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균형 잡힌 아시아 시각] 그린란드에서 시작된 신전략 경쟁, 미국의 고민과 동북아의 선택

 

24일 그린란드 누크Nuuk 항구에 정박해 있는 덴마크 해군의 해상초계함 HDMS 크누드 라스무센P570 위로 덴마크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사진AFP
24일 그린란드 누크(Nuuk) 항구에 정박해 있는 덴마크 해군의 해상초계함 HDMS 크누드 라스무센(P570) 위로 덴마크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사진=AFP]


그린란드를 둘러싼 최근 미국의 움직임은 한 정치인의 돌출 발언이나 일회성 외교 이벤트로 치부해서는 본질을 놓치기 쉽다. 이 사안의 저변에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백 년 가까이 세계 안보와 경제 질서를 떠받쳐 온 미국의 구조적 피로와, 미래 전략을 둘러싼 깊은 고민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은 두 차례 세계대전과 냉전, 탈냉전기를 거치며 해양 질서와 동맹 체제를 유지해 왔다. 그 대가로 막대한 국방비와 글로벌 개입 비용을 감당해 왔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오늘날 워싱턴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이 부담을 언제까지, 어떤 방식으로 감당할 것인가.”

이 지점에서 북극, 그리고 그린란드가 다시 부상한다. 뉴욕과 워싱턴의 전략가들에게 그린란드는 얼음 덮인 변방이 아니라 북미·유럽·러시아를 잇는 군사적 교차로다. 미사일 조기경보 체계, 북대서양 항공·해상 통제, 잠수함 작전 환경까지 직결되는 핵심 공간이다.

미국이 과거의 ‘매입’이라는 과격한 표현에서 ‘접근권’이라는 보다 현실적인 언어로 선회했더라도 전략적 핵심은 변하지 않았다. 북극의 관문을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다.

이 배경에는 나토에 대한 미국 내부의 누적된 불만도 깔려 있다. 미국 정치권에는 오랫동안 “유럽이 안보를 미국에 과도하게 의존해 왔다”는 인식이 존재해 왔다. 방위비 분담, 군사 역량, 위기 대응 속도를 둘러싼 논쟁 속에서 나토의 실효성에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그린란드 문제는 동맹 포기 선언이라기보다, 동맹의 부담 구조를 재조정하려는 압박 카드에 가깝다. 전략 거점을 미국이 직접 관리 가능한 틀로 묶어두려는 계산이 읽힌다.

이 흐름을 가장 정확히 꿰뚫고 있는 인물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라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는다. 러시아는 이미 북극 연안 군사 기지를 재건했고, 세계 최대 규모의 쇄빙선 전력을 유지하며 북극항로를 자국의 전략 자산으로 다루고 있다. 유럽이 에너지와 안보에서 취약성을 드러냈던 경험은 모스크바에 자신감을 심어줬다. 북극은 러시아에 방어선이자 외교·군사적 지렛대다. 미국이 그린란드에서 존재감을 강화할수록, 러시아 역시 북극의 군사화와 항로 통제 의지를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중국의 ‘대국 굴기’가 겹친다. 중국은 스스로를 ‘근북극 국가’로 규정하며 과학기지 건설, 쇄빙선 확보, 자원 투자 등을 통해 북극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북극은 중국에 해상 실크로드의 연장선이자 에너지·광물 확보 통로이며, 전략적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다. 미·러 경쟁 구도에 중국까지 얽히면서 북극은 21세기형 다자 전략 경쟁의 축소판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 대전환의 물리적 배경에는 이상 기후라는 현실이 있다. 해빙이 가속화되면서 북극항로는 더 이상 이론이 아니라 계산 가능한 물류 루트가 됐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항로가 단축되고, 항공·해상 교통 패턴이 재편될 가능성도 커졌다. 이는 단순한 운송 비용 문제를 넘어 산업 지리 자체를 바꿀 잠재력을 지닌다. 에너지와 원자재, 부품의 이동 경로가 달라지면 공장과 항만, 물류 허브의 지도 역시 다시 그려질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동북아 3국, 한국·일본·중국의 이해관계가 교차한다. 세 나라 모두 수출 주도 경제 구조를 갖고 있고 해상 물류 의존도도 높다. 북극항로는 비용과 시간을 줄일 기회인 동시에 미·러 전략 경쟁의 한복판이다. 어느 한쪽으로 과도하게 기울 경우, 다른 쪽에서의 리스크는 급격히 커질 수 있다. 결국 관건은 기술력과 외교력, 그리고 위험 관리 능력이다. 쇄빙선, 극지 운항 시스템, 위성 통신, 자율운항 기술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에 가깝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의 시각을 종합하면, 미국의 북극 행보는 고립주의 회귀라기보다 선택적 개입의 재설계에 가깝다. 비용 대비 효과가 큰 전략 거점은 더욱 단단히 쥐고, 동맹에는 더 많은 역할과 책임을 요구하는 구조다. 그린란드는 이 재설계의 상징적 무대다.

그러나 이 전략 경쟁의 그늘 역시 분명하다. 북극은 기후 변화의 최전선이자 생태계가 극도로 민감한 지역이다. 군사 인프라 구축과 대규모 자원 개발이 병행될 경우, 그 환경 비용은 미래 세대가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린란드 주민, 특히 이누이트 사회의 의사가 국제 전략 담론에서 후순위로 밀리는 현실도 간과할 수 없다. 지속 가능성을 배제한 북극 전략은 장기적으로 스스로를 잠식할 위험을 안고 있다.

결국 그린란드는 하나의 섬이 아니다. 미국의 부담 구조, 나토의 미래, 러시아의 자신감, 중국의 확장, 기후 변화, 그리고 동북아 물류 전략이 한 점에서 교차하는 전략적 교차로다. 아시아의 시각에서 이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산업과 안보, 외교가 동시에 얽힌 생존의 방정식이다. 북극의 얼음이 녹는 속도만큼 세계 질서의 힘의 축도 이동하고 있다. 그 변화를 읽고 준비하는 국가만이 다음 질서에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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