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헤지펀드도 속수무책… 중동 리스크에 조 단위 손실

  • 인플레이션 재점화에 예측 모델 무력화

  • 시타델·밀레니엄 등 '천하의 멀티전략'도 속수무책

월스트리트 표지판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월스트리트 표지판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중동 군사 충돌 여파로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 평소 어떤 시장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것으로 평가받는 대형 헤지펀드들조차 손실을 기록하면서 지정학적 리스크의 파장이 금융시장 전반으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11일(현지 시각) 뉴욕 증시는 거센 역풍을 맞으며 일제히 하락했다.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날보다 289달러(0.6%) 떨어진 4만 7417달러로 마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회원국들이 사상 최대 규모인 4억 배럴의 비축유 방출이라는 '승부수'를 던졌으나, 원유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유가 향방에 따라 일희일비하던 미국 증시는 결국 에너지 안보 우려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이날 IEA의 발표 직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82달러까지 떨어지며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으나, 불과 1분 만에 급반등하며 전날 대비 4.6% 급등한 87.25달러로 장을 마쳤다. 지난 2일 카타르 라스라판 액화천연가스(LNG) 시설이 공격받아 생산이 중단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시장의 낙관론은 이미 무너진 상태였다. 이후 유럽 천연가스 가격이 2배로 치솟고 제트연료 가격이 70% 폭등하는 등 실물 자산 시장이 '미체험의 영역'으로 진입한 것이 어제의 폭등세로 이어진 발단이라는 분석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사실상 봉쇄로 현물 인수가 불가능해지자, 하락에 베팅했던 트레이더들이 손실을 각오하고 물량을 되사는 '숏 스퀴즈(Short Squeeze)' 현상까지 겹치며 유가 상승에 불을 붙였다. 공포지수(VIX)는 26선을 돌파하며 시장의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

 

이러한 전방위적 시장 패닉은 정교한 리스크 관리 시스템으로 무장한 대형 자본들마저 피할 수 없는 거대한 함정이 됐다. 시장 환경에 관계없이 무적의 수익률을 과시하며 개인 투자자들에게는 일종의 '경외의 대상'이었던 글로벌 헤지펀드들조차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매크로 펀드의 대명사인 캑스턴 어소시에이츠는 지난주에만 7%의 운용 손실을 기록했으며, '전설' 폴 튜더 존스의 펀드 역시 1.8%의 마이너스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원자재 가격 폭등이 불러온 인플레이션 재점화로 금리 예측 모델이 완전히 무력화된 결과로 보인다.

 

영국 운용사 LCH 인베스트먼츠 집계 기준 4년 연속 수익 1위인 시타델과 4위 밀레니엄 매니지먼트, 그리고 포인트72 등 '무적 함대'로 불리던 멀티 전략 펀드들도 이번 파고를 넘지 못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블룸버그 통신은 이들이 각각 10억~15억 달러(약 1조 3000억~2조 원)에 달하는 거액의 손실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수많은 매니저가 포지션을 분산해 안정성을 극대화하는 멀티 전략조차 지정학적 폭풍 앞에서는 방어막이 되지 못했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은 "대형 헤지펀드가 인재를 싹쓸이하며 우위를 점해왔다"는 릭 소퍼 LCH 회장의 지난 1월 진단을 인용하면서도, 현재의 난국은 전혀 다른 양상임을 강조했다. 신문은 "최고의 인재를 보유한 팔색조 같은 펀드들조차 시장에 농락당하고 있으며, 전황만큼이나 앞날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라며 시장 최고의 두뇌들조차 갈피를 잡기 힘들 정도로 시장의 예측 불가능성이 극에 달했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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