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칼럼] 정교분리, 결단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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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병 시사평론가] 
 
우리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고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적시하고 있다(20조). 이러한 ‘정교분리 원칙’은 1948년 ‘제정 헌법’ 때부터 천명한 것이며 당시에도 이에 대한 별다른 반론이 없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80여 년 동안 헌법 20조를 둘러싼 정치적 또는 사회적 논란은 거의 없었다. 우리 국민은 지금도 정교분리 원칙을 너무나 상식적이고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분명 복 받은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가족이 함께 제사를 모신 뒤 이튿날 성탄절 케이크를 먹고 주말엔 인근 산사를 찾아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그런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는 길에 심심하면 철학관이나 점집에 들러서 운세를 봐도 탓할 사람은 없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여러 종교가 함께 터를 잡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에 속한다.

그런데 최근 정교분리 원칙을 좀 더 세밀하게 다듬고 위법에 따른 처벌 조항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자주 제기되고 있다. 그만큼 정교분리 원칙이 흔들리거나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는 얘기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도 이달 초 국무회의에서 정교분리 원칙을 언급하면서 이를 어기는 종교재단 등에 대해서는 해산 등 엄중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를 방치하면 헌정질서가 파괴될 뿐 아니라 종교전쟁과 같은 사회 갈등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이 종교재단의 위헌적 행태에 대한 우려와 함께 해산 등 법적 조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일부 종교재단의 위헌적 행태와 무분별한 정치 개입에 대해 ‘정면 대결’을 밝힌 것이어서 참으로 다행스럽다. 헌법 정신인 ‘종교의 자유’를 위해서라도 헌법 정신을 짓밟는 ‘종교의 정치화’는 반드시 막아야 할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를 비교적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다. 국교만 안 될 뿐이지 의식, 포교, 교육, 집회 및 결사 등 신앙을 실행하는 방식까지 종교의 자유로 포괄하고 있다. 물론 ‘종교법인’을 설립하는 것도 까다로운 편이 아니다. 저급한 종교인이나 사이비 종교들이 많은 것도 하나의 배경이라 하겠다. 문제는 이재명 대통령 지적대로 위헌적인 종교재단을 실제로 해산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현행 법규에는 종교단체에 대한 해산을 규정한 것이 없다. ‘정당의 해산’ 등과 같은 직접적인 규정이 없다는 뜻이다. 다만 민법에 ‘법인’이 목적 이외의 사업을 하거나 또는 설립 허가의 조건에 위반하거나 기타 공익을 해하는 행위를 한 때에는 주무 관청이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38조). 종교가 법인일 때에는 ‘공익’을 근거로 그 설립 허가를 취소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공익이란 표현이 다소 막연하지만 이마저도 법인 허가의 취소일 뿐이며 교단 운영 등 종교 활동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일본 사례는 우리와 좀 다르다. 2022년 7월 아베 전 총리가 유세 현장에서 총을 맞고 사망했다. 당시 범인은 어머니가 집까지 팔아서 통일교에 거액을 헌금한 것에 불만을 품고 통일교와 관계가 있는 아베 전 총리를 노렸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통일교의 모금 행위가 논란이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물론 그 돈으로 교세는 엄청 커졌다. 정교유착의 생생한 사례로 언급되는 이유라 하겠다. 아베 전 총리의 사망을 계기로 통일교의 고액 기부 문제가 정치권을 강타하자 일본 정부가 2023년 법원에 ‘해산명령’을 청구했다. 이에 도쿄지방법원이 지난 3월 ‘기부 권유’를 이유로 해산명령을 내렸다. 현재는 통일교가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일본도 민법상의 근거로 해산명령을 내린 것이다. 구체적으로 ‘종교법인법’ 규정이 있으며 여기에 ‘해산명령’이 적시돼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규정이 없다. 그래서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우리 근·현대사를 보면 종교의 긍정적 역할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세상 물정에 어두웠던 조선에 ‘근대의 정신’을 일깨운 것은 개신교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식민지 조선에서 독립투쟁의 큰 동력이 됐던 것도 역시 종교의 힘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엔 어두운 역사도 적지 않다. 독재정권이나 군사정권에 빌붙어 굴신하면서 교세를 확장하거나 돈벌이에 나선 종교단체도 수두룩하다. 헌법에 정교분리 원칙을 천명했지만 정치는 종교를 끌어들였으며 종교는 그런 정치를 이용했다. 그럼에도 그 야합의 실체가 드러나거나 단죄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세월이 흘러 이제는 종교가 노골적으로 정치권력에 줄을 대는 것을 넘어서 직접 당원으로 동원하는 지경까지 왔다. 길거리 집회는 종교집회를 넘어 이미 정치투쟁의 장이 된 지 오래다. 사실상 종교의 탈을 쓴 정치집단에 가깝다. 이들을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치했을 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민주공화정에서 정교분리는 헌정질서의 대원칙이다. 그렇지 않다면 국가권력을 빼앗기 위한 종교 전쟁을 용인하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 헌법도 정교분리를 천명한 이상 ‘종교의 정치화’는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 하지만 이미 금도를 넘어섰다. 자칫 종교단체가 정권을 장악하거나 정치권력을 쥐락펴락하는 날이 올 수도 있는 일이다. 이제라도 정교분리의 원칙을 꼼꼼하게 재정립해야 한다. 종교단체에 관한 구체적 입법도 시급하다. 최근 논란이 된 통일교 문제는 이쯤에서 끝낼 일이 아니다. 이미 실세 장관이 사퇴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검은돈의 냄새가 정치권을 관통하고 있다. 민중기 특검은 수사 중에 이를 확인하고도 여태껏 뭉갰다. 이럴 때 하라는 것이 바로 ‘특검’이다. 오죽했으면 당원 가입 의혹을 받고 있는 국민의힘이 전면에 나섰겠는가. 그럼에도 민주당이 발을 빼고 있다. 뭔가 찔리는 것이 있는 것일까. 민주당이 특검에 반대한다면 스스로 그 주범이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정교분리를 구체화하기 위한 입법과 단죄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이 또한 이재명 대통령의 뜻이기도 하다. 부디 말뿐이 아니라 행동에 나서길 바라는 마음이다.
 

 필자 주요 이력
△시사평론가(현) △인하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선거방송심의위원(전) △혁신과미래연구원 원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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