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은 정치의 바깥에 있어야 한다. 선거의 열기 속에서도 법정 만큼은 냉정해야 하고, 판결은 사리사욕이나 정파의 유불리와 무관해야 한다. 법치는 감정이 아니라 원칙으로 움직이고, 형사 재판은 추정이 아니라 증거로 굴러간다. 그런데 지금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적용된 기소는 이 원칙의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기소할 수 있으니 기소한다'는 식의 접근은 검찰권의 남용이자 사법 절차의 파괴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은 기소 요건을 충족하느냐가 핵심이다. 형사재판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증거'가 존재할 때에만 기소가 가능하다.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이 있다고 해서, 또는 정치적 의혹이 있다고 해서 기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정치인의 경우, 기소만으로도 치명적 타격이 발생하기 때문에 더욱 엄격한 증거 기준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이러한 최소한의 기준조차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3300만 원의 흐름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돈을 냈다는 사람은 있지만 받았다는 사람은 없다. 돈의 전달 경로도 불명확하고, 전달자·수령자의 진술은 서로 엇갈린다. 객관적 물증은 없고, 계좌 흐름도 확인되지 않았다. 결국 이번 기소는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는 진술에 의존한 사건이다. 형사소송법은 단호하다. 진술만으로는 부족하며, 진술을 떠받칠 독립적 물증, 교차 검증 가능한 자료, 객관적 정황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이 3가지 요건 모두에서 허둥댄다. 이런 상태에서 피고인을 재판에 세우겠다는 것 자체가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또 하나의 문제는 기소의 목적성이다. 특검은 증거의 충실성을 논하기보다, '법이 정한 기한이 있으니 기소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기한 준수는 절차의 문제이지, 기소 정당성의 문제가 아니다. 절차를 맞추기 위해 기소하는 것은 조직의 책임 회피일 뿐 법의 정신은 아니다. 법이 요구하는 것은 기한이 아니라 진실이다. '기소할 수 있는 기간'이 아니라 '기소해야 할 이유'가 먼저다.
지금 재판부가 보여주는 태도도 문제다. 특검법의 '6개월 내 선고' 규정을 마치 절대기준처럼 받아들이며 신속한 재판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형사재판의 본질은 속도가 아니라 정확성이다. 재판은 사건의 사실관계를 규명해 진실을 찾는 과정이지, 마감일을 맞추기 위해 쫓기는 행정 업무가 아니다. 특히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서 성급한 재판은 그 자체로 결과를 왜곡할 위험이 있다. 재판의 결과가 선거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되고, 선거 일정이 재판의 방향을 정해서도 안 된다. 법이 정치의 위에 있어야 한다는 말은 바로 이런 맥락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은 '정치적 의혹'은 있으나 '법적 범죄'는 불분명한 사건이다. 의혹은 언제든지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의혹은 법적 책임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 의혹은 정치가 판단할 일이고, 범죄는 법이 판단할 일이다. 지금 특검이 오세훈 시장에게 적용한 방식은 이 두 영역을 뒤섞고 있다. 정치적 의혹을 형사적 책임으로 포장하고, 법적 불확실성을 정치적 확실성으로 대체하려 하고 있다. 이는 위험할 뿐 아니라 비민주적이다.
오세훈 시장에게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오세훈이 이겨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법이 법의 방식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증거가 부족하면 기소해선 안 되고, 증거가 불충분하면 재판을 서둘러서도 안 된다. 선거는 유권자의 판단으로 결정되는 것이지, 불완전한 재판의 속도전으로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하다. 법의 원칙을 지키는 것, 그 한 가지뿐이다. 정치의 속도보다 법의 원칙을 우선하는 것이 사법부가 지켜야 할 마지막 품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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