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눈은 밝은 빛을 쐬면 다른 것을 보지 못한다. 망막에는 밝은 빛을 감지하는 원추세포와 어두운 빛을 감지하는 간상세포가 있다. 매우 밝은 빛에 노출되면 원추세포가 과도하게 자극되어 일시적으로 시각 정보 처리가 어려워진다. 원추세포가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리면서 시야의 다른 부분들이 잘 보이지 않게 된다. 눈을 감거나 다른 곳을 봐도 그 빛의 잔상이 남는다. 빛의 밝기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린다. 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주위의 시야는 가려지고, 그 잔상의 효과는 오래 지속된다.
우리 감각기관의 한계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기에, 다른 일에서도 같은 작용이 일어난다. 사회적인 일도 인간의 감각기관을 통해 인식하고 분석하고 적응하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빛에 가려졌던 모습이 보이게 된다. 사회 어느 한곳에 강력한 빛이 쏟아지면 우리는 다른 곳에 눈길을 주기 어렵다. 그 빛이 강할수록 그 시간은 더 오래 걸린다.
몇 년째 3000도 넘지 못하던 코스피 지수가 최근 폭등했다. 지난 3일에는 4221에 이르렀다. 오랜 침체를 겪은 만큼 최근의 증권시장 폭등에 쏟아지는 빛이 강렬하다. 자본시장 업계는 물론 정치권도 그 성과에 열중한다. 그 강렬한 빛은 사위를 인식하는 우리의 감각기관을 멀게 한다.
최근의 증시 폭등 원인을 두고 여러 분석이 제기된다.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감, 미·중 무역갈등 완화, 반도체 산업의 호조도 원인으로 제시된다. 상법 개정 후이기에 제도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는 분석도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그 상승 폭이 미미하거나 오히려 하락하였으므로 상법 개정 등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의 효과가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만성적인 저PBR 현상으로 대표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워인은 아직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최근 일련의 제도 개선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자본시장의 신뢰 회복 조치다. 신뢰 자본의 축적 과정이다. 주식에 대한 투자는 회사를 통해서 그 회사의 사업에 대해, 사업의 미래에 대해 투자를 하는 것이다. 회사는 그 매개체다. 미래의 수익이 회사를 통해서 전체 주주의 이익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회사의 이익이 대주주에게로 흘러가는 수많은 구멍들의 존재를 알았지만 수십 년간 이를 그대로 방치해 왔다. 그렇게 방치해 왔던 신뢰 상실의 구멍을 막는 얼개만 이제 만들었을 뿐이다. 듬성듬성한 얼개의 틈을 메우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개정된 법에 대한 실무해석과 법원의 판단으로 채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기 좋은 허울만 남을 뿐이다. 사외이사 제도의 변질에서 이미 그 모습을 보았다.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1998년 대규모 상장기업부터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한 후 그 대상이 확대되었다. 경영진과 지배주주에게서 독립된 외부 인사를 이사회에 참여시켜 회사 경영에 대한 견제와 감시 기능을 강화하려는 목적이었다. 의도는 좋았으나 고위직 전관이나 대학 교수들의 용돈벌이 수단으로, 거수기로 전락했다. 얼개는 만들었으나 그 틈을 채우지 못했기에 애써 만든 제도가 유명무실한 허울로 남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최근 개정 상법 조항들 역시 실효적인 변화를 만들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 주주 충실의무는 법원의 해석에 의해 쉽게 무력해질 수 있다.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여러 차례 주주총회를 함으로써 무력화될 수 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이미 교환사채 발행으로 무력화되고 있다. 용어도 낯선 교환사채 발행이 순식간에 폭증했다.
자본시장 신뢰 상실의 구멍을 막는 얼개를 간신히 만들었으나 그 틈을 제대로 메우기 전에 코스피 지수 폭등의 강렬한 빛이 쏟아졌다. 그 빛에 가려지면 애써 만든 제도들이 사외이사 제도처럼 순식간에 보기 좋은 허울로 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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