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정동영 이야기 | 진리·정의·자유] 정동영 장관의 북한 구성시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 언급을 둘러싼 안보 갈등의 허와 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북한 구성시 우라늄 농축시설 언급을 둘러싸고 한국 정치가 다시 안보 논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야권은 기밀 누설과 외교 참사를 주장하며 경질론까지 제기했고, 정부와 여권은 공개된 정보에 대한 정략적 공세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국가안보의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이 흥분보다 사실이 먼저이고, 정파보다 국익이 먼저다. 이번 사안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결론은 단순한 흑백논리가 아니라 훨씬 복합적인 중간지대에 있다.

우선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과연 “구성”이라는 지명이 정 장관에 의해 처음 세상에 공개된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북한 평안북도 구성시와 그 인근 방현 항공기공장, 방현기지 일대는 이미 오래전부터 국제 안보 연구기관과 미국의 싱크탱크에서 우라늄 농축 관련 의심 시설로 거론돼 왔다.

2016년 미국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는 방현 항공기공장 일대가 초기 소규모 원심분리기 연구·개발 시설일 가능성을 제기했고, 약 200∼300기의 원심분리기를 수용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후 로이터를 비롯한 국제 언론도 이 지역을 북한 핵개발의 잠재적 거점으로 다뤘다.

2024년에는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연구원이 자유아시아방송 인터뷰를 통해 구성 용덕동 일대의 대규모 지하시설이 우라늄 농축과 연계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2025년과 2026년에는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관련 연구자들이 위성사진 분석을 통해 북한의 비공개 핵시설 확장 가능성을 계속 제기했다. 다시 말해 구성이라는 지명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비밀정보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 점에서 정동영 장관의 주장에는 일정한 사실적 근거가 있다. “10년 전부터 미국 연구기관과 의회 보고서, 언론에서 언급된 지명인데 왜 그것이 갑자기 기밀이 되느냐”는 반박은 완전히 틀린 말이 아니다. 실제로 이재명 대통령 역시 여러 연구보고서와 언론을 통해 이미 알려진 사안이라는 취지로 방어에 나섰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보의 존재 여부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맥락으로 말했는가이다. 민간 연구기관이 위성사진과 탈북자 증언, 공개자료를 토대로 “의심 시설”이라고 분석하는 것과, 현직 통일부 장관이 국회나 공개석상에서 특정 지명을 직접 언급하는 것은 외교·안보적으로 전혀 다른 무게를 가진다.

공개자료에 있었다고 해서 모든 발언이 자동으로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공개된 흔적이 있다고 해서 이를 곧바로 “미국 기밀 누설”이라고 몰아붙이는 것도 과도하다.

실제로 군 정보당국은 또 다른 판단을 하고 있다. 국방정보본부는 북한 우라늄 농축시설의 구체적 위치명이 한미 공동비밀로 분류된다는 취지의 설명을 내놓은 바 있다. 이는 공개 출처의 정보와 실제 동맹 차원의 정보 분류가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같은 지명이라도 정부의 공식 확인 여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따라서 정 장관의 발언은 “전대미문의 기밀 누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전혀 문제없는 공개 발언”이라고만 보기에도 부족하다.

결국 이번 논란의 본질은 정보 그 자체보다 한국 정치의 병리적 구조에 있다. 우리는 안보 문제를 국익의 시각이 아니라 정파의 무기로 소비하는 데 너무 익숙하다. 보수는 진보 정부의 대북 접근을 쉽게 안보 불안으로 규정하고, 진보는 보수의 문제 제기를 곧바로 냉전적 정략으로 몰아붙인다. 그 사이 정작 중요한 질문은 사라진다. 북한의 핵 능력은 얼마나 고도화되고 있는가. 한미 정보협력은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북핵 억제와 대화의 병행 전략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본질은 사라지고 구호만 남는다.

정 장관이 말한 “달은 북핵 문제의 시급성이고, 손가락은 지명 논란”이라는 비유는 바로 이 점에서 일정한 설득력을 가진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 능력은 영변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강선, 영변, 방현과 구성 의심 시설 등 여러 축에서 핵물질 생산 능력은 꾸준히 고도화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영변과 강선의 미신고 농축시설에 지속적인 우려를 제기하고 있으며, 미국의 위성정보 분석기관들도 새로운 의심 시설의 확장을 계속 추적하고 있다. 진짜 위협은 지명을 말했느냐가 아니라, 북한 핵능력이 현실로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갈등은 한국만의 특수한 일이 아니다. 세계 주요 국가들에서도 공개 정보와 기밀 정보의 경계는 늘 정치적 격돌의 중심에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 논란이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전쟁에 돌입했다. 위성사진, 정보기관 보고서, 망명자 증언이 근거였다. 그러나 전쟁 이후 실제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정보는 정치의 무기가 되었고, 그 대가는 미국의 신뢰와 중동의 혼란으로 돌아왔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정부는 이라크가 45분 안에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정보 문건으로 참전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나중에 상당 부분이 과장되거나 부정확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보의 정치화는 단기적으로는 정권에 유리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국가의 신뢰 자본을 무너뜨린다.

이스라엘 역시 이란 핵시설 타격 가능성을 둘러싸고 모사드와 군 정보기관의 평가가 언론에 흘러나올 때마다 총리와 야권이 격돌했다. 네타냐후 시절 이란 핵위협은 안보 이슈이면서 동시에 선거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안보 전문가들은 늘 같은 경고를 했다. 국가안보는 정당의 자산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자산이라는 것이다.

일본은 북한 미사일과 핵시설 문제에서 공개 가능한 정보와 동맹 차원의 비공개 정보를 철저히 분리한다. 독일은 냉전 이후 정보기관의 판단이 정치 선전 도구로 악용되지 않도록 의회 통제와 다층 검증을 강화했다.

모두 같은 결론이다. 신뢰는 속도가 아니라 절제에서 나온다.

한국도 이 교훈을 배워야 한다. 첫째, 장관급 이상 고위 당국자의 공개 발언에는 반드시 사전 정보 검토 절차가 강화돼야 한다. 공개자료라 하더라도 한미 공동비밀과 접점이 있다면 국방부, 외교부, 정보당국과 조율해야 한다. 둘째, 국회 역시 안보 사안을 제기할 때 공개정보와 기밀정보를 구분하는 최소한의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셋째, 정부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단순히 “정략”이라고 반박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공개자료이고 무엇이 확인할 수 없는 영역인지 국민에게 차분히 설명해야 한다. 넷째, 언론은 정파적 프레임보다 팩트의 층위를 먼저 보여줘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보를 흥분의 언어가 아니라 책임의 언어로 다루는 일이다. 성경 잠언은 말한다. “지혜로운 자는 듣고 학식을 더하고,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느니라.” 국가안보도 먼저 들어야 한다. 사실을 듣고, 동맹의 신호를 듣고, 상대의 우려를 들어야 한다. 듣지 않고 외치는 정치는 결국 나라를 피곤하게 만들 뿐이다.

정동영 장관의 구성 발언은 단순히 한 장관의 실언 여부를 넘어 한국 정치의 수준을 시험하는 사건이 되었다. 우리는 이것을 또 하나의 정파 싸움으로 소비할 것인가, 아니면 국가안보의 성숙한 기준을 세우는 계기로 삼을 것인가. 진짜 위험은 북한의 핵시설만이 아니다. 내부의 분열과 경솔한 언어가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국익은 함성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국익은 절제와 신뢰, 그리고 품격으로 지켜진다. 안보는 정략보다 크고, 진실은 분노보다 오래간다. 그것이 국가를 지키는 마지막 힘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정동영 통일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