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서 장기화된 경제난과 화폐 가치 폭락에 대한 불만이 반정부 시위로 분출되며 대학가까지 확산되고 있다. Z세대가 가세하며 시위 동력이 커지자, 이란 정부는 강경 대응 대신 경제 문제 해결을 약속하는 유화적 태도로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달 31일(현지시간) 이번 시위가 같은 달 28일 수도 테헤란에서 상인들 주도로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서방 제재 속에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는 가운데, 이란 화폐 리알 가치가 사상 최저로 폭락하자 상인들의 분노가 시위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이란의 환율은 1달러당 142만리알(약 5억 4780만원)까지 치솟았다. 2015년 리알 환율이 달러당 3만2000리알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약 10년 만에 화폐 가치가 44분의 1로 급락한 셈이다. 경제 상황 악화에 대한 불만은 빠르게 대학가로 번졌고, 시위 나흘째에는 테헤란을 포함한 전국 약 10곳의 대학에서 학생들이 시위에 동참했다.
현지 언론과 소셜미디어에 게시된 영상에는 학생들이 자유를 외치며 일부 캠퍼스 인근에서 보안 병력과 충돌하는 장면도 담겼다. 작년 하반기 이후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Z세대 주도로 특권층의 부패와 경제적 불평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잇따른 가운데, 이란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Z세대의 가세로 민심이 쉽게 가라앉지 않자, 이란 당국은 시위의 발단이 된 경제 문제에 초점을 맞춰 대응에 나섰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지난 29일 국민 생계에 가해지는 압박을 정부가 잘 알고 있다며 내무부에 시위대의 요구를 경청하라고 지시했다. 강경 보수파로 분류되는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도 "관대함, 책임감, 철저한 책임감을 갖고 시위를 다뤄야 한다"고 밝혔다.
당국은 리알화 폭락의 책임을 물어 중앙은행 총재를 경질하고 새 총재를 임명했다. 신임 총재인 압돌나세르 헴마티는 "국민이 안정을 찾도록 국가 경제 상황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WSJ은 이 같은 대응이 과거 체제 전복을 겨냥했던 대규모 시위 때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유화적이라고 짚었다. 일부 체포 사례는 있었지만 2022년 이른바 '히잡 반대' 시위 당시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수준의 경찰 폭력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이번 시위가 체제 전복보다는 경제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시위가 체제 전반에 대한 반대 목소리로 확산될 경우 강경 진압으로 선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모하마드 모바헤디아자드 이란 검찰총장은 "경제적 시위를 악용하려는 시도는 그에 비례하는 단호한 법적 대응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 전문 지정학 분석가 무스타파 파크자드는 WSJ에 "정권은 시위대의 거친 언사를 듣겠다고 말하지만 많은 사람은 새로운 출발과 새로운 체제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란의 한 정권 충성파 인사가 경제 문제로 촉발된 소요 사태가 폭력으로 번지는 과정에서 시위대와 대치하다 숨졌다고 이란 국영 방송 IRIB가 보도했다고 WSJ은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란 서부 로레스타주 쿠다슈트에서 시위대가 던진 돌에 바시지 대원(21)이 사망했다. 바시지는 이란을 수호하는 임무를 맡은 자원 민병대 조직으로, 이번 시위에서 약 12명의 바시지 대원이 부상당했다고 알려졌다.
경제 악화에 대한 항의로 시작된 시위는 점차 이란의 통치 방식 전반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양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여성 인권 운동가와 상인, 학생들은 "독재자에게 죽음을", "여성, 생명, 자유" 등의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으며 이 같은 구호는 이란에서 체포와 투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시위가 격화하는 가운데 이슬람 체제의 주요 보수 인사들조차 시위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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