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케이 6만 선 앞두고 터진 '중동 쇼크'…日 증시·엔화 약세

  • 호르무즈 해협 봉쇄 공포… 엔화 157엔대 돌파하며 '위기 시 엔저' 심화

  • 일은 부총재 "점진적 금리 인상" 고수… 전쟁 뒤 숨은 금융 불신에 은행주 직격탄

2일 일본 도쿄에 있는 한 증시 전광판[사진=EPA연합뉴스]
2일 일본 도쿄에 있는 한 증시 전광판[사진=EPA연합뉴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중동 정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2일 도쿄 금융시장이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6만 선' 돌파를 목전에 뒀던 닛케이225 지수는 개장 직후 2% 넘게 폭락하는 등 극심한 공포 장세를 연출했다. 특히 이번 사태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넘어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인공지능(AI)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까지 동시에 건드리며 시장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 '위기 시 엔고' 공식 깨진 도쿄 외환시장… 157엔선 붕괴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장중 1달러=157엔대까지 치솟으며(엔화 가치 하락) 한 달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통상 전쟁 등 유사시 안전자산인 엔화를 사들이던 '위기 시 엔고' 공식은 이번에도 작동하지 않았다.

바클레이즈 등 주요 투자은행(IB)들은 호르무즈 해협의 사실상 봉쇄로 국제 유가(WTI)가 장중 10% 이상 폭등함에 따라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일본의 무역 수지가 급격히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실수요 차원의 엔화 매도를 부추겼다고 분석했다. 원유 수입을 위한 달러 결제 수요가 안전자산으로서의 엔화 수요를 압도한 것이다. 다카이치 정권이 엔저 억제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유가 급등이라는 기초경제여건(펀더멘털)에 근거한 엔저는 당국이 개입 명분을 찾기조차 어렵게 만들고 있다.
 

■ 전쟁보다 무서운 '금융 시스템' 불신… 은행주 직격탄

이날 증시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은 은행업종의 낙폭이었다. 미쓰비시UFJ 등 메가뱅크를 포함한 은행주 지수는 3.92% 하락하며 전 업종 중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이는 중동 전쟁 여파와 더불어 영국 부동산 대출업체(MFS)의 파산 및 미국 사모펀드(블루 아울)의 환매 중단 소식이 겹친 결과다.

지정학적 리스크라는 외부 충격이 가뜩이나 부동산 부실 대출 등으로 취약해진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약한 고리를 건드린 셈이다. 여기에 엔비디아 등 AI 관련주의 하락세까지 더해지며 "AI 투자가 실제 수익으로 연결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기술주 전반의 투매로 이어졌다.

 

■ 일은 "정책 변화 없다"… 트럼프 '4주 작전' 언급에 오후 낙폭 만회

오전 한때 2% 이상 폭락했던 닛케이 지수는 오후 들어 낙폭을 줄이며 1.35% 내린 5만 8057으로 장을 마감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번 군사 작전 기간을 '4주'로 언급하며 조기 종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 시장에 일시적인 안도감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란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의 사망 소식에 따른 지도부 공백이 오히려 전쟁의 장기화를 막을 것이라는 관측도 작용했다.

시장 전반의 리스크 회피 심리가 강해지며 안전자산인 국채로 자금이 몰려 장기 금리(10년물 국채 수익률)는 2.065%로 하락했다. 이런 가운데 히미노 료조 일본은행 부총재는 이날 "정책 금리를 완만하게 인상해 중립 수준에 접근시키겠다"며 중동 사태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점진적 태도를 고수해 시장의 기대와 온도 차를 보였다.

원유 가격이 배럴당 90달러 선까지 치솟을 경우, 올해 초 간신히 플러스로 돌아섰던 실질 임금이 다시 마이너스로 추락하며 가계 소비 심리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수입 물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박은 일본은행에게 다시금 '대응 실기(비하인드 더 커브)'의 공포를 안겨주는 대목이다.

결국 이번 '이란 쇼크'는 닛케이 6만 시대를 준비하던 도쿄 시장에게 지정학적 리스크뿐만 아니라 금융 시스템 부실과 AI 과잉 투자라는 내재적 공포를 한꺼번에 직면하게 한 기폭제가 됐다. 시장은 이제 트럼프 행정부의 '4주' 약속이 지켜질지, 그리고 유가 급등이 일본의 통화 정책과 가계 경제를 어디로 끌고 갈지를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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