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출범 첫 1년간 한국은행 일시대출 규모가 120조원을 넘어서며 역대 정부 중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따른 세수 개선 기대에도 정부가 국가채무 통계에 잡히지 않는 한은 일시대출에 반복적으로 의존하면서 재정 운용 건전성 우려가 커지고 있다.
1일 아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정부가 한은에서 빌린 일시대출금은 총 122조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차입 횟수는 58회에 달했다. 이는 지난 2011년 통계 집계 이래 역대 정부 출범 첫 1년 중 가장 큰 규모다.
한은의 대정부 일시대출 제도는 세입과 세출 간 시차로 발생하는 단기 자금 공백을 메우기 위한 것이다. 정부가 필요할 때마다 한은에서 자금을 빌려 쓰고 상환하는 구조로, 사실상 재정 마이너스 통장 역할을 한다.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한은 일시대출에 크게 의존해왔다. 지난해 6월 17조9000억원을 시작으로 7월 25조3000억원, 8월 31조6000억원을 빌렸다. 이어 9월 14조원, 12월 5조원을 추가로 차입했으며 올해 들어서도 3월 17조원, 4월 11조2000억원을 빌렸다. 5월에는 추가 차입이 없었다.
이는 역대 정부와 비교해도 두드러진다. 이전 정부 가운데 가장 많은 차입을 기록했던 윤석열 정부는 2022년 5월부터 2023년 4월까지 총 87조9000억원을 빌렸고 차입 횟수는 41회였다. 박근혜 정부 역시 출범 첫 1년간 86조8172억원을 차입했고 횟수는 32회였다. 문재인 정부는 같은 기간 차입 규모가 1조4655억원, 횟수는 3회에 그쳤다.
현재까지 정부가 미상환한 잔액은 없지만 이자 부담은 1000억원에 육박했다. 지난해 7월 이후 현재까지 정부가 한은에 지급한 누적 이자액은 968억5000만원이다.
특히 올해의 경우 반도체 경기 호황에 따른 대규모 초과세수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한은 차입이 이어지면서 정부의 재정 운용 여력을 둘러싼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국채를 발행하면 시장금리와 채권금리가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한은 일시대출을 활용하는 것"이라며 "정권 출범 초기 경기 부양 필요성이 컸던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재명 정부는 재정을 확대하면 경기가 살아나고 결국 세수가 늘어날 수 있다고 보는 측면이 있다"며 "향후 세수가 늘어나면 차입금을 상환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한은 차입 규모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대정부 일시대출이 국가채무 통계에 직접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정부가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면 국가채무가 늘어나지만, 한은 일시대출은 국가채무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정부가 국채 발행 대신 한은 일시대출을 활용할 경우 국가채무 지표만으로는 정부의 자금 조달 상황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교수는 "재정지출이 빠르게 늘어나면 시중 유동성이 확대되고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재정 운용 과정에서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