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닷컴버블 기억을 다시 꺼내는 이유

닷컴버블과 AI AI활용사진
닷컴버블과 AI. AI활용사진


2000년대 초 미국 증시는 하루가 다르게 요동쳤다. 전날만 해도 최고가를 경신하던 인터넷 기업들이 다음 날이면 끝 모를 추락을 거듭했다. ‘닷컴’이라는 이름 석 자만 붙어도 금빛 미래가 보장되는 듯했지만, 불과 몇 달 만에 기업가치는 종잇장처럼 증발했다. 인터넷 기술은 남았지만, 거품이 걷히자 시장은 폐허처럼 변했고 세계 경제 전체가 충격을 받았다.

25년이 지난 지금, 그 기억을 다시 꺼내는 이유는 단순하다. 인공지능(AI)을 둘러싼 분위기가 당시와 너무나 닮아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AI를 도입하고, 개인의 일상 활용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번역·검색·의료 진단·신약 개발 등에서 이미 성과가 나오니 기대가 커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닷컴버블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시에도 IT 산업은 성장하고 있었다. 문제는 산업 성장보다 앞질러 버린 기대였다. 투자자들은 미래 수익을 과도하게 당겨와 현재 가치로 계산했고, 그 결과 거품이 쌓였다. 시장은 붕괴했고 수많은 기업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오늘날 AI도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안고 있다. 챗GPT의 아버지라 불리는 샘 올트먼조차 “AI에도 거품이 존재한다”고 공개 경고했다.

정부도 AI를 차세대 성장 전략의 핵심으로 내세우며 대규모 투자를 쏟아내고 있다. 행정, 금융, 국방,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방안이 발표된다. 하지만 ‘AI=성장’이라는 도식은 위험하다. 경제는 특정 기술 하나로 움직이지 않는다. 산업과 사회의 기반이 함께 발전할 때만 기술이 힘을 발한다. 맹신은 오히려 성장을 가로막는다.


이 지점에서 최근 국내 산업 현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석유화학 업계는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있다. 한때 한국 수출의 중추였지만, 세계 경기 둔화와 친환경 전환의 파고 앞에 흔들리고 있다. 화려한 AI 담론만으로는 이 위기를 해소할 수 없다. 미국이 조선업 재건에 나선 것도 같은 이유다. 첨단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조선·에너지·물류 같은 실물 산업이 무너지면 경제와 안보는 동시에 취약해진다. AI와 전통 산업은 대립하는 선택지가 아니라, 반드시 함께 가야 하는 쌍둥이 축이다.

한국 경제는 결과적으로 균형 위에서 성장해왔다. 1960~70년대 제조업이 토대를 닦았고, 이후 금융·유통·문화 산업이 이를 확장하며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특정 산업만으로 성장은 지속되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이차전지, 조선 같은 주력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입지를 잃는다면, AI가 아무리 성장해도 경제 전체를 떠받칠 수 없다. AI를 성장의 동력으로 삼되, 전통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새로운 서비스업 육성이 병행돼야 한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다. 기반 없는 도구는 결국 빛을 잃는다.

AI는 새로운 기회를 열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만능의 엔진은 아니다. 과열된 낙관은 실물 기반의 취약성을 가릴 위험이 크다. 정부와 기업은 AI라는 ‘빛’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그 빛이 비추는 토양을 단단히 가꿔야 한다. 산업 기반이 흔들리면 기술 혁신의 성과도 공허해진다.

25년 전 닷컴버블이 남긴 교훈은 단순하다. 산업 성장속도를 앞지른 기대는 큰 후유증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지금의 AI 열풍 역시 같은 시험대에 서 있다. 기대가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지는 결국 우리가 산업의 토대를 얼마나 단단히 다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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