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약가인하 후폭풍… 버틸 수 있는 체력 남겨둬야

정부가 제네릭(복제약) 약가를 오리지널 대비 53.55%에서 45% 수준으로 낮추는 방침을 확정했다. 14년 만의 전면 개편이다. 건보재정 효율화라는 명분은 분명하다. 그러나 제약업계 우려가 깊다. 약가 인하가 단순히 매출 감소에 그치지 않고, 연구·개발(R&D) 투자 축소와 고용 불안, 더 나아가 필수의약품 공급망 흔들림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 26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통과된 약가제도 개선안은 올해 하반기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된다. 정부는 산업계 충격을 줄이겠다며 2036년까지 10년에 걸쳐 조정하겠다고 했다. 이미 등재된 약제는 등재 시점을 기준으로 나눠 적용하고, 계단식 약가 인하도 20번째에서 13번째 제네릭부터 적용하도록 했다. 숫자만 보면 완충장치를 마련한 거 같지만, 업계가 체감하는 현실은 다르다. 제네릭 비중이 큰 국내 제약사들로선 당장 영업이익 방어선 자체가 흔들릴 수 있어서다.

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건 약가 인하가 가져올 연쇄 반응이다. 당장 원가와 판관비를 줄여도, 일정 시점이 지나면 인건비와 투자비를 건드릴 수밖에 없다. 제네릭 판매로 캐시카우를 유지해왔던 중소제약사일수록 타격은 더 크다. 신약 파이프라인을 다수 보유한 대형사와 달리 중소사는 당장 흡수할 다른 축이 많지 않다.

중동 사태로 인한 원자재 공급 불안이 겹친 것도 부담이다. 원료 수급이 흔들리고 물류비가 오르는 상황에서 약가까지 내려가면 기업들은 내부 비용 절감에 나설 수밖에 없다. 결국 R&D 축소와 인력 재편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제약산업은 사람과 시간이 자산인 산업이다. 임상과 연구는 적어도 10년여에 걸친 투자와 인내가 필요하다. 오늘 끊긴 투자가 내일의 파이프라인 공백으로 돌아올 수 있다. 약가 인하의 효과가 건강보험 재정 절감으로만 계산될 수 없는 구조적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약가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재정 절감이 가능해도 중장기적으로 국내 생산 기반이 약해지고 공급 불안이 커진다면 그 역시 사회적 비용이다. 약값을 낮췄는데 약이 부족해진다면 그 정책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약가 인하와 함께 대체조제, 성분명 처방, 처방 유인, 환자 본인부담 구조 등 여러 장치를 함께 묶어 제네릭 사용을 늘리고 공급을 관리한다. 핵심은 가격만 낮추는 것이 아니라 그 산업이 계속 영위될 수 있도록 제도 전체를 설계하는 데 있다. 기업의 생존 문제로 전가하지 않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일괄적 기준만 들이대기보다 기업 규모와 품목 특성, 필수의약품 여부, R&D 투자 비중을 고려한 차등 보완책을 더 촘촘히 마련해야 한다. 중소제약사와 원료의약품 공급 취약 기업에는 더 완만한 조정 속도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업계 역시 구조조정과 체질 개선, 생산성 향상, 품목 포트폴리오 재편 등 자사가 영위할 수 있는 혁신안을 발빠르게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재정 절감과 산업 생태계 보호를 함께 봐야 하고, 업계는 위기를 명분 삼아 낡은 경영 관행을 바꾸어야 한다. 정책의 진짜 체력은 산업을 살리는 데서 나온다. 약가를 내리는 칼날 뒤, 산업이 당장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체력을 남겨둬야 한다. 제도 개편이 성공하려면 재정 효율화가 산업 쇠퇴로 돌아오지 않는 그 균형이 핵심이다.
산업부 이효정 차장
산업부 이효정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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