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경의 오션노트] 해운 패권 경쟁 치열한데…韓만 '담합 규제'에 발목

  • 해묵은 담합 논쟁에 묶인 K-해운

  • 업계 "담합 아닌 산업 생존 장치"

사진챗GPT
[사진=챗GPT]
"중국과 일본, 유럽은 해운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인식하고 통합과 협력을 통해 경쟁력을 키우고 있지만 한국은 공동행위에 대한 규제가 엄격해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박정석 한국해운협회 회장이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바다와미래 오찬 포럼'에서 한 말이다. 글로벌 해운산업을 둘러싼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규제의 틀에 묶여 성장의 제약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정기선 운임 공동행위를 둘러싼 '해운사 담합 논쟁'으로 이어진다. 정기선사 운임 공동행위를 둘러싼 법적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관련 소송은 1심에서 해운법상 정당한 공동행위로 인정됐지만 대법원이 이를 파기환송하면서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 가능성을 다시 열어둔 상태다.

핵심 쟁점은 해운법 제29조가 허용하는 공동행위와 공정거래법 제58조의 '정당한 행위' 요건을 어떻게 조화롭게 해석할 것인지에 있다. 동일한 행위를 두고 산업 협력으로 볼 것인지, 담합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법적 판단이 크게 엇갈리는 구조다.

해운업계는 공동행위를 단순 담합으로 보는 시각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해운산업은 막대한 고정비와 매몰 비용, 선박 단위의 불가분성, 극심한 수요 변동성을 동시에 안고 있는 대표적인 장치산업으로, 완전 자유경쟁이 오히려 파괴적 덤핑과 줄도산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구조적 한계는 경제학적으로도 설명된다. 시카고학파의 '공핵(Empty Core)' 이론에 따르면 해운과 같이 대규모 설비와 매몰비용이 큰 산업에서는 자유경쟁만으로 안정적 균형이 형성되기 어렵고, 일정 수준의 협력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이에 따라 업계는 해운사의 공동행위를 가격 담합이 아닌 안정화 카르텔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운임 공동행위를 통해 과도한 가격 경쟁을 억제하고, 시장 붕괴를 방지함으로써 오히려 사회적 총후생을 높일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 안정화 카르텔이 작동할 경우 화주는 예측 가능한 운임과 안정적인 선복을 확보할 수 있고, 선사는 적정 수익을 기반으로 지속적인 투자와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진다.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글로벌 시장도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해운 공동행위를 일률적으로 '당연 위법'으로 보지 않고 산업 특성을 고려한 합리의 원칙(Rule of Reason)에 따라 실질 효과를 평가하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법 해석 충돌에 따른 규제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있다. 해운법은 공동행위를 일정 부분 허용하고 있지만 공정거래법 적용 과정에서 제재 가능성이 상존하면서 기업으로써는 경영 판단 자체가 위축되는 상황이다.

특히 이러한 규제 환경은 항만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다. 국내 선사들의 공동운항은 부산항 환적 물동량을 유지하는 핵심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규제가 강화될 경우 물동량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결국 이번 논쟁은 공정 경쟁과 산업 생존 사이의 선택 문제로 귀결된다. 글로벌 해운 시장이 초대형 선사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국내 선사만 규제에 묶여 있을 경우 경쟁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정기선 시장은 유럽 선사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세계 1위 선사 MSC를 비롯해 주요 선사들이 선복 확대와 인수합병을 통해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면서 과점 구조가 심화되는 흐름이다.

이에 시장에서는 공정위와 해양수산부 간 역할을 재정립하고, 해운법 취지와 산업 특성을 반영한 정교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한 법리 적용을 넘어 경제적 효율성과 글로벌 경쟁 환경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해운 공동행위를 금지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경쟁이 강화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공급 불안과 산업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며 "글로벌 기준과 산업 현실을 반영한 합리적인 제도 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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