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뷰] '도시가 멈추면 쇠락한다'는 오세훈의 철학

김두일 정치사회부 선임기자
김두일 정치사회부 선임기자

 
 정치인이 책을 쓰면 대개 두 가지로 흐른다. 성과를 과장하거나 과거를 미화하거나, 혹은 상대를 비판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오세훈 서울시장이 최근 출간한 '서울시민의 자부심을 디자인하다'는 결이 다르다. 읽어보면 의외로 조용하다. 자기 자랑이 거의 없다. 성과를 늘어놓기보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설명하는 데 더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몇 문장이 있다. '도시는 멈추면 쇠락한다' 그리고 또 하나, '도시는 상상하는 만큼 진화한다'이다. 거창한 철학 인용도, 유명 사상가의 차용도 아니다. 행정 현장에서 체득한 경험의 언어처럼 읽힌다. 도시는 생명체와 같다. 멈추는 순간 퇴보한다. 세계 주요 도시들이 끊임없이 재개발과 혁신을 반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상 유지는 안전해 보이지만, 글로벌 경쟁의 시대에는 가장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 오세훈의 문장은 바로 이런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다. 서울 역시 멈춰 있었던 시간이 없지 않았다. 논쟁과 갈등 속에서 속도를 낮추고, 방향을 두고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도시의 시간은 정치의 시간보다 길다. 한 번 정체된 도시는 다시 가속하기까지 더 많은 비용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도시는 멈추면 쇠락한다'는 말에는 그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다. 이어지는 문장, '도시는 상상하는 만큼 진화한다'는 선언은 더 흥미롭다. 상상은 행정 용어가 아니다. 그러나 도시 정책에서는 결정적인 요소다. 한강을 단순한 하천이 아니라 시민의 삶의 공간으로 재해석하는 일, 광장을 통과의 공간이 아닌 머무는 공간으로 전환하는 일, 낡은 산업 부지를 문화와 창업의 거점으로 바꾸는 일 등의 변화는 숫자 계산만으로 나오지 않는다. 상상력이 먼저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며 느끼는 점은, 저자가 서울을 얼마나 집요하게 관찰해 왔는가 하는 부분이다. 행정 조직의 구조, 재정의 흐름, 지역별 생활권의 미묘한 차이, 시민 정서의 결까지 세밀하게 짚어낸다. 단순히 정책을 집행한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도시를 오랜 시간 해부해 온 사람의 시선에 가깝다. 서울을 이렇게 구조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정치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오랜 행정 경험을 지닌 관료라 하더라도, 정치적 책임과 시민 체감을 함께 꿰뚫어 서술하기는 쉽지 않다. 이 책은 그 간극을 비교적 설득력 있게 메우고 있다.
 물론 상상은 위험을 동반한다. 모든 정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반발도 따른다. 그러나 상상을 멈추는 순간 도시의 진화도 멈춘다. 오세훈은 그 위험을 감수하는 쪽을 선택해 왔다고 말한다.
 이 책이 흥미로운 또 하나의 이유는, 그가 스스로를 미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코이카 자문단으로 페루에 떠나며 노모에게 "멀리 가지 않는다"고 난생 처음 거짓말을 했다는 고백, 무상급식 주민투표 이후 스스로 물러났던 결정에 대한 담담한 서술 등은 감정적 해명도, 정치적 변명도 없다. 그저 당시의 판단을 설명했을 뿐이다.
 정직함은 정치에서 때로 독이 된다. 계산보다 기준을 앞세우면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신뢰를 남긴다. 오세훈의 정치사는 그 두 얼굴을 모두 경험해 왔다.

 결국 이 책은 성과 보고서라기 보다, 한 정치인의 경험철학에 가깝다. 도시는 멈추면 쇠락하고, 상상하는 만큼 진화한다는 그의 믿음은 스스로를 관리자라기보다 설계자에 가깝다고 말한다. 설계자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다. 더 나은 구조를 상상하고, 그 상상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 수정과 보완을 반복한다.
 하지만 질문은 남는다. 서울은 지금 충분히 움직이고 있는가. 그리고 그 상상은 시민의 삶을 실제로 개선하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다만 분명한 것은 있다. 멈춤은 안전해 보일지 몰라도, 가장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도시의 미래는 결국 그것을 이끄는 리더십의 상상력과 의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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