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투자나침반③] '팔아라'는 없고 무조건 '사라'? 한국증시 매도 리포트 단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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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리포트는 목표주가와 함께 투자 의견을 제시한다. 투자 의견은 매수, 중립(보유), 매도 등 세 가지다. 상장사나 해당 기업 투자자 입장에선 '매수' 리포트가 나오는 게 좋은 일이지만, 시장에선 '매도' 리포트에 더 주목한다. 업황이나 실적에 중대한 변수가 있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최근 3년간 가장 유명한 매도 리포트는 2024년 9월 미국 모건스탠리의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Winter looms)'였다. 반도체 업황이 꺾이고 있다는 전망을 근거로 모건스탠리는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종전 26만원에서 12만원으로 대폭 낮췄다. 이 여파로 SK하이닉스 주가는 리포트가 나온 날 6% 넘게 폭락했다. 결과적으로 이 전망은 빗나갔지만, 당시 반도체 업황이 심상치 않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던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런데 국내 증시에선 매도 리포트를 좀처럼 구경하기 힘들다. '매도’ 의견을 내는 증권사 리포트는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대신 ‘사라(매수)’는 리포트만 넘쳐나면서 리포트로서의 가치가 소멸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4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발간된 종목 리포트는 총 2만2917건이다. 이 가운데 투자의견을 매도로 제시한 보고서는 단 3건에 그쳤다. 전체의 0.01% 수준이다. 지난해 1분기 HD현대건설기계, SOOP, 넥슨게임즈 관련 보고서가 전부였다. 2024년 역시 2만1084건 가운데 매도 의견은 4건에 불과했다.
  
증권사 리포트 매수매도의견 추이
증권사 리포트 매수/매도의견 추이

장기 추세를 봐도 흐름은 같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발표된 애널리스트 투자의견 가운데 매수와 적극 매수 비중은 93.1%에 달했다. 반면 매도 의견 비중은 0.1%에 그쳤다. 매도 의견은 2000년대 1.6%에서 2010년대 이후 0.1%로 급감하며 사실상 사라졌다. 같은 기간 '보유' 의견도 31.1%에서 6.8%까지 꾸준히 줄어들었다.
 
국내 증권사와 외국계 증권사 간 리포트 성향 차이도 뚜렷하다. 금융투자협회 공시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증권사 32곳의 매수 의견 비중은 평균 91.5%다. 외국계 증권사 15곳 평균인 62.6%보다 28.9%포인트 높다. 외국계 증권사는 중립 의견 비중이 27.5%, 매도 의견 비중이 9.9%지만 국내 증권사는 중립 8.4%, 매도 0.08%에 그쳤다. 또한 국내 증권사 가운데 매도 리포트를 한 건도 안 낸 곳은 29개사였다. 매도 의견 비중이 1%를 넘긴 곳은 신영증권(1.3%)이 유일했다.
 
매수 의견 일색의 리포트가 쏟아지는 데에는 애널리스트가 매도 의견을 내기 어려운 구조적 배경이 있다. 기업과의 관계 유지, 중개업무 수익 의존, 내부 평가시스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매도 의견 제시에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에서는 특히 중개업무와 연계된 이해상충 요인이 강하게 작용한다”며 “애널리스트 보상이 기관투자자 중개수수료에 사실상 포함돼 있고 세미나 등 중개업무 지원 활동이 성과평가와 경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구조라 매수 의견을 제시할 유인이 크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2013년 이후 애널리스트가 제공하는 목표주가가 투자 판단 지표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매수 편향이 심화하면서 종목 간 구분 능력이 떨어졌고 투자의견과 목표주가가 제공하는 정보 가치도 함께 낮아졌다는 분석이다. 김 연구위원은 “객관성과 정확성 측면에서 애널리스트의 낙관적 편향을 줄이기 위해 리서치 부문 독립성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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