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섭 칼럼] 피지컬 AI의 꽃, '로봇' 강국이 되려면

주영섭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주영섭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AI(인공지능) 대전환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세계 경제 및 산업 판도는 물론 사회, 생활 등 우리의 일상을 과거 경험해보지 못한 모습으로 바꿀 전망이다.
 
AI 대전환의 대세는 에이전트 AI와 피지컬 AI의 두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에이전트 AI가 문자 그대로 사람의 일을 대신해 주는 대리인이 되어 일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올리는 것이 목적이라면, 피지컬 AI는 사람이 사용하는 제품에 탑재되어 혁신적 기능 및 성능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올해 초 세계 최대 기술전시회인 미국 CES(소비자전자쇼)에서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AI 발전 단계의 1단계로 인식(Perception) AI, 2단계로 생성(Generative) AI에 이어 향후 3, 4단계로 에이전트(Agentic) AI와 피지컬(Physical) AI를 제시하여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두 방향이 단계적으로 전개되기보다 사실상 두 축으로 동시에 전개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우리나라의 에이전트 AI 전략은 그동안 많은 칼럼과 강연을 통해 미국, 중국 대비 절대적으로 불리한 범용 분야를 피하고 우리가 강점을 가지고 있는 산업에 특화된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피력했는데 우리 정부와 기업의 대응이 이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 전략의 핵심인 산업 특화 분야의 데이터 및 도메인 지식·노하우를 AI가 이해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구조화 및 체계화, 표준화하는 데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길 바란다.
 
미국, 중국, 일본, EU(유럽연합)와 함께 제조 강국인 우리나라로서는 산업 특화 에이전트 AI도 중요하나 피지컬 AI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피지컬 AI는 실제 물리적 세계를 인식하고 이해하며 자율적으로 상호작용하는 AI 시스템으로 정의된다. 협의의 정의에 따르면 로봇, 자율주행차, 드론, 자율주행 선박·항공기 등과 같이 인식, 판단, 행동의 3요소를 갖춘 ‘움직이는 AI’ 시스템을 말한다. 광의로 보면 인식, 판단, 제어 기능을 가지고 있는 모든 제품 및 시스템이라 볼 수 있어 AI가 탑재된 스마트폰, PC, 기계장비, 의료기기 등 대부분의 첨단 제품이 모두 해당된다. 결론적으로 피지컬 AI가 사실상 모든 첨단 제품의 기능과 성능을 획기적으로 혁신한다는 면에서 한국 경제의 핵심인 주력 및 첨단 제조업의 미래가 여기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반드시 피지컬 AI 분야에서 세계를 주도해야 하는 이유다.
 
피지컬 AI의 핵심은 로봇이다. 기술면에서 로봇 기술은 반도체,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신소재 등 전 요소 기술 분야에서 다른 피지컬 AI 제품을 선도하는 플래그십 기술이다. 로봇 산업 자체적으로도 대규모 미래 성장산업인 동시에 다른 산업의 경쟁력 및 생산성을 좌우하는 미래 제조 시스템의 핵심이다. 우리나라가 선도국의 조건인 제조 강국의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산업 규모, 제조 시스템, 기술 파급효과 등 여러 측면에서 피지컬 AI의 중심으로서 로봇 기술 개발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로봇 산업의 세계 시장 규모는 2025년 580억 달러(약 81조원) 수준에서 연평균 16~27%의 고성장을 거듭해 2035년에는 3500억 달러(약 490조원)를 상회하는 대규모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로봇 산업의 과거 성장이 늘 전망에 미달했던 것은 시장이 요구하는 로봇의 기능을 맞추면 가격이 너무 비싸지고, 가격을 맞추면 기능이 시장 기대에 못 미치는 딜레마가 주요 원인이었다. AI 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이 기능과 가격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로봇 산업의 본격적 성장이 시작될 전망이다.
 
최근 피지컬 AI의 총아로 부상하고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로봇 산업의 미래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는 미국과 중국이 단연 선두다. 미국은 테슬라의 옵티머스, 현대차 그룹이 대주주인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 피규어 AI의 피규어 02, 애질리티 로보틱스의 디지트 등을 선보이며 연구소를 벗어나 공장이나 서비스 현장에 투입되고 있거나 될 계획이다. 미국의 강점은 피지컬 AI 기술 기반의 고성능 최첨단 기술이다. 중국은 미국 대비 피지컬 AI 기술이 다소 열세이나 주요 부품 국산화 등 중국 특유의 로봇 생태계 구축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격 경쟁력과 빠른 상용화로 맹추격하고 있고 일부 분야에서는 앞서 가고 있다. 유니트리의 G1/R1, 유비텍의 워커, 샤오미의 사이버원 등이 출시되어 주목을 받고 있는데, 특히 유니트리의 G1은 2200만원, R1은 800만원 수준의 저가격을 제시하여 시장을 놀라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대차그룹이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와 함께 휴머노이드 로봇인 아틀라스의 자동차 공장 투입을 추진하고 있는 등 로봇 사업을 본격 가동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각각 로봇 벤처기업인 레인보우로보틱스와 베어로보틱스에 대한 전략적 투자로 최대 주주가 되면서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등 로봇 산업 육성을 위한 본격적 투자에 착수했다. 그러나 객관적 관점으로 볼 때 고성능·첨단기술의 미국과 가격 경쟁력의 중국 사이에 낀 ‘넛크래커’ 형국으로 미·중 기업과의 경쟁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가 전략 산업인 로봇 강국이 될 수 있는 전략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로 우리 강약점, 산업 특성을 고려하여 로봇의 목적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불리한 범용 로봇보다 특정 목적에 특화된 로봇에 집중하면 승산이 있다. 우선 범용에 가까운 서비스 로봇보다 제조업에 특화된 제조 로봇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제조 로봇은 가공, 조립, 검사, 물류 등 각 세부 분야의 작업 특성, 정밀도, 요구 사항 등이 다 달라서 범용 로봇을 적용하면 효과적이지 않다. 로봇 기술진만으로는 어렵고 적용할 세부 분야에 대한 데이터 및 도메인 지식·노하우를 가진 분야별 제조 기술진과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점이 다양한 제조업에 축적된 기술과 데이터를 보유한 우리나라에 기회가 있는 이유다.
 
휴머노이드 로봇도 같은 이치다. 범용은 성능으로는 미국에 뒤지고 가격으로는 중국에 뒤져 정면 대결은 녹록지 않다. 제조 특화 휴머노이드는 앞서 제시한 방향대로 로봇 기술진과 제조 기술진의 협업을 통해 최적화를 하면 승산이 있다. 제조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사람을 대체하기 위해 사람을 꼭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매달리면 많은 투자와 높은 가격이 불가피하다. 대신 제조 시스템을 로봇 친화적으로 재설계하면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하더라도 필요한 사양을 최적화하여 투자와 가격을 줄일 수 있다. 정밀도를 요구하는 제조 공정을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 손과 같은 정교한 로봇 손의 개발이나 이를 대치할 수 있는 핸들링 장치 개발, 휴머노이드 로봇 사용 시간을 늘릴 수 있는 배터리 개발이나 초저전력 피지컬 AI 반도체 개발 등 핵심 기술 개발에 집중하여 성공시키면 휴머노이드 로봇을 위시한 제조 로봇 시장의 선도국이 될 수 있다. 우리에겐 제조 로봇의 성공을 바탕으로 서비스 로봇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순리다.
 
둘째로, 세계의 지정학적 상황을 고려한 글로벌 협력이 필수적이다. 미국과의 협력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휴머노이드 제조 로봇의 학습을 위해 가상 환경의 시뮬레이션을 통한 데이터 생성, 모방학습 등 다양한 기법으로 부족한 제조 데이터를 보완하려 하나 도메인 노하우까지의 깊이 있는 데이터 확보는 쉽지 않다. 다양한 제조업 기반과 데이터 및 도메인 지식·노하우를 보유한 한국과의 협력은 미국에겐 신의 한 수다. 로봇은 데이터 주권과 직결되어 중국의 서방 시장 진출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과 한국이 상호보완적 파트너로서 윈윈할 수 있는 효과적 전략으로 적극 추진해야 한다. 중국과의 협력도 필요하다. 세계 최강의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의 로봇 부품 생태계와의 협력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어려울 경우 경쟁력 있는 새로운 글로벌 로봇 부품 생태계 구축을 위한 글로벌 협력에 나서야 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대한민국이 국가 전략 산업인 로봇 강국이 될 수 있다.
 
주영섭 필자 주요 이력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산업공학박사 △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사장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전 중소기업청장 △한국디지털혁신협회 회장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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