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교 칼럼] 왜 올해만 …수확기 쌀값 오름세 '속사정'

서진교 GSJ 인스티튜드 원장
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
 
시중의 쌀 소비자가격이 20㎏당 6만원을 넘어서자 쌀값 상승을 다루는 언론이 부쩍 늘었다. 대부분은 작년 이맘때와 비교해 최근의 쌀값이 과도하게 올랐다는 점과 쌀 생산 과잉으로 창고에 재고가 넘쳐나는데도 불구하고 시중에 쌀이 부족해 쌀값이 계속 오르는 현상을 정부의 쌀 수급 조절 실패 때문으로 설명하고 있다. 일견 수긍이 가지만 전체 농가의 약 40%가 쌀농사를 짓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가 오랫동안 시장개입을 지속해 왔기 때문에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사실 국내 쌀값이 결정되는 구조는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 수확기(10~12월)에 생산물량이 일시에 공급되는 반면 소비는 연중 큰 변화 없이 일정하다는 농산물로서 특성 외에 쌀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정치 재화이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시장 상황이라면 쌀값은 수확기에 가장 낮고 이듬해 수확기 직전인 단경기(7~9월)에 가장 높아야 한다. 왜냐하면 수확기에 농가에서 쌀을 매입한 유통업체는 이듬해 단경기까지 쌀을 보관해 놓았다가 매달 일정한 양을 소비자에게 판매하기 때문이다. 판매가는 농가에서 구입한 가격에 그때까지 보관 비용 및 일정 이윤이 포함되니 당연히 수확기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단경기 끝 무렵인 9월 쌀값은 보관료와 정상 이윤 등을 고려할 때 수확기 쌀값에 비해 약 10%는 비싼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나라 쌀값 흐름을 보면 이 같은 정상적인 상황과 거리가 멀다. 일례로 지난 5년간 쌀값 흐름을 보면 단경기 쌀값이 수확기 쌀값보다 오히려 낮은 경우가 세 번이나 있었다. 낮아도 10% 이상 낮았다. 단경기 가격이 수확기보다 높았던 두 번도 오름폭은 불과 3% 미만이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나라 쌀 유통은 RPC(미곡종합처리장)가 담당하는데 RPC가 지난 5년 동안 계속 대폭적인 적자에 시달렸다는 것을 말한다. 실제 RPC는 지난 10년간 234개에서 178개로 약 24% 줄었다. 특히 민간 RPC의 피해가 커 지난 10년간 적자에 시달리다 약 3분의 1이 문을 닫았다(83개에서 56개로 감소).

이러한 쌀값의 비정상적 상황이 계속된 데에는 과잉생산에도 불구하고 수확기 쌀값 하락 방지라는 정치적 고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 소비자야 그동안 쌀값이 크게 오르지 않았으니 별 관심이 없겠지만 그리고 쌀 농가도 수확기 쌀값만 높으면 그때 대부분 RPC에 팔아버리니 관심이 적겠지만 그러는 사이 우리나라 쌀 유통을 담당해 온 RPC는 고사되고 있었다. 그러다 올해 반짝 쌀값 상승으로 모처럼 RPC의 숨통이 트였다. 단경기인 7~9월 쌀값(소비자가격) 평균(9월은 중순까지만 고려)은 20㎏당 약 5만9800원으로 작년 수확기 5만3930원에 비해 약 11% 올랐다. 상승률이 10%를 넘었으니 정부가 쌀값 오름세를 더 이상 방치하기도 어려웠을 테지만 그동안 적자에 허덕이던 RPC도 올해만큼은 순이익을 보았을 것이다. 이것이 최근 쌀값 오름세의 속사정이다.
 
올해 쌀값은 왜 평소와 달리 작년 수확기 이후 계속 오름세가 지속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쌀이 정치 재화인 데다 생산량이 예상보다 줄었기 때문이다. 작년 쌀 생산량은 예상 소비량보다 작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큰 폭의 초과 생산도 아니었다. 그러나 수확기 쌀값은 정치적으로 여당이나 야당이나 모두 민감하다. 더구나 양곡법 개정안과 맞물려 정부도 수확기 쌀값 유지가 중요해졌다. 결국 정부가 필요 이상의 물량을 시장에서 격리하였고 여기에 11월 중순 발표한 최종 쌀 생산량이 고온으로 한 달 전 발표한 예상 생산량보다 7만톤 이상 줄었다. 그러자 산지 쌀값은 약세에서 반전돼 오름세로 돌아섰다. 올해 들어서도 산지 쌀값은 상승세가 이어졌고, 모처럼 수확기 가격 이상으로 산지 가격이 오르자 일부 RPC가 시중 유통물량을 줄이면서 가격 오름세를 키웠다.
 
여기에 햇반과 도시락, 떡 등 가공용 쌀 수요 증가도 쌀값 상승을 부채질하였다. 통상 가공용에 필요한 쌀은 정부가 약 반 정도는 저렴하게 제공하고 나머지는 가공업체가 시중의 쌀을 구매하여 충당한다. 정부는 올해부터 쌀 가공업체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그동안 가공업체에 공급해 온 쌀을 약 2만톤 줄였다. 이에 따라 쌀가공업체들이 시중 쌀 구매에 나서면서 가격 상승에 일조했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실기도 가격 오름세가 지속된 이유 중 하나다. 쌀값 오름세가 가팔라진 6월부터 정부 개입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대선 이후 새 정부 초기에 과연 누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쌀값 오름세를 반전시킬 정부 비축 물량의 방출을 쉽게 결정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면서 시간은 흘렀고 8월 들어서야 3만톤을 대여방식(나중에 다시 갚아야 한다)으로 방출했지만 대여방식 3만톤으로 쌀값 오름세를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제 조생종 쌀이 나오고 본격 수확기가 시작되니 정부의 추가 방출로 쌀값 하락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행히 아직은 올해 쌀 작황이 좋을 것으로 예상되어 쌀값 상승세는 10월부터 점차 꺾일 것으로 보인다. 수십 년 계속되어 온 정부의 시장개입으로 쌀 시장이 왜곡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그러니 쌀에서 정치색을 빼며 정부 개입을 줄이는 대개혁을 통해 쌀 시장을 정상화하려면 정치권은 물론 정부와 농업인 모두의 오랜 기간에 걸친 각고의 노력이 요구된다. 물론 어렵다. 그래도 반드시 해야 한다.
 
서진교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농업경제학과 △미국 메릴랜드대 자원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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