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 제재 대상국들이 원유 수출을 위해 운용하는 ‘그림자 선단’이 급증하면서 서방의 제재 집행이 해상에서 군사적 긴장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단속과 회피가 맞물리며 나포·공습·군사 호위까지 등장하는 양상이다.
2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그림자 선단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러시아는 유럽연합(EU)의 원유 제재를 피해 국제 해상보험을 쓰지 않는 중고 유조선을 대거 확보해 중국·인도 등으로 원유를 할인 수출했다. 선박 소유관계와 국적을 숨기거나 위장하는 방식이 특징이었다.
현재 러시아뿐 아니라 이란과 베네수엘라까지 가세하며 규모가 더 커졌다. 최근에는 일부 유조선이 러시아 국기를 다시 내거는 등 운용 방식도 대담해졌다. 이에 맞서 서방의 대응 역시 한층 공격적으로 변하고 있다.
해상 충돌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보안국은 최근 지중해와 흑해에서 러시아 그림자 선단 소속 유조선 4척을 드론으로 공격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프랑스는 10월 서부 생나제르 인근 해상에서 러시아 선단으로 의심되는 베냉 선적 유조선 ‘보라카이’호에 군을 투입해 조사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당시 “의심스러운 선박을 막기 위해 더 진전된 조치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반발도 거세다. 지난 5월 에스토니아 해군이 핀란드만에서 유조선 ‘재규어’호를 차단하려 하자, 러시아 수호이(Su)-35 전투기가 에스토니아 영공을 침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두고 유럽정책센터(EPC)의 크리스 크레미다스-코트니 선임 연구원은 가디언에 “러시아와 연계된 선박들이 드론 침투, 해저 케이블 훼손, 핵심 인프라 정찰에 연루됐다”며 “모스크바가 이 선단을 전략 자산으로 보고 보호할 의지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다만 전면 충돌 가능성에 대해서는 신중론도 나온다. 영국 싱크탱크 로열 유나이티드 서비스 인스티튜트(RUSI) 재정안보센터의 곤잘로 사이즈 에라우스킨 연구원은 21일 가디언에 “그림자 선단 자체는 새로운 위협이 아니지만 2022년 이후 급격히 늘어 현재 전 세계적으로 900~1200척이 운영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가 보유한 중고 선박, 소유관계가 불분명한 유조선, 불법 활동에 연루된 회사 소유 선박 등이 혼재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림자 선단이 유지되는 배경으로 가짜 선적 등록 사이트, 불법 중개인, 불투명한 페이퍼컴퍼니의 확산이 지목된다. 영국 해운 전문지 로이드 리스트의 토머 라난은 말라위 해사청을 사칭한 가짜 등록 사이트 등 다수의 허위 국기 등록 사례를 추적해왔다며 “제재 대상 원유가 할인 판매되고, 선주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로 프리미엄을 받는 구조가 유지되는 한 그림자 선단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분석가들은 미국이 베네수엘라 선박을 나포하는 것과 EU가 러시아 선박을 상대로 같은 조치를 취하는 것은 위험 수준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베네수엘라와 달리 러시아는 군사적으로 즉각 대응할 수 있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서방의 제재 집행이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