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장하준 교수 "행정기관만 옮기는 지역균형발전은 실패...이태리 사례 봐야"

  • "지역별 대표 산업 만들어져야 지역균형발전 성공"

  • "한국 정부 부채, 우려할 수준 아냐…재정 탄력적 운영해야"

  • "AI 기술은 미국식보다 실용주의 중국식으로 가야"

장하준
장하준 런던대 경제학과 교수 [사진=황채영]

"정부가 지역균형발전을 하겠다고 하는데, 지금처럼 공공기관·행정기관만 옮겨서는 제대로 이룰 수 없습니다. 과거 브라질이 '브라질리아'라는 신도시를 아마존 밀림에 개발했죠. 하지만 상파울루·리우데자네이루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거리밖에 되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대도시에 살면서 브라질리아로 출퇴근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한국 정부가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행정기관만 옮긴다면 결국 그곳에서 업무만 보고 저녁이나 주말이면 도시가 텅 비는 일이 반복될 것입니다."

정부가 올해 2차 공공기관 이전 대상과 지역을 확정하기로 하면서 수도권 집중 완화와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장하준 런던대 동양·아프리카학 대학(SOAS) 경제학과 교수는 공공기관·행정기관 이전만으로는 지역균형발전에 성공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는 지난 1월 아주경제신문과 화상으로 인터뷰하면서 한국 정부가 지역균형발전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브라질과 영국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되며 독일과 이탈리아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심 산업이 지역에 얼마나 분산돼 있는지가 지역균형발전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는 분석이다.

-영국 등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한국의 수도권 집중은 얼마나 심각한가.

"한국의 수도권 집중도는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지역내총생산(GRDP)을 보면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50% 이상이 수도권에서 생산된다. 영국도 런던 집중이 심하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비중이 30% 내외다. 도쿄와 파리가 일본과 프랑스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 전후다. 베를린은 독일 GDP 가운데 6% 수준이고 로마는 이탈리아 9% 수준이다. 한국보다 수도권 집중도가 높은 나라는 인구 1500만명 미만인 소규모 국가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려면 어떤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나. 현재 정부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국 정부의 접근법은 공공기관과 행정기관 이전에 갇혀 있다. 공공기관·행정기관만 옮기고 수도를 이전한다고 해서 지역균형발전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이 방식으로 접근했다가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가 브라질이다.

수도를 옮겼지만 비행기로 1시간 거리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출퇴근을 하거나 아이들이 어릴 때만 잠시 살다가 다시 대도시로 돌아가고 있다. 한국은 국토 면적이 작기 때문에 제주도로 옮겨도 비행기로 1시간이면 오갈 수 있다. 공공기관 이전에만 집중한다면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했던 영국 역시 이 방식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

반면 이탈리아와 독일은 지역균형발전에 비교적 성공했다. 이유는 지역에 산업 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는 기업이 아니라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이 있어야 한다.

이탈리아 경제 중심지 가운데 하나인 에밀리아 로마냐에는 볼로냐가 있다. 이 지역에는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등 고급 자동차 브랜드 본사와 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독일 역시 대부분 주가 각자 주력 산업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반도체 등 대표 기업과 핵심 산업이 대부분 서울에 집중돼 있다. 부울경의 기존 산업은 중국의 추격으로 흔들리고 있고 다른 지역에는 제대로 된 기업이 거의 없다. 정부가 인센티브 패키지를 마련하고 기업도 일부 손해를 감수하면서 지역으로 이전해야 한다. 억지로 할 수는 없겠지만 일부 기업이 지방으로 이동해 해당 지역 산업으로 뿌리를 내려야 지역균형발전이 가능하다."

-한국 경제가 마주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한국은 사회를 어떻게 재구조화할 것인지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경제 규모는 빠르게 커졌지만 제도와 구조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복지 제도를 재구조화해야 할지, 연금을 어떤 방식으로 개편해야 할지 등 여러 과제가 있다. 이런 개혁을 추진하면서 세출 구조도 함께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복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산업 정책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키우려면 정부의 공공 연구개발(R&D) 투자도 더 확대돼야 한다. 이런 산업에서는 중견기업 역할이 중요한데 이들이 자체적으로 대규모 R&D를 수행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정부가 어떻게 구조적으로 산업 성장을 견인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확장 재정을 예고했다. 현재 재정 운용은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 정부가 제대로 된 확장 재정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재정 정책은 경기가 과열되면 긴축하고 경기가 나쁠 때는 확대하는 식으로 운용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재정 수지는 거의 매년 흑자였다. 코로나 이후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지만 여전히 적극성이 부족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에 재정 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운용하라고 권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산업 정책과 연계해 정교하게 추진해야 하지만 공공 연구개발과 교육 투자 역시 지금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 정부 부채 상황은 크게 나쁘지 않다. GDP 대비 정부 부채가 가장 낮은 국가는 스웨덴, 덴마크, 스위스 등 유럽 강소국들이다. 한국은 그 다음 그룹에 속한다. 덴마크 정부 부채 비율은 약 39% 수준이고 한국은 약 49%다."


-한국 정부와 기업의 인공지능(AI) 투자 상황은 어떻게 보나.

"AI는 매우 중요한 기술이기 때문에 한국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다만 어떤 방향으로 투자할 것인지가 명확해야 한다. 저는 AI 산업 가운데 특히 피지컬 AI가 중요하다고 본다.

현재 AI 개발 방향은 미국형과 중국형으로 나뉘고 있다. 중국형은 당장 활용 가능한 응용 기술을 중시하고 미국형은 인간을 뛰어넘는 고지능 개발을 목표로 한다. 저는 중국형 접근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공상과학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인간을 초월하는 지능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AI 투자는 실제 수익과 산업 활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실용적 방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국민연금이 환율 안정을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국민연금은 국민의 자산이기 때문에 국가 경제 전체 이익을 고려해 움직여야 한다. 현재 환율이 상승하는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확대다. 그런 만큼 문제 해결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장기적으로 국민연금의 투자 전략 자체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수익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거시경제에 부담을 주는 구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브라질은 국민연금 자금 일부를 개발은행에 투자해 기술 개발 펀드 등 산업 투자에 활용한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 자산 중 일정 비율을 기술 개발 투자 기금에 배분해 장기 수익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한국도 이런 방식에서 배울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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