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건축이야기 | 진리·정의·자유] 우리 시대의 영성 건축가 윤경식, 산불을 넘어 세계가 주목한 강릉 인월사의 재탄생

  • 제 53회 세계건축상 대상 수상은 영성 회복에 대한 세계적 승인

강릉의 바다는 언제나처럼 잔잔하다. 그러나 그 잔잔함은 한때 모든 것을 삼켜버린 불의 기억 위에 놓여 있다. 동해안을 휩쓴 대형 산불은 한 사찰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비구니 수행자가 지키던 작은 절, 인월사. 남은 것은 그을린 대지와 수행자의 승복뿐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에서 폐허는 언제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잿더미 위에서 다시 피어나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의지이며, 형상이 아니라 정신이다. 인월사는 그렇게 다시 시작됐다.

사진  작가 김종오
[사진 = 작가 김종오]



2026년 3월 17일, 영국에서 발표된 제53회 세계건축상 대상 수상 소식은 그 재탄생의 의미를 세계가 인정한 사건이었다. 53개국 243명의 심사위원이 참여한 이 권위 있는 상은 단순한 미적 완성도를 넘어, 건축이 인간과 시대에 던지는 질문의 깊이를 평가한다. 강릉 인월사 담마센터는 그 질문에 가장 조용하면서도 가장 깊이 있는 응답을 내놓은 작품으로 선택됐다. 이는 단순한 수상이 아니라 상실과 부활, 그리고 영성의 회복을 담은 건축에 대한 세계적 승인이라 할 만하다.



인월사 주지 재범 스님은 준공 직후 담담하게 말했다. “불은 건물을 태웠지만 수행은 태우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다시 세운 것은 절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이 한 문장은 인월사의 모든 서사를 압축한다. 전국에서 모인 불자들의 정성, 이름 없이 이어진 기부와 연대, 그리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수행자의 결심. 그것은 물질이 아니라 인연이었고, 그 인연이 하나의 공간으로 응결된 것이다. 불경의 말처럼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 인월사는 바로 그 마음의 건축이다.



이 폐허 위에 어떤 건축을 세울 것인가. 윤경식은 ‘복원’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과거를 반복하는 대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길을 택했다. 인월사라는 이름은 경포호에 비친 달의 도장을 뜻한다. 하나의 달이 수많은 물 위에 비치듯, 하나의 진리가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는 세계. 그는 이 상징을 건축의 언어로 번역했다. 부처의 눈썹, 초승달의 곡선, 불경에 기록된 그 형상을 하나의 건물 전체로 확장했다. 직선이 아니라 곡선, 분절이 아니라 연결, 기능이 아니라 관계. 그 선택은 곧 철학이었다.



인월사에 들어서는 경험은 단순한 방문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여정이다. 사찰 입구에서 먼저 마주하는 것은 ‘카르마의 거울’이라 불리는 연못이다. 바람이 멎으면 물은 완벽한 거울이 되어 하늘과 산, 그리고 인간의 얼굴을 비춘다. 그러나 그 앞에서 사람은 외형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본다. 자신이 살아온 흔적, 쌓아온 행위,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질문들. 불경은 말한다.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생하고 인연 따라 사라진다.” 그 연못은 바로 그 인연을 비추는 거울이다.

사진김종오 작가
[사진=작가 김종오 ]



연못을 지나 시선을 들면 부드러운 곡선의 건물이 나타난다. 초승달처럼 휘어진 지붕선은 주변 산세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건물은 땅 위에 놓여 있다기보다 그곳에 스며든 듯 자리한다. 노자가 말한 “도는 자연을 따른다”는 구절이 떠오른다. 인월사의 건축은 자연을 지배하지 않는다.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 자연과 건축, 인간과 공간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사진  작가 김종오
[사진 = 작가 김종오]



건물 내부에 들어서면 중앙 로비가 펼쳐진다. 이 공간은 비어 있다. 그러나 그 비어 있음이 오히려 충만하다. 좌우로 배치된 법당과 명상센터는 기능적으로 나뉘어 있지만, 공간적으로는 하나의 흐름 속에 놓여 있다. 이 비움은 단순한 여백이 아니라 사유를 위한 자리다. 불교의 공(空) 사상은 여기서 공간으로 구현된다. 비어 있음은 없음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다.

사진  작가 김종오
[사진 = 작가 김종오]



전면의 ‘인드라 월’은 이 건축의 핵심이다. 다양한 색의 블록과 그 사이의 빈 공간으로 구성된 담장은 인드라망을 형상화한다. 각각의 존재가 서로를 비추며 전체를 이루는 구조다. 낮에는 빛이 내부로 스며들고, 밤에는 내부의 빛이 외부로 흘러나온다. 안과 밖의 경계는 흐려지고, 존재는 서로를 반영한다. 성경의 구절처럼 “빛은 어둠 속에서 비치고 어둠은 그것을 이기지 못한다.” 인월사의 빛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존재를 깨우는 빛이다.

사진  작가 김종오
[사진 = 작가 김종오]



천장에 떠 있는 음향판들은 은하처럼 배치돼 있다. 그것은 소리를 흡수하는 장치이면서 동시에 우주의 형상을 상징한다. 그 아래에서 명상하는 사람은 자신이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서로 연결된 존재임을 체감한다. 연기법은 이곳에서 관념이 아니라 체험이 된다.



윤경식은 이러한 건축을 통해 ‘영성’을 말한다. 그러나 그의 영성은 종교적 교리를 반복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 존재를 다시 묻는 과정이다. 그는 건축을 통해 인간을 변화시키려 한다. “건축은 사람이 머무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변하는 곳이다.” 이 말은 선언이 아니라 실천이다.

건축가 윤경식
건축가 윤경식  [자료=인월사 담마센터]



그의 건축 인생은 화려한 외형보다 깊은 내면을 택해왔다. 이미 26회의 국제 건축상을 수상한 그는 세계 건축계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수상의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지속적인 사유와 실천의 결과다. 유행을 따르지 않고 본질을 탐구하는 태도, 그것이 그의 건축을 특별하게 만든다.



전남 함평의 ‘기본학교’는 그의 철학이 또 다른 방식으로 구현된 공간이다.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가 이끄는 이 학교는 ‘생각하는 인간’을 길러내는 교육을 지향한다. 윤경식은 그 철학을 공간으로 풀어냈다. 화려하지 않지만 깊이가 있는 건축, 말을 하지 않지만 질문을 던지는 공간. 학생들은 그 안에서 지식을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를 성찰하게 된다. 건축이 교육의 본질을 확장하는 순간이다.

건축가 윤경식
건축가 윤경식  [자료=인월사 담마센터]



윤경식의 건축에서 반복되는 키워드는 분명하다. 비움, 관계, 빛, 자연. 그는 공간을 채우기보다 비워둔다. 그러나 그 비움은 공허가 아니라 가능성이다. 그는 공간을 분리하기보다 연결한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세계를 이어주는 구조를 만든다. 그는 빛을 통해 공간에 생명을 부여하고, 자연과의 조화를 통해 건축을 시간 속에 놓는다.



성경은 “지혜로운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다”고 말한다. 윤경식에게 그 반석은 철학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 없이 세워진 건축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믿음이다. 노자는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의 건축은 빠르지 않다. 그러나 깊다. 그리고 오래 남는다.



그가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은 작품들은 이러한 철학의 연속선상에 있다. 종교 공간에서는 인간 존재를 성찰하게 하는 장치를 만들었고, 교육 공간에서는 인간의 사고를 확장하는 환경을 구축했으며, 공공 공간에서는 공동체를 회복하는 구조를 제시했다. 그의 건축은 보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형태가 아니라 과정이며, 결과가 아니라 질문이다.

사진작가 김종오
[사진=작가 김종오]



강릉 인월사는 그 모든 사유가 응축된 작품이다. 그것은 단순한 사찰이 아니라 상실 이후 다시 일어선 인간의 기록이며, 공동체의 연대가 빚어낸 공간이며, 영혼을 담은 건축이다. 불은 모든 것을 태운다. 그러나 마음은 태울 수 없다. 그리고 그 마음은 다시 공간을 만든다.


윤경식의 건축은 그 사실을 증명한다. 그리고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한다.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
건축은 결국 우주 속 인간이다.
 

건축가 윤경식
건축가 윤경식 [자료=인월사 담마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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