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BTS 특집컬럼] 128년을 건너온 노래, 오늘 광화문에 서다

노래는 대개 시간을 넘지 못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곡도 유행이 지나면 잊힌다. 산업으로서의 음악은 빠르게 생산되고 빠르게 소비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노래는 자기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시간을 건너는 노래가 있다. 아리랑이 그렇다.



아리랑은 특정한 작곡가가 만든 곡이 아니다. 어느 한 시점에 완성된 작품도 아니다. 수많은 사람의 입을 거쳐 변주되고 축적되며 이어져 온 집합적 창작물이다. 기록으로 확인되는 것만 보더라도 19세기 말부터 전승돼 왔지만, 그 이전부터 구전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 노래의 본질은 기원이 아니라 축적에 있다. 만들어진 노래가 아니라 쌓여온 노래다.

넷플릭스 BTS 공연 생중계 홍보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BTS 공연 생중계 홍보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제공]



그래서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의 형식이다. 한 사회가 겪은 이별과 이동, 고통과 회복의 감정이 켜켜이 쌓여 하나의 구조를 이룬 것이다. 아리랑을 듣는다는 것은 멜로디를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축적된 시간을 통과하는 경험에 가깝다.



그 아리랑이 오늘 서울 광화문에 선다. 그리고 그 노래를 부르는 주체는 방탄소년단(BTS)이다. 세계 대중음악의 중심에 선 그룹과 한국인의 가장 오래된 정서가 한 무대에서 만나는 장면이다. 이를 단순히 전통과 현대의 결합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이 사건의 본질은 결합이 아니라 전환에 있다.



우리는 지금 K-팝이라는 산업적 성공의 단계에서 K-헤리티지라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문턱에 서 있다. K-팝은 기획과 제작, 유통과 팬덤이 결합된 현대적 시스템의 성과다. 한국 문화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산업의 영역이다. 반면 아리랑은 시간의 영역이다. 시장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문화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받으며 2관왕에 오른 16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 핫트랙스에 진열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음반 사진연합뉴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받으며 2관왕에 오른 16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 핫트랙스에 진열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음반. [사진=연합뉴스]



이 둘이 만나는 순간은 단순한 협업이 아니다. 산업과 시간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그래서 오늘 광화문에서의 무대는 하나의 공연을 넘어선다. 문화의 층위가 이동하는 사건이다. 콘텐츠 중심의 경쟁에서 문화 구조 중심의 경쟁으로 넘어가는 출발점일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문화적 성공은 개별 콘텐츠 중심이었다. 음악, 드라마, 영화가 각각 세계 시장에서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작품 단위의 성공에 머물렀다. 히트는 있었지만 축적된 구조는 약했다. 이제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 콘텐츠의 성공을 문화 구조의 형성으로 이어가야 한다.



아리랑이 중요한 이유는 그 확장성에 있다. 특정 장르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형태로 재해석될 수 있다. 음악으로도, 공연으로도, 영상과 이야기로도 확장 가능하다. 실제로 아리랑은 지역마다 다른 형태로 전승돼 왔고, 시대마다 새로운 의미를 덧입어 왔다. 고정된 원형이 아니라 유연한 구조를 가진 문화다.



이 유연성은 글로벌 시대에 중요한 조건이다. 고정된 콘텐츠는 소비되고 끝나지만, 열린 구조는 계속해서 확장된다. 아리랑은 이미 그런 구조를 갖고 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그동안 아리랑은 여러 차례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돼 왔다. 국제 행사에서 연주되기도 했고, 공연과 영상 콘텐츠에 삽입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 일회성에 그쳤다. 하나의 장면으로 소비되고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접근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활용을 넘어 구조화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속 한 장면 사진쇼박스 제공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속 한 장면 [사진=쇼박스 제공]



구조화란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연결되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전환이 필요하다. 우선 해석의 폭을 넓혀야 한다. 아리랑을 하나의 정답으로 고정하면 더 이상 확장되지 않는다.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문화권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서사의 확장이 필요하다. 아리랑은 단순한 멜로디가 아니라 이야기다. 이별과 이동, 희망과 회복이라는 보편적 서사를 담고 있다. 이 서사는 영화와 드라마, 게임, 교육 콘텐츠로 이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동일한 형태의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의 생성이다.



아울러 연결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개별 콘텐츠가 흩어져서는 지속성이 생기지 않는다. 음악과 공연, 관광과 교육, 디지털 콘텐츠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문화 생태계가 형성된다. 이때 전통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매개가 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의 변화다. 전통을 보존의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론 보존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통은 작동할 때 살아남는다. 변주되고 재해석될 때 확장된다.



아리랑은 원래부터 작동하는 문화였다. 사람들의 삶 속에서 불리고, 상황에 따라 바뀌며, 지역에 따라 다른 형태로 존재해 왔다. 그 유연성이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오히려 지금의 시대에 더 적합한 특성이다.

그룹 방탄소년단BTS과 제인 로우 애플뮤직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진애플뮤직 제공
그룹 방탄소년단(BTS)과 제인 로우 애플뮤직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진=애플뮤직 제공]



이 지점에서 BTS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그들은 전통을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라 전통을 현재의 언어로 번역하는 존재다. 한국의 정서를 세계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내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오늘의 무대는 음악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신호가 된다.



그러나 이 신호가 방향이 되기 위해서는 이후의 과정이 중요하다. 한 번의 공연으로는 변화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감동은 순간이지만 구조는 반복을 통해 형성된다. 오늘의 장면이 다양한 형태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새로운 콘텐츠로 확장될 때 비로소 하나의 흐름이 만들어진다.



지금 세계는 콘텐츠 자체보다 그 배경에 있는 문화의 깊이를 본다. 단순한 소비를 넘어 서사와 맥락을 이해하려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이 나아갈 길은 분명하다. 계속해서 새로운 히트작을 만들어내는 데 머물 것인가, 아니면 축적된 문화 구조를 가진 나라로 나아갈 것인가.



아리랑은 이미 시간을 견뎌온 자산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방향이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데는 성공했다. 이제는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져야 한다.



오늘 광화문에서 울려 퍼질 아리랑은 하나의 완성이 아니다. 그것은 시작이다. 120여 년을 건너온 노래가 이제 또 다른 시간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흐름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 노래를 과거에 머물게 할 것인지, 미래로 확장시킬 것인지는 결국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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