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칼럼] 황경노회장이 남긴 유산—한국 철강, 다시 기업가정신을 불러야 한다

  • ·

포항제철 창립 멤버였던 황경노 전 포스코 회장의 별세는 한 인물의 퇴장을 넘어 한국 철강산업의 출발점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산업은 사람보다 오래 남지만, 산업을 지탱하는 기준과 태도는 결국 사람을 통해 전해진다. 박태준의 결단과 황경노의 규율이 이어져 포스코가 만들어졌듯, 오늘의 위기 역시 새로운 기업가정신을 요구하고 있다.

박태준의 기업가정신은 ‘결단’의 언어였다. 자본도 기술도 없던 시절, 그는 철강을 하나의 사업이 아니라 국가의 기반으로 정의했다.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선택 앞에서 그는 계산보다 책임을 택했다. 손자병법의 말처럼 “승리는 계산이 아니라 결단에서 나온다(勝在決斷)”. 포항의 용광로는 그렇게 불을 얻었다.

황경노의 기업가정신은 다른 결을 지녔다. 그는 포스코 창립기부터 기획과 관리의 틀을 세운 설계자였다. ‘최소 비용으로 최고의 회사’, ‘선공후사’라는 원칙은 미담이 아니라 경영 규칙이었다. 회사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조직을 정비한 선택 역시 같은 맥락이다. 노자가 말한 “큰 일은 반드시 작은 데서 시작된다(大事必作於細)”는 문장은 그의 경영을 정확히 가리킨다.

기업은 결단만으로 오래 가지 않는다. 규율과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장의 열기는 금세 소진된다. 일본 도요타가 카이젠으로 체질을 만들었듯, 황경노는 포스코의 성장을 지속 가능한 구조로 바꾸는 역할을 했다. 기업가정신은 여기서 확장이 아니라 유지의 이름으로 드러났다.

· 위기의 철강, 결국 방향이 성패를 가른다

오늘의 한국 철강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환율 변동, 원자재 가격, 금리, 탄소 규제, 수요 둔화와 자금시장 경색이 동시에 작동한다. 이런 국면에서 기업가정신은 외형 확장이 아니라 구조 전환의 용기로 나타난다. 미국의 누코가 불황기에 전기로 중심의 유연한 생산 구조로 경쟁력을 확보했고, 독일 티센크루프가 고급강과 수소환원제철로 방향을 튼 사례는 우연이 아니다.

위기 속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먼저 방향을 정했다는 점이다. 세네카의 말처럼 “풍랑이 배를 침몰시키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잃은 배가 침몰한다.” 위기는 언제나 선택의 순간을 앞당긴다.

· 중국과 같은 길을 가면 진다

중국 철강의 추격을 가격 문제로만 보면 해법은 없다. 중국은 이미 국가 총력전형 산업으로 진화했다. 이제 경쟁의 축은 기술, 품질, 신뢰, 탄소, 공급 안정성으로 이동했다. 일본 철강이 고급 소재와 신뢰를 무기로 틈새를 지켜온 것처럼, 한국 철강 역시 같은 길을 갈 필요는 없다.

중국을 이길 수 있느냐가 아니라, 중국과 다른 길을 갈 수 있느냐의 문제다. 공자가 말한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같이 가되 같아질 필요는 없다는 태도가 지금의 경쟁 전략에 더 어울린다.

· AI·탈탄소 시대에도 철강은 사라지지 않는다

AI와 탈탄소 시대에 철강을 말하는 것이 구식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철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어떤 철강이 남느냐가 달라질 뿐이다. AI는 공정 최적화와 수요 예측, 품질 관리의 방식을 바꾸고, 탈탄소는 제품의 정의 자체를 다시 쓰게 만든다. 이때 필요한 기업가정신은 기술 도입 그 자체가 아니라 구조를 재설계하는 선택이다.

필자는 박사논문 『기업가정신과 경제성장』에서 기업가정신을 “불확실성 속에서 기회를 발견해 조직의 장기 자산으로 전환하는 능력”으로 정의했다. 이 능력은 창업기보다 성숙기와 위기 국면에서 더 중요해진다. 기업가정신은 한 번의 결단이 아니라, 반복되는 선택의 누적이다.

· 포스코는 여전히 강하다 

포스코는 여전히 강한 조직이다. 박태준의 결단과 황경노의 규율이라는 두 축은 포스코의 DNA로 남아 있다. 역사적으로 포스코는 호황보다 불황에서 더 많이 진화해왔다. 방향을 정하면 흔들리지 않았고, 원칙을 세우면 비용과 조직을 관리했다.

포스코 창업자들이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다. 위기의 산업에서 리더는 관리자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책임을 지는 기업가로 나설 것인가. 기업가정신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며, 태도는 제도와 규율로 남을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 그 태도가 이어져 온 조직이라면, 포스코는 이번 위기 역시 건너갈 것이다. 한국 철강의 역사는 그렇게 증명돼 왔다.
 
사진챗 GPT 생성
[사진=챗 GPT 생성]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