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20세기 산업자본주의는 인류에게 전례 없는 물질적 풍요를 선사했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근본적인 왜곡이 자리 잡고 있다. 공장의 거대한 조립라인 위에서 인간은 고유한 존엄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생산을 위한 하나의 요소이자 인적 자원, 그리고 언제든 교체 가능한 '부품'으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기계론적 인간관은 효율성과 생산성이라는 미명 아래 정당화되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정년제도'라는 형태로 굳어졌다. 하지만 100세 시대를 향해가는 21세기의 인류에게 19세기의 논리로 만들어진 정년제는 단순한 은퇴의 절차를 넘어 사회적 모순을 심화시키고 미래 고령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거대한 암초가 되고 있다. 특히 오늘날 대한민국 노동시장의 실질적인 주역이 이미 시니어 계층으로 이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낡은 제도가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은 뼈아픈 현실이다.
테일러주의의 원죄: 인간을 '교체 가능한 부품'으로 규정하다
정년제의 뿌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세기 말 미국의 기계공학자 프레더릭 윈즐로 테일러가 제시한 '과학적 관리법'을 살펴봐야 한다. 테일러는 작업장의 모든 동작을 측정하고 분석하며 최적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그는 스톱워치를 들고 작업장을 누비며 노동자의 모든 동작을 초 단위로 분해했고 이를 통해 '하루 작업의 공정한 할당량'을 객관적으로 결정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개별성, 숙련, 판단력은 제거되어야 할 '비효율'로 간주되었다. 노동자는 자율성과 존엄성을 무시당한 채 관리자의 명령을 수행하는 우둔하지만 강한 존재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테일러주의는 헨리 포드의 조립라인 생산방식과 결합하여 '표준화'의 패러다임을 확립했다. 부품이 표준화되면 고장 난 부품을 즉시 교체할 수 있듯이 인간 노동자 역시 단순 반복 작업을 수행하는 '대체 가능한 부품'이 된 것이다. 찰리 채플린의 1936년 영화 '모던 타임스'는 이러한 인간 소외를 신랄하게 풍자한다. 조립라인에서 기계의 부속품이 되어 컨베이어 벨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산업사회가 인간을 기계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강력한 은유다. 정년제는 바로 이러한 철학적 토대 위에 세워졌다. 기계 부품을 일정 기간 사용한 후 교체해야 하듯이 인간도 일정 연령이 되면 폐기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65세라는 숫자의 함정: 과학이 아닌 정치적 계산의 산물
대한민국 노동의 새로운 주역: 60대 이상의 역습
우리가 직시해야 할 가장 놀라운 진실은 이미 대한민국 노동 현장의 지형도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국가테이터처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노동에 참여하고 있는 연령군 중 60대 이상 비중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대해졌으며 사실상 경제활동의 가장 핵심적인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인구구조의 고령화 때문만이 아니라 60대 이상 연령층이 가진 강력한 근로 의지와 건강 상태가 뒷받침된 결과다. 실제로 오늘날 지역사회의 실질적 주체 세력은 이미 시니어 연령층으로 전환되었다. 이들은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소비의 주체인 동시에 풍부한 사회적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 공동체 유지와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과거의 노인이 복지의 수혜 대상에 머물렀다면 현대의 시니어는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로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생산의 주역이다. 정년제라는 인위적인 장벽은 이러한 엄연한 현실을 부정한다. 이미 현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이들을 법적·제도적 잣대로 '은퇴자'라고 규정하는 것은 국가적 낭비를 넘어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자가당착이다. 65세가 넘어도 얼마든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현장의 데이터가 증명하고 있다. 이들은 디지털 도구를 능숙하게 활용하며 오랜 시간 축적된 인간관계망과 직무 노하우를 결합해 젊은 세대가 갖지 못한 숙련된 생산성을 발휘한다.
노년은 쇠퇴가 아닌 '성숙'의 시기: 65세 이후의 무한한 가능성
우리는 흔히 '나이가 많으면 생산성이 낮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실제 연구들은 나이와 생산성의 관계가 결코 일직선적인 하락이 아님을 보여준다. 육체적 반응 속도는 다소 감소할지 모르나 오랜 세월 축적된 경험, 판단력, 그리고 복잡한 문제해결 능력은 오히려 향상된다. 특히 '암묵지(tacit knowledge)'가 중요한 영역에서 고령 노동자의 가치는 대체 불가능하다. 숙련 기술자, 상담 전문가, 관리자 등은 나이가 들수록 그 깊이가 더해지며 조직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심리학자 진 코헨은 C=mE2라는 방정식을 제안하며 창조력(C)는 내적 경험(E1)과 외적 경험(E2)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발현됨을 강조하면서 나이듦에 따라 증가하는 경험의 축적이 창조력 증가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65세는 더 이상 '뒷방 늙은이'로 물러나야 할 시기가 아니다. 현대의 60·70대는 과거의 노인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들은 여전히 신체적으로 건강하며, 평생 교육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준비가 되어 있다. 정년제라는 장벽은 이들이 가진 막대한 사회적 자본과 지혜를 사장시킨다. 고령자의 경제활동은 단순히 생계 수단을 넘어 자아실현의 과정이며, 이는 새로운 수요 창출로 이어져 경제 시스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실제로 고령자 고용률이 높은 국가일수록 청년 고용률도 함께 높은 양의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사실은 세대 간 일자리 경쟁이 허구임을 입증한다.
한국 사회의 잔인한 모순: 49세에 끝나는 '실질 정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법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극심하다. 2013년 법정 정년이 60세로 의무화되었지만 이는 평균수명 83세 시대와는 한참 동떨어진 기준이다. 더 큰 문제는 '실질 은퇴 연령'이다. 기업 현장에서는 임금피크제와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의 압박을 통해 50대 초중반에 노동자를 조직 밖으로 밀어낸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임금근로자의 평균 퇴직 연령은 49세에 불과하다.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며 지혜가 절정에 달할 시기에 '비효율'이라는 낙인이 찍혀 퇴출되는 것이다. 조직에서 쫓겨난 이들은 결국 택시기사, 경비원, 청소원 같은 단순 노무직으로 내몰린다. 이는 개인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구축한 '연령주의(ageism)'라는 구조적 배제의 결과다. 또한 정년 연장을 청년 일자리를 뺏는 행위로 몰아가는 세대 갈등 프레임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한다. 이는 양질의 일자리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개인 간, 세대 간 경쟁으로 치환하여 지배 구조를 유지하려는 전략에 가깝다.
'생명에는 정년퇴임이 없다'
정년제는 단순히 특정 연령에 일을 그만두게 하는 규칙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기계 부품처럼 취급하는 산업자본주의의 낡은 유산이며, 생물학적 현실을 무시한 자의적 기준이고, 구조적 불평등을 세대 간 대립으로 위장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다. 우리는 이미 노동시장의 주역으로 우뚝 선 60대 이상의 에너지를 직시해야 한다. 지역사회를 이끄는 실질적인 주체인 이들을 제도 밖으로 밀어내는 정년제는 미래 고령사회의 연착륙을 가로막는 가장 치명적인 독소 조항이다. 대한민국이 직면한 인구 절벽의 위기를 극복할 유일한 열쇠는 이미 준비된 숙련된 노동력인 시니어 세대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이들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데 있다. 생명에는 정년퇴임이 없다. 인간을 '생산 요소'로만 보는 시각을 거두고 나이와 상관없이 각자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유연한 노동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19세기 낡은 유령인 정년제를 과감히 혁파할 때 우리는 비로소 건강하고 창의적인 미래 고령사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 박상철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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