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자의 왕과 사는 남자 이야기 | 인간·문화·자연] 누구를 지키기 위해 사는가...단종, 세조 그리고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남긴 질문
아브라함 곽 입력 2026-02-19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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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한 편의 사극을 넘어, 우리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 작품이다.
권력을 둘러싼 피의 역사 속에서 과연 인간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영화는 조선의 비극적 군주 단종을 통해 그 질문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영화의 서사는 유배지 청령포에서 시작된다. 강물에 둘러싸인 고립된 땅, 푸른 물결은 아름답지만 그 속에는 되돌아갈 수 없는 운명이 흐른다. 어린 왕 단종은 더 이상 왕이 아니다. 왕위를 빼앗기고,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자리로 떨어진 존재다. 그러나 영화는 그를 패배자로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것을 잃은 자의 눈빛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길어 올린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단종이 자신을 따르던 충신과 백성들을 떠올리며 “나는 누구를 지키기 위해 사는가”라고 되묻는 대목이다. 이 한마디는 단순한 대사가 아니라 존재의 선언이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굴종하지 않는다. 명예로운 길을 택하면서도, 끝까지 자신을 아껴준 민초들을 잃고 싶지 않다는 절절한 마음을 드러낸다. 왕이라는 신분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말한다.
관객들이 눈물을 흘린 이유는 단순히 비극적 운명 때문이 아니다. 단종의 선택이 갖는 윤리적 울림 때문이다. 권력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버리는 길과, 사람을 지키기 위해 권력을 내려놓는 길. 영화는 그 갈림길을 선명하게 대비한다.
이 대목에서 공자의 고사가 떠오른다. 공자는 주나라의 주공을 두고 “권력을 사사로이 하지 않은 군자이자 성인”이라고 그리워 했다. 주공은 형인 무왕의 아들,어린 성왕을 대신해 7년간 섭정했으나, 왕이 성장하자 미련 없이 권력을 돌려주었다. 영화 속 단종과 세조의 대비는 이 고사와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세조는 뛰어난 정치적 수완과 결단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권력을 장악했고, 조선의 통치 구조를 재편했다. 냉혹한 현실 정치의 승자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수많은 피가 흘렀다. 조카의 왕위를 빼앗고, 사육신을 비롯한 충신들을 제거했다. 그는 나라를 안정시켰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통성을 둘러싼 깊은 상처를 남겼다.
영화는 세조를 단순한 악인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권력을 향한 집념과 불안, 그리고 스스로 정당성을 증명하려는 내면의 갈등을 담아낸다. 하지만 그가 끝내 놓지 못한 것은 권력이었다.
주공이 권력을 내려놓아 군자의 길을 택했다면, 세조는 권력을 움켜쥠으로써 군주의 길을 택했다.
그 차이는 역사적 평가를 넘어 윤리적 성찰의 대상이 된다. 청령포의 밤 장면은 특히 서정적이다. 달빛 아래 홀로 서 있는 단종의 모습은 한 폭의 수묵화처럼 고요하다. 그는 더 이상 명령을 내릴 수 없는 왕이지만, 그 침묵 속에는 오히려 더 큰 울림이 있다. 왕좌에 있을 때보다 더 왕다운 순간이다. 권력은 사라졌지만 품격은 남았다. 관객은 그 침묵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본다.
영화 후반부, 단종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장면은 절제된 연출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는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을 따랐던 청룡포 사람들의 안위를 걱정한다. 여기서 영화는 묻는다. 진정한 왕은 누구인가. 칼과 병력을 거느린 자인가, 아니면 사람의 마음을 지킨 자인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말한다. 세조는 실질적인 승자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단종의 이름은 동정과 존경의 대상으로 남았다. 단종은 패배했으나 도덕적 상징이 되었다. 이는 역사 해석의 힘을 보여준다.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그 의미는 시대와 함께 새로이 조명된다.
오늘날 우리는 권력과 성공을 쉽게 동일시한다. 조직에서, 정치에서, 기업에서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다른 기준을 제시한다. 사람을 지키는가, 아니면 자리를 지키는가. 그 질문은 단종과 세조의 대비 속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공자의 가르침은 단순한 고전이 아니다. 주공을 군자와 성인의 표상으로, 세조를 반면교사로 삼은 이유는 권력의 본질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권력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어야 한다. 백성을 위하고 공동체를 지키는 수단일 때만 정당성을 얻는다. 단종은 그 수단을 잃었지만, 목적을 잃지 않았다. 세조는 수단을 얻었으나 목적을 둘러싼 논란을 남겼다.
'왕과사는남자' 영화 포스터
영화는 화려한 궁궐 장면보다 강물과 달빛, 바람 소리로 기억된다. 그것은 권력의 소음이 아닌 인간의 숨결을 담아내려는 연출의 의도일 것이다. 관객은 그 숨결을 따라가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를 지키기 위해 사는가.
이 질문은 지도자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 상사와 부하, 스승과 제자, 언론과 시민의 관계 속에서도 동일하다. 자리를 지키기 위해 사람을 희생하는 순간, 우리는 세조의 길로 향한다.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자리를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주공과 단종의 길을 떠올린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여운이 남는 이유는 그 질문이 우리 일상으로 스며들기 때문이다. 단종의 선택은 역사 속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늘의 선택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눈물을 흘린 관객들은 단종의 비극에 공감한 것이 아니라, 그가 지키려 했던 가치에 마음을 내어준 것이다.
결국 역사는 권력의 크기로만 평가되지 않는다. 인간의 품격과 선택의 무게가 더 오래 남는다.
'왕과 사는 남자'는 그것을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증명한다. 강물 위에 떠오르는 달빛처럼, 단종의 한마디는 오래도록 우리 마음에 비친다. 나는 누구를 지키기 위해 사는가. 그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 곧 우리의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