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 단국대 베트남학전공 초빙교수]
복합적 상황 속의 동남아 한류
최근에 반한류 기운이 동남아를 휘감고 있다. 지난달 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K-팝 그룹 ‘데이식스’ 공연이 있었는데 그 공연장에서 일부 한국인이 허용되지 않은 대형 카메라로 촬영하려다 현지 경비원에게 저지당하자 거칠게 항의했다고 한다. 그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퍼지며 말레이 사람만이 아니라 동남아 여러 나라 사람들의 공분을 사게 됐다. 일부 거친 한국인들에 대해 그간 참아 왔던 감정을 쏟아낸 것이다. 그들은 한국인의 인종주의에 대항하여 형제자매라는 뜻인 ‘시블링(sibling)’을 가지고 동남아 형제자매를 뜻하는 ‘시블링(SEAbling)’이라는 해시태그도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에 또 불에 기름을 붓는 사건이 생겼다. 지난 4일 전남 진도 군수가 지방의 인구 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리랑카나 베트남에서 처녀들을 '수입해' 한국 농촌 청년들을 장가보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이 전해졌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한국인이건 베트남인이건 간에 모두 그 군수의 망언을 비판했다. 한국 주재 베트남대사관은 전라남도지사와 진도군수에게 항의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그 후 그 군수가 단어 선택을 잘못했다며 베트남 여성을 비하할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이 같은 돌발 사건이 또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처럼 한 사람의 무의식적 한마디는 양 국민의 우호에 찬물을 끼얹고 그간 쌓아온 공공외교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양국 관계에서 자민족중심주의, 상대방에 대한 무지, 몰이해 등으로 인해 갈등이 돌발적으로 생길 수 있다. 이 같은 돌발 변수로 동남아 지역에 오랫동안 확산해온 한류는 '안녕한지'를 물어야 할 상황이 됐다. 한편으로는 군 복무 후 완전체가 된 BTS 공연을 보기 위해 한국행을 앞두고 있는 동남아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언제나 사람들이 한국 대중문화를 찾을 것이라고 낙관할 수는 없다. 상반된 상황이 병존하기에 공동 협력의 기반을 다져야 한다. 앞으로 한류의 지속을 넘어서 문화 분야에서 상대국과의 협력은 어떤 방향이어야 할까? 더불어 양국 간 문화 교류가 상대국 문화산업 발전을 촉진하는 계기로도 작용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에 답을 얻고자 베트남 사례를 들어 그간의 협력 과정을 돌아보고 현재의 과제와 미래 방향을 찾아보려고 한다.
베트남 한류는 TV 드라마에서부터 K-팝으로
베트남 한류는 1990년대 후반에 한국 TV 드라마의 베트남 내 방영에서부터 시작됐다. '내 사랑 유미' '느낌' '금잔화' 등이 한류 초기에 방영된 드라마였다. '아들과 딸' '의가형제' '별은 내 가슴에' 등도 1990년대 말에 방영돼 큰 인기를 끌었다. 2000년대 전반에 들어서는 '모래시계' '가을동화' '겨울연가' '천국의 계단' '풀하우스' 등이 방영됐다. 베트남에서 한류가 정점을 찍은 것은 2004년 방영된 '대장금'이었다. '대장금'은 2010년대까지 케이블 방송을 통해 수차례 재방송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고 이후 '주몽' '해를 품은 달' '성균관 스캔들' 등 한국 역사 드라마의 인기를 불러일으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2010년대에 '지붕 뚫고 하이킥'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 '스카이 캐슬' '부부의 세계' 등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들이 베트남에서도 방영됐다. 이후에도 여러 한국 TV 드라마가 베트남에서 방영됐고 지금도 방영되고 있다. 더불어 한국 영화도 높은 인기를 끌었다. '편지' '찜' '엽기적인 그녀' '클래식'에서부터 '왕의 남자' '건축학개론'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화가 소개됐다.
한편 2000년대 중반을 지나며 베트남 한류의 중심은 TV 드라마, 영화 등 영상 한류에서 대중음악 K-팝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H.O.T., 베이비복스, 원더걸스,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빅뱅, 소녀시대, 2NE1 등이 많은 인기를 얻었다. 2008년에 원더걸스가 베트남 ‘Hot 10 at 10’ 차트에서 K-팝으로는 최초로 1위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팬덤문화가 시작됐고 2010년대 들어서는 팬클럽이 체계화되고 대형화됐다. 2010년대 후반에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로 TV 드라마보다 K-팝을 먼저 꼽을 정도였다. 이제는 BTS와 블랙핑크가 K-팝의 대세가 됐다. 2021년 말 베트남에서 가장 많이 스트림된 대중음악은 한국의 BTS, 베트남 가수 선뚱(Son Tung M-TP)이 부른 가요였다.
공동 제작 성과와 문화산업 발전
한국과 베트남 간 협력을 통해 공동 제작한 문화상품은 TV 드라마나 영화에 집중돼 있다. 양국 간 TV 드라마와 영화 제작 협력은 1990년대 초반 한국 영화의 베트남 현지 촬영에 베트남 측이 협력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1990년 완성된 영화 '머나먼 사이공'과 '하얀 전쟁' 제작자들은 베트남 현지에서 촬영하면서 베트남 측 영화사와 협력했다. 1993년 SBS는 TV 드라마 '머나먼 쏭바강'을 베트남 측 협력하에 현지에서 촬영했다. 베트남과 한국이 공동 제작한 드라마로는 '사랑의 꽃다발'(2004) '고수풀 향기'(2006) '하노이 신부'(2006) '황금 신부'(2007) '오늘도 청춘 1·2'(포에버 영 2014, 2016) 등이 있다.
베트남 내 한국 TV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양국 제작자들은 한국의 TV 드라마나 영화를 베트남판으로 리메이크하는 형식으로 TV 드라마를 공동 제작했다. 예컨대 '풀하우스'(2009) '가문의 영광'(2011~2012) '엽기적인 그녀'(2015) 등을 만들었다. 이 밖에도 '모델'(2011) '의가형제'(2017) '태양의 후예'(2017) '하이킥 시리즈 1·2'(2017, 2019) '연애의 발견'(2018) '왕가네 식구들'(2018) '놓치지 마'(2019) '왜 그래 풍상씨'(2021) '으라차차 와이키키'(2020) 등이 공동 제작으로 만들어졌다.
영화 분야에서는 한국 영화를 리메이크하여 베트남판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수상한 그녀'의 베트남판 '내가 니 할매다'(2015), '미녀는 괴로워'의 베트남판 '200 Pounds Beauty'(2017), '써니'의 베트남판 '고고 시스터즈'(2018), '과속 스캔들'의 베트남판 '서른 살 외할아버지'(2018), '엽기적인 그녀'의 베트남판 '마이 쌔시 걸'(2018) 등이 그 예다.
한국 기업이 제작에 투자한 영화로는 '마이가 결정할게 2'(2014) '불량 소녀'(2017) '걸 프롬 예스터데이'(2017) 등이 있다. 2025년에는 양국 제작자들이 협력해 만든 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를 상영해 베트남에서 관객 200만명을 모았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도 개봉됐는데 관객 2만5000명을 모았을 뿐이다. 한국인들의 베트남 문화에 대한 관심이 아직 미흡한가 보다.
대중음악 분야에서 양국 관련하여 가장 잘 알려진 가수는 한-베 가정에서 태어난 하리원이다. 황민호·황민우 형제도 한-베 가정 출신 가수들이다. 진주를 비롯해 베트남에서 가수로 활동하는 한국인도 있다. K-팝 그룹 멤버로 활동하는 베트남 출신 가수로 뉴진스의 하니와 템페스트의 한빈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 밖에도 몇몇 베트남인 가수가 K-팝 그룹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양국 간 협력이 베트남 문화산업 발전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는 연구해봐야 할 과제다. 한류가 베트남 문화 발전을 선도했다기보다 촉진하는 역할을 했으리라고 짐작한다. 베트남 대중문화가 한류 때문에 발전했다기보다 이를 추격하는 과정에서 발전했으리라는 것이다. 베트남 영화 부문에서 오래전에 당녓민 감독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근래에는 응오타인번, 빅터 부, 판자녓린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신예 쩐타인후이 감독은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롬(Rom)'으로 뉴커런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대중음악 부문에서 선뚱, 레깟쫑리 등이 해외에도 잘 알려진 가수들이다. 레깟쫑리는 2018년 세계경제포럼에 초청돼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 밖에도 베트남 국내에서 많은 음악인이 여러 장르의 음악을 다양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매체의 변화와 상호 협력 증대
한류는 초기에 VTV 등 베트남 국영방송에서 한국 TV 드라마를 방영하며 확산됐다. 베트남 시청자들은 TV로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도 이제 넷플릭스, 비온(VieON),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시청하고 있다. 이계선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2021년 6월 말부터 2024년 3월 초까지 베트남 넷플리스 ‘주간 톱 10’ 진입 횟수 상위 20위에 한국 드라마가 16편 올랐다. 베트남 시청자들은 '응답하라 1988'을 VTV를 통해 보고도 넷플리스를 통해 또 시청했다고 한다. 그들은 넷플리스를 통해 '사랑의 불시착' '더 글로리' '슬기로운 의사 생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폭싹 속았수다' 등을 즐겼다. 앞으로 베트남에서도 한국 드라마를 TV보다 OTT를 통해 시청하는 비중이 더 늘어날 것이다.
방송심의위원회 위원을 지낸 고삼석 교수는 한류 발전의 미래 방향은 엔터테인먼트와 테크놀로지를 결합한 ‘엔터테크’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고 교수는 한국과 동남아 국가 간 문화산업 발전의 ‘공진화’를 주장한다. 한국 대중문화가 세계와 호흡할 때 한류가 해외에서 확산된 것처럼 한국과 동남아 국가 간 협력을 통한 문화산업의 공동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트남에서도 이제까지의 협력을 기반으로 다양한 분야로 협력을 확대해 나갈 수 있겠다. 마침 베트남이 지난 1월 제14차 공산당대회에서 경제 발전뿐만 아니라 문화산업 발전을 중요한 과제로 제시했다. 지금은 한국 문화산업 관련 기업이 베트남 기업과 활발히 협력을 확대해 나갈 시점이다.
필자 주요 약력
▷서강대 정치학박사 ▷서강대 동아연구소 및 대학원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 교수 역임 ▷한국-베트남 현인그룹 위원 역임 ▷현 단국대 아시아중동학부 베트남학전공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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