것이다.

핵 포기가 절대 없고 핵 억제력의 완성이 명문화되고 북한 국가 안보가 영구적인 보장을 받았다는 판단에 기초해 확립한 국가 정체성의 관점에서 대외 정세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다. 평가 결과는 북한이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새로운 외교 입장과 원칙을 수립할 수 있는 결과를 낳았다. 첫째, 시대적 조류로 다극화 세계의 형성을 꼽았다. 특히 2022년 이후 북한은 더 이상 희망이 아닌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국제 상황이 ‘다극 세계로의 전환이 눈에 띄게 가속화’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이의 의미를 북한에겐 유리한 환경의 도래, 미국에겐 위기의 지속·확대로 풀이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은 2026년 3월 조선노동당 제9차 대회 시정연설에서 북한이 다극 질서의 적극적이고 정의로운 추동자로서 역할을 다해 ‘공평하고 정의로운 다극 세계 건설’에 기여하겠다는 결의를 비쳤다. 북한의 자신감은 현 정세에 대한 확고한 판단이 선 데 있다. 여기서 공평하고 정의로운 다극 세계라는 북한의 발언이 중국과 러시아의 세계질서 목표와 일치한다. 김정은은 이의 당위성을 “예측 가능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절대로 변할 수 없는 제국주의의 침략적 본성뿐’이라며 반미, 반제, 자주 외교 추구의 정당성에서 찾고 있다.

북한은 북미대화 실패와 코로나19 위기에도 불구하고 2022년 국제 정세가 다극화 세계의 가시화, 가속화로 인해 전반적으로 유리하게 변화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러면서 신냉전을 나름 정의했다. 북한의 인식에서 신냉전의 개념은 김정은이 지적한 대로 “현 국제 정세는 정의와 부정의, 진보와 반동 사이의 모순, 특히 조선반도를 둘러싼 세력 구도가 명백해지고 있는” 현실에서 출발한다. 즉, 냉전 시기의 진영 논리를 벗어나 정의와 비정의, 정당성과 부당성, 민주주의와 독재주의 등의 논리로 세계가 분열하는 현상으로 정의한다. 이념적 대립보다 지정학적 대결 구도를 가진 것으로 보고 있다.

둘째, 정체성 확립으로 인한 외교 목표와 원칙의 재정립이 진행되었다. 이제는 북한이 개별 주권 국가로 생존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는 정당한 주권 국가로 인정받기 위한 외교적 노력으로 풀이할 수 있다. 2024년 앞서 언급한 최고인민대표회의에서 김정은은 3대 대외 사업 원칙을 발표했다. 국위제고, 국권사수, 발전권 등을 포함한 것이다. 이들의 의미를 해석하면 중국의 핵심 이익과 상당히 유사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2026년 1월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 회의 시정연설에서는 북한의 국익 수호를 위해 북한 외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설정했다. 그는 “낡은 기준, 낡은 잣대에 맞추어졌던 외교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격(핵보유국)과 국위(반미, 반제, 자주 운동의 주도자) 등에 맞는 외교 활동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 지구적인 범위에서 국익 도모에 가장 합리적인 외교 역량 배치 구도를 편성, 부단한 조정도 병행할 것을 주문했다.

국위제고는 당의 존엄을 제일 우선시 하는 북한의 정치 목표에 부합한다. 당 최고지도자와 지도부에 부여한 핵 사용권을 포함한 당의 위상(반미, 반제, 자주 운동의 추동자이자 주도자)을 대외적으로 보장하고 선양하는 것을 최고의 원칙으로 둔다는 의미다. 국권사수는 영토 주권을 포함한 모든 국가 주권을 사수하는 뜻이다. 따라서 이를 침해하는 행위를 적대적인 것으로 정의하고 ‘강대강’, ‘정면승부’ 식의 대응을 정당화한 대목이다. 그리고 발전권이라 함은 북한이 선택한 발전 모델(사회주의식 국가 건설), 북한이 발전할 수 있는 권리와 권한을 존중하라는 주문이다. 이런 권리에 간섭하는, 즉 내정간섭은 북한이 수용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의 3대 대외사업은 중국의 핵심 이익 정의와 상당히 유사하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외교 대상 우선순위가 명확해진 점이다. 2024년에는 외교 대상 순위를 나열하는 양상을 처음 선보였다.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은 사회주의 국가와의 관계 발전을 우선한다고 했다. 그다음으로 자주와 정의를 지향하는 ‘모든 나라’다. 마지막이 북한을 존중하고 북한에 우호적인 자본주의 국가다. 이는 유럽을 포함한 국가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북한이 이른바 ‘우호적인 자본주의 국가’에서 유럽과 일본을 제외한 점이다. 다극화 질서 구축에서 이들의 구상이 북한과 맞지 않고 미국과 함께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북한의 국가 정체성, 외교 목표와 원칙, 그리고 대상 순위가 중국과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조만간 개최될 것으로 추정되는 북·중 정상회담의 관전포인트를 찾을 수 있겠다. 다극화 세계에 대한 중국과의 인식 및 입장 조율에서부터 대만과 한반도의 유사 사태에 대한 대응, 그리고 이를 적극 수행할 수 있는 북한의 능력 향상을 위한 경제 협력 등으로 전망할 수 있겠다. 특히 대만문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2025년부터 공식화되면서 이의 논의가 최고지도자 차원에서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겠다. 북한이 지난 2년간 3%라는 예상 밖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한 데는 중국에 대한 개방이 큰 몫을 차지했다. 여기에 올해부터 중국의 전문가를 포함한 민간의 방문이 활성화되고 있어 북한의 외화벌이도 증폭될 것이다(필자의 중국 친구도 이미 북한을 정부의 지시로 두 차례 방문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선 우리 역시 우리의 외교 정체성, 목표와 원칙의 수립이 시급하다. 실용외교의 관건적 핵심 요소는 목표 설정이다. 목표가 분명해야 실용적인 접근과 전략 마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미국 웨슬리언대 정치학 학사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석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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