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축음기의 태엽이 천천히 돌아간다.
바늘이 오래된 음반 위에 내려앉자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애니메이션 화면 속에서 일곱 명의 청년은 그 노래를 가만히 듣는다. 그리고 작은 배에 오른다. 노래를 싣고 태평양을 건너는 여정이다.
잠시 뒤 화면은 거대한 공연장으로 이어진다. 환호하는 관객들 앞에서 노래하는 방탄소년단(BTS)의 모습이다. 과거와 현재가 하나의 장면 속에서 자연스럽게 겹친다.
최근 공개된 방탄소년단 정규 5집 ‘아리랑(ARIRANG)’ 컴백 애니메이션 영상의 한 장면이다. 짧은 영상이지만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 노래는 오래전부터 시작됐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영상의 배경에는 실제 역사도 숨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한국 민요 ‘아리랑’이 처음 녹음된 것은 19세기 말 미국 워싱턴이었다. 조선 말기 격동의 시대였다. 낯선 타국에서 기록된 그 노래는 당시 한국인의 삶과 정서를 담은 오래된 목소리였다.
그로부터 128년의 시간이 흘렀다.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는 이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세계로 퍼져 나간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세계적인 그룹이 된 방탄소년단이 서 있다.
아리랑은 한국인에게 특별한 노래다. 기원을 특정하기 어려울 만큼 오래된 노래다. 지역마다 다른 가락과 가사를 가진 수백 개의 아리랑이 존재한다.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경기아리랑까지.
그 수많은 변주 속에는 삶의 애환과 사랑, 이별과 희망이 함께 담겨 있다.
그래서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가 아니라 한 민족의 정서를 담은 문화적 상징으로 불린다. 유네스코가 2012년 아리랑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20세기 초 독립운동가들은 아리랑을 부르며 서로를 위로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도 아리랑은 세계인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상징적인 음악으로 울려 퍼졌다.
그리고 지금, K팝의 시대에 이 노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세계 무대에 등장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이 ‘아리랑’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미 세계 음악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그룹 가운데 하나다. 미국 빌보드 차트를 석권했고 세계 주요 도시의 스타디움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언제나 자신들을 **“한국에서 온 그룹”**이라고 말해왔다. 한국어로 노래하고 한국 사회의 고민과 희망을 음악 속에 담아왔다.
그런 점에서 ‘아리랑’은 이들에게 낯선 소재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선택처럼 보인다.
이번 컴백의 출발점이 되는 무대 역시 상징적이다.
오는 3월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컴백 기념 라이브 공연이 열린다. 광화문은 조선 왕조의 정치 중심이었던 공간이다. 동시에 현대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이 된 장소이기도 하다.
지금은 세계 관광객이 모여드는 서울의 중심 광장이기도 하다.
그 공간에서 방탄소년단은 새로운 노래를 처음 선보인다.
이 공연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로 생중계될 예정이다. 하루 동안 광화문광장이 세계 문화 무대의 중심이 되는 셈이다.
이어지는 월드투어 역시 규모 면에서 새로운 기록에 도전한다. 북미와 유럽, 남미, 아시아 등 세계 주요 도시를 도는 대형 투어가 예정돼 있다.
공연에는 관객과 무대를 더욱 가깝게 연결하는 360도 무대도 도입된다. 무대의 중심에서 사방을 둘러싼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구조다.
단순한 콘서트를 넘어 하나의 공동체 경험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여정의 출발점이 바로 ‘아리랑’이라는 점이다.
가장 한국적인 노래가 가장 세계적인 무대를 통해 울려 퍼지는 장면은 역설적이면서도 자연스럽다. 문화의 힘은 언제나 그렇게 작동해 왔다. 지역에서 태어난 노래가 사람들의 마음을 통해 국경을 넘어가고 결국 세계인의 공감으로 이어지는 과정 말이다.
사실 K팝이 세계 음악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불과 10여 년 남짓이다.
그러나 그 변화의 속도는 놀라울 만큼 빠르다.
한국어로 부른 노래가 세계 차트를 장식하고 한국 가수들이 글로벌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그 중심에 방탄소년단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제 다음 질문이 남는다.
K팝은 앞으로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그 음악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잊지 않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방탄소년단의 ‘아리랑’은 흥미로운 시도다.
가장 오래된 노래를 가장 현대적인 방식으로 다시 부르는 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세계를 연결하는 문화적 다리를 놓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방탄소년단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단순할 것이다.
음악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잇는 언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언어는 특정한 나라의 것이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의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상 속에서 그들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만 깊다.
“What is your love song?”
광화문에서 시작될 그 질문은 곧 태평양을 건너고 대륙을 넘어갈 것이다. 그리고 어느 도시, 어느 공연장에서 누군가가 아리랑의 멜로디에 맞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128년 전 낯선 땅에서 작은 축음기로 기록된 노래가 이제 세계인의 무대에서 다시 울려 퍼진다.
그 긴 시간을 건너온 노래를 오늘의 팝 음악으로 다시 띄우는 일.
어쩌면 그것이 방탄소년단이 전 세계에 보내는 가장 한국적인 문화 편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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