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0%대 성장의 덫
역사는 반복된다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쟁'은 중상주의 시대 상품교역에 쓰였던 유물이다. 그래서 세계화와 AI시대의 '관세 전쟁'은 단순한 희극이 아닌 비극의 서막일지도 모른다. 18세기 중상주의 시대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는 관세를 무기로 동맹국에게만 투자를 강요하고, 자산 약탈에 나서는 야만적인 행위다.
'미국 우선주의'의 기치 아래, 트럼프는 우방에게는 호랑이처럼 대하고, 강대국인 중국과 러시아 앞에서는 고양이처럼 꼬리를 내린다.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푸틴에게 주도권을 넘기고, 중국에는 희토류와 펜타닐 문제에 발목 잡혀 관세 협상에서 질질 끌려 다니는 모양새다. 이런 냉혹한 국제 정글에서 약소국인 한국이 살아남을 길은 냉철한 현실 인식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값비싼 인건비와 부족한 노동력, 이민을 막는 정책 속에서 '메이드 인 USA'의 부활은 허상에 불과하고 전통제조업을 다시 일으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공장은 시장 가까이에 짓는 것이지, 보조금과 협박으로 짓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현재 한국은 0%대 성장률에 갇혀 있다.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하락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5%의 관세율은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11% 선)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단순히 비용 절감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도 한국 정치와 경제는 여전히 과거의 논리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외교 문제가 터지면 대기업을 '들러리' 세워 생색내기에 그치고, 기업이 스스로 국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다크 팩토리와 007 시스템
우리가 0%대 성장의 늪에 빠져 있을 때, 세계 경제의 거대한 두 축인 미국과 중국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AI를 '딥시크'로 뒤통수 친 중국은 이제 'AI+' 전략을 전면에 내세우며 로봇과 AI를 산업과 접목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은 이미 로봇이 춤을 추는 수준을 넘어 양로원, 식당, 약국, 공장에서 인간을 대체하고 있다. 샤오미와 라온반전기 등은 다크 팩토리(Dark Factory), '불 꺼진 공장'을 현실화하며, 인간의 노동이 필요 없는 '007 시스템'(7일 24시간 운영)을 가동하고 있다.
30%의 관세 부과에도 흔들리지 않는 중국의 비밀 병기는 바로 이 'AI+' 전략에 있다. 사람에 의존하는 제조업 시대의 노동 논리에 갇힌 한국과 달리, 중국은 로봇과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중국은 정부와 학교, 금융기관이 한마음으로 기업의 혁신을 지원한다. 중국에서는 시장과 함께 변화하는 혁신, 정보에서 실험으로, 그리고 산업의 경험으로 이어지는 비즈니스 모델이 완성되어 가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실험이나 실수가 아닌, 실력으로 증명되고 있다. 우리가 '주 4.5일 근무'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사이, 중국의 다크 팩토리는 24시간 불철주야로 가동되고 있다. '대륙의 실력'을 과소평가하면 중국과의 격차가 더 벌어질 일만 남는다.
한국 '그로스업(Growth up)'의 전략으로 가는 길은?
정치와 국가 운영의 성적은 여론조사가 아닌 '돈'이 말해준다. 0%대 성장률, 기업 이익률 하락, 중국에 추월당하는 기술력은 돈이 한국을 떠나게 하는 명확한 신호다. '밸류업'이나 자본시장법 개정만으로는 시장의 신뢰를 되찾을 수 없다. 한국 경제가 살 길은 바로 '그로스업(Growth up)', 즉 폭발적인 성장 잠재력을 보여주는 데 있다. 세계 평균에도 못 미치는 0%대 성장률로는 투자자들이 매력을 느낄 수 없다.
이제 한국은 획기적인 변혁과 혁신 없이는 0% 성장, 15% 관세, 4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라는 허들을 넘을 수 없다. 새로운 정부와 조직이 들어섰지만, 0% 성장을 초래한 기존의 정치와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파격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AI 시대, 한국의 산업 정책은 중국의 'AI+' 전략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돈 먹는 하마를 돈 버는 하마로 만드는 것은 단순한 AI가 아니라 산업과 연결된 AI, 즉'AI+'다. AI 기술을 산업 경쟁력으로 연결하지 못하면 '소버린 AI', 'AI 100조 투자'와 같은 정책은 장밋빛 그림으로 끝날 수도 있다. 혼종(하이브리드)과 융합이 살길이다. 산업과 연결된 AI가 진정한 AI다. 트럼프의 15% 관세 공격도 “AI+”앞에서 무력해질 수 있다
한국은 0%대 성장을 초래한 기존 시스템을 해체하고, AI를 국가 성장의 핵심 엔진으로 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과거 경제개발 시대의 '경제기획원'처럼, AI 기술을 활용해 산업 구조를 혁신하고, 기업 경쟁력을 강화할 'AI 특임장관'직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이 장관은 기존 부처의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AI를 산업, 통상, 외교, 교육 등 국가 정책 전반에 적용하는 총괄적인 권한을 가져야 한다.
또한, '전 국민 AI러닝 로드맵'을 구축하여 AI 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대학 교육에 AI 과목을 추가하는 것을 넘어, 초등학교부터 성인 재교육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이 AI의 기본 원리와 활용법을 익히도록 하는 범국가적 프로젝트다. 국민 모두가 AI를 도구로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는 능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AI+ 산업 실험 특구'를 지정하여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 기존의 복잡한 규제에 갇힌 한국 기업들이 중국의 다크 팩토리처럼 혁신적인 실험을 할 수 있도록, 특정 지역에서는 로봇과 AI가 자유롭게 산업 현장에 투입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테스트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결국 성공은 실행으로 완성된다. 조직이 바뀌어야 전략이 산다. 우리는 과거의 논리에 갇혀 중국의 무서운 변화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로봇이 일하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의 경쟁자, 중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 산업과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만 미-중 경제 전쟁과 관세폭탄의 파고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전병서 필자 주요 이력
▷칭화대 석사·푸단대 박사 ▷대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반도체IT 애널리스트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겸임교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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