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독자적인 초거대 인공지능(AI) 모델을 보유한 나라는 손에 꼽힌다. 우리나라가 그 안에 든다는 사실은 자부심뿐 아니라, 이제 그에 걸맞은 산업 환경을 갖춰야 한다는 과제를 함께 던진다. AI 산업에서는 기술의 속도만큼이나 제도의 속도가 중요하다. 세계 최초 인공지능기본법 시행과 함께 기술이 앞서 나간 만큼 제도도 보폭을 맞추기 시작한 지금, 우리 산업계는 하나의 변곡점 앞에 서 있다.
AI 개발의 핵심은 양질의 데이터를 얼마나 확보하고 학습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개별 데이터마다 저작권 침해 여부를 기업이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워, 그동안 우리 기업들은 법적 불확실성이라는 높은 장벽 앞에 서 있었다. 저작권을 침해할 의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민사상 손해배상은 물론 형사처벌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은, 글로벌 경쟁에서 속도를 내야 할 기업들에게 과중한 부담이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뛰어난 기술력을 갖추더라도 산업 전반의 도약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배경에서 지난 2월 25일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제2차 전체 회의에서 의결된 '대한민국 인공지능행동계획'과, 다음 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문화체육관광부가 공동 발표한 'AI 학습용 저작물 활용 촉진' 추진 과제는 범부처가 현장의 목소리를 발 빠르게 정책으로 옮겨낸 의미 있는 행보다.
특히 온라인 게시물처럼 거래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저작물에 대해 '옵트아웃(Opt-out)' 제도를 도입하여, 그간 활용이 모호했던 '회색 영역'의 데이터를 합법적으로 쓸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아울러 AI 개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저작권 관련 형사책임 면제를 검토한다는 방향도 의미 있는 진전이다. 이 같은 제도적 안전망이 마련될 경우, 기업들은 사업 안정성을 높이고 글로벌 경쟁에서 보다 과감하게 속도를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지난 2월 24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AI 학습용 데이터 구매비용이 연구개발(R&D)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되었다. 데이터 구매 여력이 부족했던 중소·스타트업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는 동시에, 고품질 데이터가 정당한 대가를 받고 산업에 공급되는 선순환 생태계의 초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데이터 거래 시장의 활성화와 새로운 산업 생태계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마중물이 될 것으로 본다.
물론 정책의 실효성은 제도의 설계만큼이나 현장에서의 적용과 운용에 달려 있다. 옵트아웃 제도의 구체적인 절차, 형사책임 면제의 범위, 세액공제의 인정 기준 등 세부 사항들이 산업현장의 실제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여 정비될 필요가 있다.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는 이번 정책들이 현장의 어려움을 반영한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길 바라며, AI가 창작자의 권리를 존중하면서도 우리 모두의 삶을 더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좋은 기술'이 될 수 있도록 산업계와 함께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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