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소년 범죄 이야기 | 진리·정의·자유] AI시대, 촉법소년의 경계

  • —관용(寬容)의 한계를 넘어 책임(責任)의 질서를 다시 세워야 한다

부산에서 발생한 소년범 성범죄 사건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질문을 우리 앞에 던진다. 청소년 범죄를 어디까지 보호의 영역에 둘 것인가, 그리고 언제부터 책임의 영역으로 전환할 것인가. 이 문제는 단순한 법률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인간과 책임, 그리고 정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가늠하는 문명의 척도다.
 
오늘의 청소년 범죄는 과거와 질적으로 다르다. 더 이상 우발성과 충동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협박은 교묘해졌고, 범행은 계획적이며, 디지털 기술은 범죄를 은폐하고 증폭하는 도구가 되었다. 성착취, 불법 촬영, 온라인 협박, 집단 가해, 디지털 성범죄는 더 이상 일부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능화’와 ‘흉폭화’는 수사가 아니라 현실이다.
 
문제는 이 변화 앞에서 우리의 제도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현행법은 10세 이상 14세 미만을 촉법소년으로 규정하고 형사처벌 대신 보호처분을 원칙으로 한다. 본래 취지는 분명하다. 미성숙한 존재를 처벌보다 교화의 대상으로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는 현실과 조응할 때 비로소 정당성을 가진다. 지금의 범죄 양상과 디지털 환경, 그리고 청소년의 인지 능력을 고려할 때, 기존 기준은 더 이상 충분히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이제는 결단이 필요하다. 촉법소년 연령 기준은 원칙적으로 만 13세로 낮추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감정적 엄벌주의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최소한의 정합성 회복이다. 오늘날 13세는 단순한 미성숙의 단계가 아니다. 디지털 환경을 자유롭게 활용하고,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일정 부분 인식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 있다. 범죄의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연령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진정한 개혁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나이 중심의 기계적 판단을 넘어, 죄질 중심의 책임 구조를 도입하는 것이다. 나이는 기준이 될 수 있으나 절대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계획적 범행, 반복 범행, 집단 가해, 성폭력, 디지털 성착취, 흉기 사용과 같은 중대 범죄는 그 사회적 위해가 명백하다. 이러한 범죄에 대해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동일한 보호처분 틀 안에 넣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방치에 가깝다.
 
따라서 분명히 해야 한다. 악질적 범죄에 대해서는 연령 기준을 넘어서는 예외적 판단이 가능하도록 법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이것은 처벌을 위한 처벌이 아니라,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다. 동시에 이는 다수의 선량한 청소년을 지키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공자는 “형벌이 공정하지 않으면 백성이 수치심을 잃는다(刑罰不中 則民無所措手足)”고 하였다. 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법을 존중하지 않게 된다.
 
지금 일부 청소년 범죄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바로 이 지점이다. ‘어차피 처벌받지 않는다’는 왜곡된 인식이 범죄의 심리적 장벽을 무너뜨리고 있다. 보호라는 이름 아래 책임이 유예될 때, 법은 오히려 범죄를 유인하는 신호로 전락한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하여 성선설을 말했지만, 그 선함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가정과 학교, 사회가 함께 길러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그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물질만능주의는 결과를 강조하고, 경쟁 중심 교육은 공감을 약화시키며, 디지털 환경은 타인을 화면 속 객체로 전환시킨다.
 
여기에 AI와 SNS는 범죄의 기술적 장벽을 극도로 낮춘다. 익명 계정, 자동 삭제 메시지, 딥페이크, 폐쇄형 채널은 청소년에게도 손쉽게 접근 가능하다.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윤리와 책임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 불균형 속에서 범죄는 증식한다.
 
불경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였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마음은 사회가 만든다. 경쟁만 있고 경외가 없는 교육, 자유만 있고 책임이 없는 문화, 권리만 있고 절제가 없는 구조는 왜곡된 인간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해법은 단순한 형량 조정이 아니라, 법·교육·기술·문화 전반의 재정립이어야 한다.
 
첫째, 촉법소년 연령을 만 13세로 하향하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는 시대 변화에 대한 최소한의 대응이다.
 
둘째, 죄질 중심의 예외 규정을 도입해야 한다. 중대 범죄에 대해서는 나이만으로 일괄 처리하지 않고, 계획성·잔혹성·재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다 엄정한 절차를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처벌과 교화를 병행하는 이중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초범과 경미범은 회복 중심으로 접근하되, 강력범과 반복범은 사회 방어를 우선하는 분리와 집중 교정이 필요하다. 관용은 책임 위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넷째, 디지털 플랫폼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오늘의 범죄는 온라인에서 시작되고 확산된다. AI 악용 방지, 불법 콘텐츠 차단, 청소년 보호 알고리즘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다섯째, 교육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성취 중심 교육을 넘어 공감과 책임, 절제를 체화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보는 가치가 다시 자리 잡아야 한다.
 
여섯째, 가정과 사회의 역할을 복원해야 한다. 아이는 사회가 키운다. 그러나 지금 사회는 아이를 방치하고 있다. 왜곡된 성공관과 무책임한 자유가 범죄의 토양이 되고 있다.
 
노자는 “지족자부(知足者富)”라 하였다. 만족을 아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라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의 사회는 끝없는 욕망을 부추기고, 그 수단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범죄는 반복된다.
 
결국 이 문제의 본질은 명확하다. 보호와 책임의 경계를 어디에 둘 것인가. 지금까지 우리는 보호에 더 많은 무게를 두어왔다. 그러나 보호가 책임의 부재로 이어지는 순간, 그것은 정의가 아니다. 진리는 현실을 직시하는 데 있고, 정의는 약자를 지키기 위해 단호해지는 데 있으며, 자유는 질서 위에서만 유지된다.
 
촉법소년 제도의 개편은 처벌을 강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무너진 책임의 질서를 다시 세우자는 요구다.
 
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나 먼저 보호받아야 할 것은 피해자의 삶이며, 다음은 아직 범죄에 물들지 않은 다수 청소년의 미래다. 이 우선순서가 뒤바뀌는 순간, 사회는 더 이상 공동체가 아니다.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단 하나의 원칙이다.
 
잘못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이 단순하고도 근본적인 질서가 바로 서지 않는 한, 어떤 법도, 어떤 교육도, 어떤 기술도 우리 사회를 지켜내지 못할 것이다.
 
사진대법원 제공
사진=대법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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