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형 인공지능(K-AI)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정작 데이터 정책은 실종 상태라는 지적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데이터 없이는 AI도 없다”며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국가 차원의 체계 정비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10일 서울 종로구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개인정보전문가협회(KAPP)와 법무법인 태평양 공동 주최로 열린 세미나 ‘AI G3 시대, 안전한 데이터 활용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에는 정부, 산업계, 학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개회사를 맡은 최장혁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부위원장은 “AI 시대의 개인정보 보호는 혁신을 막는 장벽이 아니라 신뢰받는 생태계를 만드는 기반”이라고 강조했다. 조경식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前 과기정통부 차관)은 환영사에서 “양질의 데이터는 AI 발전의 원재료로, 이를 확보하지 못하면 세계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경진 개인정보전문가협회 회장, 김직동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과장, 이소라 과기정통부 과장, 김병필·신진우 KAIST 교수,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 신수용 카카오헬스케어 연구소장 등도 토론자로 참석해 "AI 경쟁력 확보와 개인정보 보호라는 두 가치가 더이상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하는 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AI 전략을 비교하며 한국의 취약성을 지적했다. “미국은 오픈AI, 엔비디아 등 민간 스타트업과 빅테크가 막대한 투자를 통해 생태계를 키우고 있고, 중국은 국가가 데이터 개방을 통해 기업을 육성한다”며 “한국은 대기업·정부 중심 구조에 가까워졌지만 원천 데이터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아 절름발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 데이터 정책의 한계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정부 사업은 특정 기업 요구에 맞춘 가공 데이터만 만들 뿐 원재료 데이터는 공개하지 않는다. 그러면 다른 기업들은 활용할 수 없게 된다”며 “데이터가 파라면 국밥에 쓰든 파전에 쓰든 기업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원본 데이터를 열어주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국내 기업조차 자신들이 쓰는 데이터가 저작권·합법성을 완전히 충족한다고 답하기 어렵다. 스타트업은 저작권 불안 때문에 아예 시도하지 못하고, 대기업은 편법을 쓰는 유혹에 놓인다”며 “정책 공백이 지속되면 시장의 불신과 불투명한 활용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데이터 없는 K-AI는 공허한 구호일 뿐”이라며 “소버린 AI, 즉 주권형 AI를 위해 정부가 데이터 정책을 전면에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수화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최근 변화하는 개인정보보호 법제를 중심으로 AI 활용 방향을 짚었다. 그는 “AI 발전의 원동력은 결국 데이터지만, 기존 법체계는 지나치게 경직돼 있어 혁신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며 “이 때문에 최근 국회와 정부는 규제 완화 흐름을 본격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발의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다. 이 변호사는 “개정안에는 ‘AI 특례 조항’이 포함돼 있다”며 “가명·익명 처리 과정에서 데이터 가치가 떨어지는 문제를 보완해,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수집 목적을 넘어 AI 개발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 조항이 시행되면 기업들이 새로운 AI 모델을 개발할 때마다 별도의 동의를 다시 받지 않아도 되는 길이 열리게 된다”며 “규제 문턱은 낮아지지만, 그만큼 개인정보 침해 우려도 커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또 “앞으로 법제의 핵심은 혁신과 안전의 균형”이라며 “무조건적인 규제 완화가 아니라, 데이터 처리방침 공개·삭제 요구권 보장·비식별화 조치 같은 기본적인 안전장치를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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