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윤의 증시 라운지] '여의도만 잔칫집'이 되지 않으려면...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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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경제에서 ‘트리클다운(trickle down) 효과’는 오랫동안 보수의 언어였다. 흔히 낙수효과로 불리는 이 개념은 대기업이 성장하고 큰 이익을 내면 그 과실이 협력사와 지역사회, 소비자에게로 흘러 들어간다는 논리다. 대기업 중심의 산업화 성공 경험은 이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그 대척점에 있는 건 '분수효과'다. 진보의 언어다. 서민경제와 중산층의 소비 여력이 살아야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 대표적 사례다. 낙수효과와 분수효과는 결국 ‘성장 우선’과 ‘분배 우선’의 오래된 대립 구도와 맞닿아 있다.

트리클다운 효과는 또한 제조업의 언어였다. 삼성과 현대차, LG 등 대기업 주도 성공방정식에 우리가 익숙해져있기 때문일게다. 산업화 시대를 지나면서 트리클다운 효과는 점점 미미해져가는 추세다. 그런데 오랜만에 찾아온 '트리클다운 효과'에 한국 경제가 다시 들썩이고 있다. 그리고, 그 낙수효과는 제조업이 아닌 자본시장에서 시작했다.

바로 증시 초호황이다. 연일 샴페인과 축포가 펑펑 터진다. 전세계에서 가장 빨리 오르고 있는 코스피 상승세는 전례가 없다. 이제 곧 8000피 시대에도 안착할 기세다. 얼마 전까지 투자자들 가슴을 조이게 만들던 중동전쟁도 어느새 한국 증시에는 종속 변수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래서 온통 주식 얘기다. 식당에서도, 길거리에서도 "내 주식 엄청 올랐다"는 얘기를 한다. 노인도, 청년도, 주부도, 직장인도 다들 주식에 빠져들었다. "객장에 애 업은 주부가 나타나면 매도할 때"라는 말도 더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SNS에서 떠도는 "순식간에 몇억 벌었다"는 밈에 부러움을 느끼는 이들도 많다. 

증시 트리클 다운 효과는 경제 지표로도 나타난다. 주가급등의 온기가 실물경제로도 번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5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6.1로 전달보다 6.9포인트 급등했다. 지난해 6월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현재경기판단 지수는 15포인트 뛰며 5년 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반도체 수출 호조와 코스피 급등이 소비자들의 기대심리를 자극한 결과다. “주식이 오르면 소비가 살아난다”는 이른바 자산효과(asset effect)가 일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증시 호황을 이끄는 반도체 실적은 실질 국내총소득(GNI)도 끌어올렸다.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전분기 대비 7.5% 증가했다. 전년 동기에 비해선 12.3%나 급증했다. 이 역시 전례 없는 숫자다. 반도체라는 화수분은 마를 기미가 없고, 그 덕에 증시가 급등하면서 현 정부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른다. 2000선을 전전하던 지수가 단숨에 8000을 넘볼 정도로 높아졌으니 자부심을 충분히 가져도 될 상황이다. 대통령 지지율도 60%대 고공행진 중이다.

그런데…. 호황의 온기가 모두에게 고루 퍼지는 건 아니다. 여전히 '여의도만 잔칫집'이라는 푸념이 적지 않다. 주변 경기가 그리 썩 좋지 않아서다. 일단 자영업자들은 여전히 어렵다. 2024년 연간 폐업자가 100만명을 돌파하고 폐업률은 9%대를 기록한 상황이 아직도 그대로다. 5대 시중은행의 1분기 개인사업자대출 연체율도 0.78%로 상승 추세다. 부동산 시장에선 전월세 불안의 '불씨'가 점점 커질 기세다.

주식 투자자라고 모두 '대박'이 난 것도 아니다. 코스피가 8000선을 돌파한 직후 급락장이 이어진 지난 20일부터 시흘간 반대매매 규모는 3000억원에 달했다. 3000억원이란 숫자에 얼마나 많은 개미가 포함돼 있는지는 모르지만, 대박의 꿈을 좇던 일부 개미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 증시가 '반짝 호황'은 분명 아니다. 구조적 변화라는 분석이 더 많다. 오랜 기간 저평가됐던 한국 증시가 재평가받는 것은 분명 긍정적 변화이며 반겨야 할 일이다. 다만 그 낙수는 아직 사회 전체를 충분히 적시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와 자본시장의 화려한 숫자 뒤편에서 자영업과 내수, 부채와 고금리의 그림자가 여전히 짙게 드리워져 있다.

정부가 더 주목해야 할 지점도 여기다. 증시발 트리클다운 효과가 진짜 한국 경제의 체력을 키우는 선순환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자산시장에만 머문 채 또 다른 양극화와 부채 후유증을 남길지는 아직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제(21일)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포용금융으로의 대전환'을 제시한 건 그래서 의미가 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초과세수' 활용을 위한 국가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증시에서 시작한 트리클다운 효과를 어떻게 더 지속시킬 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의 시작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차제에 자영업자, 부동산, 그리고 반도체를 제외한 주력산업의 경쟁력도 찬찬히 들여다봤으면 한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화수분은 없다. 증시에서 쏟아져 나오는 돈의 물줄기가 언제 마를 지도 모를 일이다. 펑펑 터지는 샴페인 소리에 묻힌 '아우성'에 더 가까이 귀를 귀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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