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구 칼럼] 조선의 역사를 지켜낸 안의·손홍록 …영정과 동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춘구 언론인
[이춘구 언론인]

 
 
조선의 역사를 왜군으로부터 지켜낸 안의·손홍록 선생의 모습이 영정과 동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안의·손홍록 선생 영정 봉안 및 흉상 헌정 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정세균·이홍식, 회장 박영일)는 433년 전 조선을 유린한 왜군으로부터 조선왕조실록 전주사고본을 온전하게 지켜낸 안의·손홍록 선생 표준영정과 흉상을 제작하고 두 분 선생의 혼과 기백을 기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안의·손홍록 추진위원회는 10월 26일 오전 칠보면 행복이음센터에서 영정 봉안식을 올리고, 오후에는 정읍시립박물관에서 흉상 제막식을 열기로 했다. 조선의 역사를 지켜낸 과정과 영웅들을 기리는 사업 등을 살펴보기로 한다.

안의 선생은 정읍 옹동, 손홍록 선생은 정읍 칠보 태생이다. 이들이 전주사고본을 전주에서 정읍 내장산 용굴암까지 이운하게 된 것은 임진왜란으로 조선이 존망의 위기에 처했었기 때문이다. 1592년 4월 13일 왜군은 부산포에 상륙한 후 파죽지세로 5월 2일 한양을 함락시키고 선조는 피난 길을 떠나야 했다. 왜군은 전라감영 전주성을 치기 위해 7월 7일 웅치전투, 8일 이치전투를 벌였다. 왜군의 전라감영 공격 직전 6월 22일 전주사고본과 태조 어진 이운작전이 개시된 것이다. 조선의 역사를 기록한 춘추관·충주사고·성주사고의 실록이 불에 타 없어지자 전주사고본을 지키기 위해 이운작전이 펼쳐진 것이다.

전라도 관찰사 이광은 전주 경기전의 태조 어진과 전주사고의 실록을 정읍 내장산으로 옮겨 수호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안의·손홍록 선생이 수호 임무를 스스로 원하자 이들로 하여금 실록을 지키도록 했다. 1592년 6월 22일 안의·손홍록 선생은 경기전 참봉 오희길과 더불어 실록과 어진을 내장산으로 옮기고 1년 넘게 지켜냈다. 1593년 7월 24일에는 왕명에 따라 실록과 어진을 충청도 아산에 옮겨 봉안하고, 충청도 관찰사 이산보에게 인계했다. 이후 어진과 실록은 해주에 이안移安하였고, 1596년 말경에는 강화도에 이안하였다가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영변 묘향산에 옮겨 보존했다. 손홍록은 이때에도 함께 했다.

관심의 초점은 경기전에서 내장산 용굴암까지 이운 과정이다. 왜군이 전주 방면으로 압박하자 6월 22일 경기전 전주사고에 소장된 실록을 내장산 용굴암으로 옮겼다. 23일부터 안의·손홍록 선생은 용굴암에서 수직 경계를 시작했다. 당직일지 성격의 『수직상체일기(임계기사壬癸記事, 전북유형문화재 245호)』가 바로 이때부터 작성된다. 7월 1일 태조 어진을 용굴암으로 이운·봉안했다. 실록은 은봉암으로 옮겼다. 7월 14일 실록을 더 깊은 산중의 비래암으로 다시 이운했다. 위험을 분산시키고 은닉을 강화할 목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후 9월 28일에는 어진도 비래암으로 옮겨 실록·어진을 한곳에 보관하며 수직을 보다 더 강화했다.

사학계는 안의·손홍록 선생이 6월 22일과 23일 말 20필에 50여 바리의 짐을 옮긴 것으로 보고 있다. 전주 도심 경기전에서 정읍 평지 구간은 수레(우마차), 말을 활용해 궤짝·포갑을 대량으로 이운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내장산 입산 이후에는 수레 진입이 어렵기 때문에 말·지게·등짐으로 용굴·은봉(은적)·비래암까지 단계적으로 옮겼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운단은 책 47궤, 제기 등 15궤 합계 수십 궤짝을 수십 대의 수레에 싣고 전주를 출발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운단의 경로는 경기전 → 용머리고개 → 김제 금구 → 정읍 태인 → 옹동 → 내장산 용굴암 등으로 이어지는 50여 km로 추산하고 있다.

안의·손홍록 추진위원회는 왜군의 침략으로부터 조선왕조실록을 어렵게 지켜낸 두 분 선생의 뜻을 전 국민에게 알리고 길이 보전하기 위해 영정과 흉상을 제작하기로 2023년 봄 결정했다. 추진위원회는 정세균 전 총리, 이홍식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가 공동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다. 전 쌍용그룹 임원인 박영일 전 수협 경제대표가 회장을 맡아 전체 사업을 이끌고 있다. 또한 강대석 서울법무법인 대표, 아주경제 회장인 곽영길 재경전북도민회 중앙회장, 선양모임 정읍시지부 이경연회장 그리고 안창욱 안의 문중 대표와 손주호 손홍록 문중 대표 등 전국적인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강대석 서울법무법인 대표는 조선왕조실록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며 국가 최고급의 문화재인 점 등을 국민이 널리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며 사업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두 분 선생의 모습은 안 씨와 손 씨 집안 후손 40명을 선발해 AI를 통해 표준안을 채택했다. 추진위원회는 이후 영정 제작을 소미정 화백에게, 흉상 제작을 김소영 조각가에게 맡겼다. 소미정 화백은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재원으로 비단에 표준영정을 그렸다. 김소영 조각가는 홍익대 미대 조소과를 졸업했으며, 청동 흉상 제작의 명인이다. 추진위원회는 영정 영인본을 두 분 재각에 모시고 영정 원본과 두 분이 입은 직령(直領, 평상복)은 정읍시립박물관에 전시하기로 했다.

안의·손홍록 선양사업은 조선 역사의 보존뿐 아니라 조선시대 호남의 전형적인 선비상을 정립하고 널리 알리는데도 그 근본 취지가 있다. 박영일 회장은 역사지킴이 안의·손홍록 선생 두 분의 헌신을 이 세상에 알려 나라 사랑의 패러다임을 넓히는 데 선양사업의 원칙을 두고 있다고 밝힌다. 그리고 두 분의 출생지 칠보면과 옹동면 5,000여 명의 주민에게 먼저 알리고 정읍의 10만 시민에게도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선양 모임 정읍지부를 설립하고, 교회와 성당, 이장 모임, 남천사 추향제 모임 참석 등을 통해 사업의 기초 발판을 만들고 있다. 박영일 회장은 더 나아가 국가적인 선양사업으로 이어가고 호남의 자랑, 한국의 자랑인 두 분의 헌신을 기려 후세들의 가르침으로 공유하는 게 꿈이라고 강조한다.

나라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 안의·손홍록 선생을 필두로 여러 계층의 백성이 희생을 무릅쓴 것처럼 유사한 사례가 또 있을까? 조선왕조실록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오늘날 후손들이 선조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기록 보존의 가치를 되새겨야 한다. 이에 따라 먼저 전주 경기전에서 정읍 내장산까지 실록 이운 경로를 역사문화 탐방로로 조성하고 역사를 지키고자 했던 선인들의 용기와 헌신을 새기는 계기를 마련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다음에 전체 이운과정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교재를 만들어 청소년 역사교육에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디지털 실록 전시 및 AR/VR 재현 사업 등을 추진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본다. 단순한 기념사업에 그치는 게 아니라 역사를 탐구하고 그 정신을 새길 때 역사는 살아 숨쉬며 우리에게 새로운 창조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
 
 


 이춘구 필자 주요 약력

△전 KBS 보도본부 기자△국민연금공단 감사△전 한국감사협회 부회장△전 한러대화(KRD) 언론사회분과위원회 위원△전 전라북도국제교류센터 전문 자문위원△전 한국공공기관감사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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