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AI정부라더니 1300종 종이서류에 발목 잡힌 K-행정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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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플랫폼 정부란 거창한 이름이 사용된 것은 지난 정부 때부터다. 이번엔 AI정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이 간단한 배터리 화재 하나로 국가정보시스템의 중추신경이 완전히 망가진 처지에서 보면 전혀 몸에 맞지 않는 옷 이름들이다. 민생은 마비될지언정 국정까지 마비되진 않을 거라는 공직사회 특유의 믿음이 있었던 것일까. AI시대를 이끈다는 취지로 3대 강국 운운한 장면은 단지 투표용이었나. 시대에 맞지 않는 행정과 정치를 보면서 느끼는 자괴감은 누구든 예외가 없을 것이다. 이게 디지털강국 대한민국의 이율배반적 자화상이다. 행정망 마비 사태의 여진이 대규모로 컸던 불과 2년 전 행정망 마비 사태를 상기해보면 행정망 마비가 얼마나 민생을 괴롭히는지 알 수 있다.

정부는 이번 사태 후속 대책으로서 첫째로 시스템을 즉각 복구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그다음으로 국민 불편 최소화에 총력을 기울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렇다면 정부로서는 국민들은 과연 어떤 성격의 불편을 겪고 있는지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도대체 뭐가 불편하고 또 그런 불편이 무엇 때문에 야기되는지 알 필요가 있다. 이번에 마비된 709개 시스템의 대다수는 민원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불편의 정중앙은 다름 아닌 민원서류다. 국가행정망을 민원행정망 혹은 민원서류망, 줄여서 민원망으로 불러도 무방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가정을 해 볼 수가 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주민번호 같은 민감 번호를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는다면 공무원이 (민원)서류에 해당하는 서류를 공무원 스스로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다. 이게 바로 미국과 영국 같은 선진국들이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번 화재 사고에서도 민원 마비 진통을 판박이로 겪고 있다. 진통의 공통점은 주민증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서비스가 전부 마비됐다고 하는 점이다. 즉 주민번호가 있어야만 뗄 수 있는 서류, 즉 민원 서류를 발급받을 수 없게 됐다는 뜻이다.

불편의 정중앙은 다름 아닌 민원서류다. 우체국 서비스가 전면 마비된 배경도 금융 서비스 등 전체가 거의 다 주민번호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불편의 원인 제공자가 되는 민원서류 제거 및 폐지에 관한 한 노력을 별로 안 하고 있다. 국정자원 정보시스템은 국가전산망의 중추신경에 해당하는 총 1600개로 돼 있다(서울신문 2025년 9월 29일자). 그중 예금 보험을 위시한 서비스 647종이 마비됐다(한국경제 2025년 9월 27일자). 그렇다면 1600개 중 953개 시스템은 공직사회 내부 공공시스템인 반면 나머지 647개 시스템은 철저히 주민번호를 기반으로 한 민원 처리 시스템들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정부 업무 중 거의 절반이 주민번호를 기반으로 하고 있단 계산이 나온다. 주민번호가 개인 최대 민감 번호로 지정되어 있는 까닭에 그 번호를 본인 외에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으므로 수고스럽더라도 민원인이 직접 (민원)서류를 떼서 공무원에게 제출해야만 제출 후부터 업무가 비로소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즉 민원서류 제출 전에는 전혀 돌아갈 수 없는 업무가 정부 업무의 절반쯤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의 경우는 행정망이란 말보다 민원행정망 혹은 민원서류망, 줄여서 민원망으로 불러도 무방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가정을 해 볼 수가 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주민번호 같은 민감 번호를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는다면 공무원이 (민원)서류에 해당하는 서류를 공무원 스스로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다. 이게 바로 미국과 영국 같은 선진국들이 사용하는 방식과 완전히 똑같다.

민원서류 현황을 보면 이렇다. 행정망을 대변하다시피 하는 정부24라는 사이트에서 뗄 수 있는 민원서류의 종류는 무려 1300종이다. 이 중 절반에 해당하는 것들이 국정자원 담당이라는 사실이 이번 사고로 밝혀졌다. 또 그중 20%는 무인민원서류 발급기를 통해 발급 가능하다. 민원서류란 주민번호를 토대로 해서 만들어지는 것들이다. 즉 주민번호 없이는 만들지 못하는 서류들이란 뜻도 되고 이를 뒤집으면 놀랍고도 중요한 단서가 나온다. 즉 만일 주민번호가 없다면 (혹은 다른 말로 하면 일상 속에서 절대 사용되지 않는다면) 뗄 필요가 전혀 없는 서류들이란 뜻도 된다. 외국에서 생활해 본 사람들은 공감할 내용이지만 외국에서는 우리 같은 민원서류를 요구하는 일 자체가 없다. 그 이유는 공공 번호인 주민번호를 민간(일상)에서 전혀 사용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막아 놓은 까닭이다.

데이터센터 전원으로는 배터리는 물론 터빈발전기도 사용되는 게 보통이나 어떤 것이든 무중단 가동을 위해서는 무조건 쌍으로 작동돼야 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러나 기본이 지켜지지 않았다. 이번 행정망 서버 복구는 정부가 약속했던 4주란 시간은 이미 훨씬 지났다. 시스템 간 연계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가 자인한 부분이다. 이런 연계성이 일으킬 부작용은 크다. 애당초 전체 시스템을 통합형으로 개발하여 연계성 개입을 없앴어야 했다. 이 점도 이중화 문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지만 이런 설계 기본 철학까지도 외면한 것이 화근이었다. 행정망 자체가 통합설계를 외면해 온 탓에 복구 완료까지는 장장 1년 넘게 걸릴지도 모른다. 짧게 1년으로 쳐도 시간으로 환산하면 무려 8600시간이다. 그만큼 걸릴 일을 3년 전 카톡 먹통 사태 때 국정자원 측 스스로 우리 같으면 단 3시간 만에 복구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으니 그걸 시간 관점에서 환산해보면 무려 2800배나 튀긴 허풍이었던 것이다.

정부가 이런 호언장담의 그릇됨을 놓고 대국민 사과를 표명한 적은 유감스럽게도 없다. 행정망 대규모 마비 사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년 전 마비 때에도 정부는 당시 마비의 원인을 네트워크 오류로 지목하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당시 행정망 오류가 수개월 지속되던 중 그런 마무리에 정면으로 반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다름 아닌 어느 민원인이 정부24에 자신의 서류를 신청했더니 엉뚱하게도 타인 서류가 출력돼 나온 일이다. 그건 누가 봐도 네트워크 오류가 아니라 당연히 데이터 오류라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그렇다면 정확한 진상 규명을 위해 지금이라도 사태의 진상을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재발도 막는다.

3년 전 카카오톡 민간 서버 마비 때는 온갖 경고음을 울리더니 정작 공직사회 자신에게는 관대한 잣대를 들이댄 것도 사실로 드러났다. 송구하다는 말로는 넘어갈 수 없는 대목이다. 국가 위기 대응은 묵묵히 평소에 해야 한다. 시간과 돈이 얼마 들더라도 국민 생활 편안을 위해 국가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예산 확보 미흡으로 또는 일정상 이유로 못해 냈다면 거기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런 중대 사고에 국정자원을 관할하는 행정안전부 책임자는 물론 국정자원 원장은 순순히 물러나는 게 도리다. 그러나 그런 말은 들리지 않는다. 정보 보유의 규모를 표시할 때 가장 논리적이고도 정확한 방법은 데이터 개수로 하는 게 바람직하나 그보다는 편의상 정보시스템(이하 시스템) 수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9월 26일 발생한 국정자원 화재로 인해 가동 중단된 시스템 수는 647개에 달한다. 국정자원에 있는 국가 정보는 우리나라 전체 국가 정보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 전체 정보를 다루는 곳은 행정안전부이기 때문이다. 2년 전 행정망 마비 사태 때 드러났듯이 행안부가 관리하는 시스템 수는 무려 1만9000개에 달한다. 그렇다면 국정자원은 행안부 산하 기관으로서 행안부 시스템 중 불과 5% 미만에 해당하는 걸 관리 운영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24년 전 9·11 테러 때 무역센터 내에 위치한 모건스탠리는 정보시스템을 이른 시일 내에 복원한 것으로 인하여 전 세계 컴퓨터 재난 대비에 귀감이 됐다. 단 48시간 내에 완벽하게 시스템을 복원했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는 이중화된 데이터센터(뉴저지 소재)를 뉴욕 본사에서 30㎞ 이내 거리에 두어 상호 연결되어 마치 거울 속 자신을 보듯이(이래서 미러링이라고 부름) 동시에 작동되게 함으로써 피해를 당한 서버의 데이터를 쌍둥이 서버로 실시간 이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를 성공시키려면 데이터가 단 0.5밀리초 이내에 전파되어야 하기 때문에 빛의 속도로 작동되는 광케이블이 사용됐다. 그리하여 무역센터 내 본사 사무실과 인프라를 잃었음에도 모건스탠리는 48시간 내에 거래를 재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비추어 보면 우리나라 공직사회의 책임 회피 자세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3년 전 카카오톡이 마비되어 대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음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일이다. 당시 밝은 빛의 디지털 시대에서 암흑의 시대로 들어갔다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충격이 매우 컸다. 그 혼란은 당시 127시간, 즉 6일간 지속되어 특히 소상공인들에게 큰 불편을 끼쳤다. 그 당시 국정자원 원장이 민간기업의 이중화 실패를 따갑게 질책하면서 정부 같으면 단 3시간 내에 복구 수습할 일이었다고 복구 규모를 가볍게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말은 헛소리로 판명됐다. 카톡은 사건 복구 이후 시스템 3중화를 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국정자원은 지금까지도 이중화조차 안 된 채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야는 시스템 이중화 실패만 놓고 서로 책임 공방을 펼치고 있다. 사실 배터리 화재만 안 났으면 국정자원 시스템은 이중화와 무관하게 지금도 잘 돌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정부시스템은 민간시스템보다도 상대적으로 구조가 훨씬 덜 복잡하단 뜻이다. 디지털정부니 AI정부니 하면서 예산을 연 1조원 상당 배정하여 쓰면서 이중화 하나 못 해냈던 걸 여야 모두 반성할 생각은 조금도 없이 상호 적대 공방을 펼칠 일인가. 그건 결코 아니다. 돈이 모자라 못 해낸 것도 아니고 단지 정치권의 생각이 못 미쳐 벌어진 국가 중대 사태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모든 국민 불편의 시작은 민원 때문이다. 말로만 할 게 아니라 주민번호 관련 부작용 해결에 즉각 행동을 보여야 한다. 민원서류 전면 폐지에 앞장서 주는 게 여야가 당장 나서서 할 일이다. 새 정부와 더불어 온갖 법은 다 손대면서 국민 불편 제거할 이런 법 개정은 왜 착수하지 않는지 의문이다.



문송천 필자 이력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 샴페인) 전산학 박사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 ▷대한적십자사 친선홍보대사 ▷카이스트·케임브리지대·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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