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 단국대 베트남학전공 초빙교수]
지난 21일부터 24일까지 이재명 대통령이 베트남을 국빈 방문했다. 이는 올해 4월 7일 또럼 베트남 공산당 총비서가 국가주석으로 선임돼 공산당과 국가기관의 최고위 직위를 겸직하게 된 후 외국 최고위 지도자로서 첫 방문이었다. 또럼 총비서는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첫 국빈으로서 작년 8월 한국을 방문했었다. 이번 이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에서 양국은 사회기반시설의 건설, 디지털 경제 발전, 공급망 확충 등 경제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1992년 양국 수교 당시, “과거를 닫고 미래를 위해 협력하자”라고 선언한 것을 잘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국빈 방문에서도 양국 관계가 미래지향적이다 보니, 과거 문제가 의제로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한편으로 작년에 베트남전쟁 종전 50주년을 지내며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고 이후 양국의 우호관계를 어떻게 다졌는지 검토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이에 국내에서 출판된 소설에서 베트남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살펴보려고 한다.
- 한국 사회 변화 속의 베트남전쟁 소설
베트남 관련 한국 소설은 베트남전쟁의 여진이 농후했던 1970년대, 반미국 분위기가 확산됐던 1980년대, 그리고 이념의 시대를 벗어나 다양성과 인간적 가치를 중시하는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전반까지 베트남 관련 3대 한국 소설은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 안정효의 <하얀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군은 당시 베트남전쟁의 민족해방적 성격을 인지하지 못했고, 명목상 '자유 수호'를 내세운 미국의 시각에 경도되어 있었다. <머나먼 쏭바강>은 평자로부터 감상주의적 휴머니즘 색채가 짙다고 평가받기도 했다. 안정효의 <하얀 전쟁>(1983)이나 이원규의 <훈장과 굴레>(1987)는 전쟁과 개인의 문제에 집중하는 경향이었다. 이 시기 한국 사회에는 미국을 제국주의 국가로 인식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작가들이 반제국주의적 시각을 표출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황석영이 <탑>(1970)에서 베트남 문화를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미군의 ‘야만성’을 폭로하여 반제국주의적 인식을 일찍부터 나타내기 시작했다.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기점으로 1980년대 한국 사회에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실체를 깨닫는 시각이 강화됐다. 이 시기에 베트남을 다룬 한국 소설은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1985)이나 이상문의 <황색인>(1989) 등 반미적 색채를 분명히 드러내는 경향을 띠었다.
한국 사회는 1990년대 초까지 민주화과정을 거친 후 사회의 다원화와 인간적 가치를 중시하는 조류로 발전해왔다. 이런 시대 흐름에 맞춰 한국 소설은 균형적 시각 속에서 베트남전쟁의 다양한 사회적 영향과 전쟁의 비극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특히 신체적 정신적 상해나 고엽제 후유증, 민간인학살 등으로 인한 전쟁의 트라우마를 언급하면서 베트남전쟁 참전자와 그 가족에게 끼친 영향에 관심을 뒀다. 구효서의 <애별>(2002)이 참전군인의 정신적 상해를 다뤘다면, 이대환의 <슬로우 불릿>(2001)은 고엽제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을 겪는 가족의 고통을 다뤘다. 오현미의 <붉은 아오자이>(1995)나 하림의 <사이공의 슬픈 노래>(2003) 등은 한국인 남성과 베트남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라이따이한’ 문제를 다뤘다.
한편 안재성의 <황금이삭>(2003)과 김용성의 <기억의 가면>(2004)은 일제 강점기부터 이어져온 가족 이야기를 통하여 1970-80년대 소설의 주요 테마였던 베트남전쟁의 성격과 파병 한국군의 위상 등을 재검토하기도 했다. 또한, 일찍이 송영이 <선생과 황태자>(1970)에서 언급하기 시작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문제도 전면적으로 다뤄졌다. 안재성이 <황금이삭>에서 베트콩의 사격에 대응하여 “그들의 가족, 그들의 민족에게 복수하는” 학살의 현장을 드러냈다. 김용성도 <기억의 가면>에서 무모한 전술로 많은 한국군이 사망하자 길가에 보이는 검은 옷 입은 자들을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에 따라 베트남 민간인들을 학살했음을 단편적으로 보였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의 후과를 전면적으로 다룬 것은 방현석의 <랍스터를 먹는 시간>(2003)이다. 한국인 투자기업에 종사하는 한 베트남인은 한국인 관리자와의 갈등 끝에 회사를 떠나고 말았는데, 한국인 관리자가 그의 고향으로 그를 찾아갔고, 그 마을이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에 의해 베트남 민간인이 집단학살된 지역임을 알게 된 후 반성과 화해에 이른다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여기서 작가들은 단지 민간인 학살이라는 범죄행위를 고발하는 데 주력하기보다 전쟁의 비극을 반성하고 극복하려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 베트남에 대한 인식의 변화
한국 소설 속에서 베트남, 베트남인에 대한 한국인들의 이해는 어떻게 변해 왔는가? 초기 소설에서 한국인들, 특히 참전 용사들은 베트남인을 미개하고 야만적이며 이기적이라고 취급하는 아류 제국주의적 태도를 보였다. 그들은, “점령군 모양 교만을 떨고 베트남인들을 얕잡아” 보았다. 한국군 병사들은 미군들을 흉내내 베트남인을 ‘국’(gook)이라고 비하하여 부르며 자신들이 미군의 동맹군임을 과시했다. 1950년대 초 한국전쟁 당시에 미군이 한국인을 ‘국’이라고 불렀는데 말이다. 한국인 병사들은 “베트남인들의 하찮은 삶이 계속되게 해주려고 들판에서는 한국인들이 피를 흘리며 싸웠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인들의 이러한 왜곡된 인식은 베트남에 대한 무지에서부터 비롯됐다. <머나먼 쏭바강>에서 작가가 당시에 한국인들이 흔히 부르듯이 남베트남을 월남(Vietnam), 북베트남을 월맹(Vietminh)이라고 칭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이러한 인식의 한계는 작가 개인적 시각 때문이기보다는 당시 한국 사회 전반의 무의식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황석영이 <무기의 그늘>에서 이상문이 <황색인>에서 베트남 역사 관련 내용을 많이 삽입한 것은 이러한 인식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바람에서일 것이다.
이러한 초기의 인식과 태도는 베트남 연인과의 사랑 또는 민족애를 지닌 젊은 지식인 청년과 교류하면서 변해간다. 유사한 역사를 공유한 민족임을 공감하고 연대의식을 발전시킨다. 심지어 한국인 남성의 고통을 넉넉히 껴안아주는 존재로서 베트남 여성을 묘사하여 현대 한국 사회에서 찾기 어려운 여인상을 투영하기도 한다. 한국인들은 베트남의 젊은 지식인과의 교류를 통해서 베트남의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게 되며, 전쟁의 목적도 “저들의 저 전통적이며 끈질긴 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베트남전쟁의 본질을 이해하게 된다. 이를 통해 베트남과 한국이 오랫동안 유사한 문화를 발전시켜 왔고, 식민지 경험을 가졌으며, 외국 세력의 침입에 저항하는 역사를 공유했음을 공감하며 상호 연대의식을 형성해나간다. 후대로 올수록 베트남에 대한 반성적 경향은 더 강화된다. 한편으로는 인식 전환의 계기가 한국 남성과 베트남 여성의 사랑이라는 구도로 되어 있어 어쩐지 전투적인 남성과 평화로운 여성으로 관념화한 오리엔탈리즘의 논리와 흡사한 측면도 있다.
2000년대 이후에는 베트남전쟁과 베트남 사회의 이면을 고발하는 이전의 경향으로부터 자기반성과 이를 극복하려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방현석이 <존재의 형식>에서 남베트남해방민족전선 출신 영화감독, <랍스터를 먹는 시간>에서 베트콩 출신 노동자를 등장시켜, 전쟁의 고통을 겪고 조국을 지켰던 베트남인들의 당당함을 보였다. 그는 여기에 통역료를 깎으려는 한국인 변호사 친구와 베트남인들을 고용하여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는 한국인 투자기업 관리자들의 오만함을 대비시켜 일부 한국인들의 천민자본주의적 속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반성과 오만은 지금도 여전히 한국인들 마음에 남아 있다.
한국 소설에 나타난 베트남에 대한 인식의 지속과 변화는 작가 개인의 특성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시대상을 소설에 투영한 것이기도 하다. 두 나라가 과거의 비극을 딛고 새로운 협력의 동반자가 된 후 양국의 우호관계는 급속히 심화됐다. 이 같은 시대적 상황 속에서 작가들은 우리에게 아류 제국주의적 인식에서 벗어나 양국이 서로 채워주고 보듬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는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필자 주요 약력
▷서강대 정치학박사 ▷서강대 동아연구소 및 대학원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 교수 역임 ▷한국-베트남 현인그룹 위원 역임 ▷현 단국대 아시아중동학부 베트남학전공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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