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은 죽음이 아닌 순환의 기록이며, 사라진 것들이 다시 빛으로 변하는 순간을 담는 일입니다."
윤현식 작가는 스스로의 회화를 이렇게 정의한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시각적 형상을 넘어, 존재와 생명에 대한 깊은 철학적 사유를 담아낸다.
이러한 사유를 집약한 개인전 '환생 還生'이 15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1층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사라진 존재의 흔적과 그 너머에서 다시 피어난 생명, 존재의 순환을 조형적으로 탐구한다.
대표작 '숨의 기억'은 거칠고 단단한 표면에 불규칙한 균열이 생명의 리듬처럼 이어지며, 미세한 틈새마다 빛이 스며든다. 이 틈은 상처의 흔적이자 회복의 통로로, 화면은 마치 숨을 쉬듯 빛을 흡수했다가 다시 내뿜는다. 윤 작가는 "고통은 생명이 깨어나는 자리이고, 균열은 새로운 생명이 숨 쉬기 위한 입구"라고 설명한다.
또 다른 대작 '부활의 땅'은 흙빛과 석체의 질감이 뒤섞인 화면 위로 은분과 금분이 스며들며 고요한 빛의 층위를 만든다. 이는 외적인 광채가 아닌, 시간과 상처를 통과한 후 비로소 드러나는 내면의 빛이다. 화면은 오래된 지층의 단면처럼 삶과 죽음이 맞닿은 세계의 깊이를 조형적으로 드러낸다.
윤 작가의 회화는 특정 전통이나 양식에 의존하지 않고, 존재와 생명의 본질에 대한 개인적 사유에서 출발한다. 물질과 시간, 형상과 흔적이 한 화면에 공존하며, 작가는 이를 통해 '존재의 조형학'을 구축해 나간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회화를 넘어 철학적 탐구의 과정이며, 물질이 사유로 변모하는 순간을 포착하는 기록이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작품 속 형상과 자신을 겹쳐보며, 부서지고 다시 일어서는 생명의 서사를 마주한다. 사라짐이 끝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 침묵과 빛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에서 그림은 언어를 넘어 존재의 근원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윤 작가의 화폭은 결국 인간과 예술, 그리고 생명 그 자체가 다시 태어나는 순간을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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