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구 언론인]
스쳐 가는 방송에서 안내하는 「대둔산-동학농민혁명 최후 항전지」 특별전이 눈길을 끈다. 동학혁명의 발상지로서 고부 봉기는 널리 알려져 있는데 최후 항전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민주주의를 오롯이 발현하는 동학혁명의 요람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한다. 대둔산 특별전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이유이다. 전북 정읍의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열리는 특별전은 서울대 동양화과 출신의 임채욱 작가의 작품을 싣고 있다. 제1부에서는 첩첩산중으로서 대둔산 모습을 그리며, 제2부에서는 동학농민혁명 최후 항전지로서 대둔산, 제3부에서는 전봉준 부활을 다루고 있다. 동학혁명 최후 항전지로서 완주 대둔산을 찾아가도록 한다.
대둔산이 있는 완주는 동학혁명의 발화지이자 종착지로서 뚜렷하게 그 빛을 발하고 있다. 1894년 1월 11일 고부 봉기를 통해 동학혁명이 발발한다. 그러나 고부봉기가 일어나기 전인 1892년 10월 27일 동학교단은 전주 삼례역에서 도회소를 설치하고 각 지역 동학교도 책임자들에게 통문을 보내 교도들과 함께 삼례역에 모일 것을 지시했다. 11월 1일 수천 명의 교도가 삼례에 모여 다음날 전라감사 이경직에게 소장을 제출했다. 전봉준 장군이 제출한 소장은 동학교도에 대한 탄압을 중지하고 동학 창시자 최제우에 대한 억울한 누명을 씻어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2차 교조신원운동으로 불리는 삼례 집회에서 전봉준 장군 등 사회개혁 세력이 전면에 등장해 동학혁명의 불씨를 살려내고 있었다. 즉 동학혁명의 뿌리는 이미 삼례에서부터 배태됐다고 할 수 있다.
동학혁명군은 관군과 일본군 연합부대와 교전했지만 잇따라 패했다. 11월 27일 태인전투를 끝으로 전봉준 장군은 항전을 중단하고 금구로 도피했다. 그러다가 배반한 동료의 밀고로 12월 2일 순창에서 체포돼 1895년 3월 29일 교수형을 선고받고 다음 날 서울 종각 역 옆의 전옥서 터에서 처형됐다. 특별히 주목할 일은 동학혁명군 수백 명이 1894년 11월 중순부터 다음 해 1월 말까지 운주면 산북리 형제바위 근처에서 항전한 사실이다. 운주 대둔산 형제바위 전투는 동학혁명 전 과정 중 마지막 종착지로서 전투였다. 완주에서는 다른 지역의 동학혁명군이 대부분 소멸돼 사라진 뒤에도 끝까지 동학혁명의 저항 정신을 보여준 것이다.
서학에 맞서는 동학의 길 천명
외세·기득권 혁파로 구국에 헌신
130여 년 전 삼례에서 모여 동학교조 신원운동을 벌인 것은 서학에 맞서 새로운 동학의 길을 열고자 하는 의지의 천명이라고 할 수 있다. 동학혁명군이 삼례에서 2차 봉기를 한 것은 외세를 물리치고 기득권을 혁파하며 쓰러져 가는 나라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운주에서 마지막까지 항거한 동학혁명군의 용기와 희생을 우리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봉건사회를 무너뜨리고 외세를 몰아내고자 일어났던 동학혁명 정신은 한국 민주주의 원천 중의 하나이다. 동학혁명군은 구한말 기득권 세력이 삼정(전정, 군정, 환정)을 무너뜨리고 백성을 대상으로 가렴주구를 일삼던 것을 혁파하며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실천하고자 했다. 동학혁명은 입헌군주제를 매개로 인권을 보장하고 남녀 평등사상을 확립하고자 했다. 이를 바탕으로 국민주권으로의 길을 열어가려고 했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백성이 각자의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대동세상을 구현하고자 했다.
동학혁명정신을 이어받은 완주에서는 일제 강점기에도 항일독립운동이 강렬하게 이어졌다. 1910년부터 1930년대까지 비봉면 불당골 일대에서 고흥 유씨 집안 아홉 분의 의사가 항일 독립운동을 벌였다. 이들은 독립자금 조달, 항일 결사 조직, 만주 독립군 연결, 3·1운동 참여 등 치열하게 항일 투쟁을 전개했다. 그 과정에서 고문과 투옥, 생계 파탄 등의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이처럼 한 집안에서 아홉 분의 의사를 배출했다고 해서 일문구의사라 부르며 해마다 추모행사를 벌이고 있다.
우리는 12.3. 비상계엄 이후 6.4. 국민주권정부 출범에 이르기까지 국가적 위기 속에서도 꿋꿋하게 한국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우리가 한국 민주주의를 지켜낸 것은 엄동설한 속에서도 인내천, 동학혁명의 정신을 지켜내고자 했던 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동학혁명정신 계승을 헌법 전문에 싣고 한국 민주주의의 전통을 만방에 수출하기를 바란다. 동학혁명이 있어서 비로소 한국 민주주의가 반석 위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아울러 동학혁명의 발화지이자 종착지로서 완주에서도 동학혁명정신을 선양하는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이기를 기대한다. 먼저 교조신원운동과 동학군의 봉기, 최후의 항전 등을 기념하는 동학혁명기념제를 대대적으로 벌이며 동학혁명 둘레길 조성 등의 사업도 추진하기를 바란다. 덧붙여 새겨둘 일은 완주·전주 통합을 통해 완주가 통합시의 중심으로서 도약하는 일이다. 완주군민은 동학혁명의 후예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완주·전주 통합을 완수해야 한다. 완주·전주 통합을 완수하는 일이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순국하신 선열들의 희생에 보답하는 길이다. 완주·전주통합시는 동학혁명의 도시로서 새로운 대동세상의 길을 열어갈 것이다.
이춘구 필자 주요 약력
△전 KBS 보도본부 기자△국민연금공단 감사△전 한국감사협회 부회장△전 한러대화(KRD) 언론사회분과위원회 위원△전 전라북도국제교류센터 전문 자문위원△전 한국공공기관감사협회 부회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