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AI는 빠른 변화를 더욱 휘몰아치고 있다. AI는 지식 노동의 경계를 허물고, 정보를 축적하고 활용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그 속에서 묻게 된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인간은 이렇게 빠른 문명의 변화 속에서 어떤 존재로 남을 수 있을까.
AI의 발전으로 경제·산업 활동에서의 생산성은 대폭 향상되고 있다. 콘텐츠 제작, 번역, 회계, 고객상담 등 많은 영역에서 이미 인간을 대체하거나 보조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소득이 증가하고 효율성이 개선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AI의 도입으로 노동력이 보완되고 생산성이 증대되면서 GDP가 13%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전망되었다. 국가 차원의 경쟁력뿐 아니라 개인과 기업의 역량도 AI를 얼마나 더 잘 활용하는가에 따라 더 차이가 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이런 개선과 향상 너머에 우리는 어떤 사회를 상상할 수 있을까.
여기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우리는 지금 두 가지 대전환을 동시에 겪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는 AI가 이끄는 기술혁명, 다른 하나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라는 구조적 변화다. 후자의 흐름은 점점 더 많은 고령자들이 은퇴 후에도 비어있는 일자리를 메꾸기 위해 일터에 남아야 하는 사회를 만들고 있다. 즉, AI가 발전하여 자동화와 디지털 기술이 노동을 대체하고 이제는 일하지 않아도 될 줄 알았건만 실상은 그럴 수가 없는 ‘은퇴 없는 삶’이 아이러니한 현실에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고령자가 노동시장에 잔류해야 한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교육의 방향, 직업의 의미, 은퇴의 정의 자체가 변해야 함을 의미한다. 더 오래 일해야 한다는 것은 더 오래, 새로운 것을 배우고, 더 유연한 경로를 따라 경력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AI는 이러한 변화의 조력자이자 시험대이다.
이 상황에서 인간에 대한 질문을 던져 본다. 과연 인간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AI가 ‘일’을 대신해 주는 시대에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인간이 행복을 느끼고 존재감을 찾을 수 있었던 행의, 즉 삶의 깊이와 질을 결정짓는 활동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AI는 많은 것을 ‘대신’ 해준다. 글을 쓰고, 요약하고, 코딩하고, 디자인까지 한다. 하지만 ‘몰입(沒入)’이라는 주제 앞에서 AI는 오히려 인간에게 거울을 들이민다. 과연 우리는 AI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몰입에 빠질 수 있을까. AI가 대부분의 생각하는 과정을 자동화해주고 해결을 찾아줄 때, 우리는 여전히 ‘생각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까? 문제 해결의 쾌감, 지식 탐구의 희열, 의미있는 창작의 기쁨은 여전히 인간에게 남아 있는 영역일까?
몰입은 인간 존재의 핵심이다. 몰입하고 있을 때 우리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아이가 그림을 그리며, 학생이 수학 문제를 풀며, 작가가 문장을 다듬으며 빠져드는 그 시간은 인류가 기계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AI가 제안한 답변을 복사하고 붙여넣으며, 본인만의 생각을 생략하는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지적 여정이 AI의 효율성에 의해 잠식될 위험에 처했다.
이러한 위기감과 함께 몰입의 정반대 쪽에 있는 쉼과 여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많은 것들이 자동화되고 빨라지는 시대일수록 ‘멈추는 시간’이 더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리라. 과거에는 생산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 시간을 비효율적이라고 여겨졌지만, 이제는 이러한 비생산적인 시간이 오히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바쁜 디지털 일상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시간, 산책하며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 비로소 사유하는 그 순간들이야말로 AI가 결코 흉내 낼 수 있는 인간만의 본질적 영역이다.
더 나아가 ‘의미 있는 일’에 대한 욕구도 강해질 것이다. 단순한 노동의 반복이 아니라, 자기주도적으로 가치를 창출하고 몰입할 수 있는 일이 인간에게 남은 영토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러한 영역이 교육, 제도, 기업의 구조 속에서 충분히 보장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늙어갈수록 여전히 계속 일해야만 하지만, 그 일이 과연 존엄과 몰입을 허락하는 일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는 기술의 발전 속에서도 사람들의 일과 삶이 인간다운 면모를 잃지 않도록 설계해야 할 것이다.
기술은 도구이자 수단이다. 인간을 대신하는 시대가 아니라, 인간의 가능성을 풍요롭게 확장하는 시대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한 사회적 상상력과 제도적 실행력도 함께 갖춰야 한다.
홍준표 수석연구위원 주요 이력
▷서울대 농경제학과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 농경제학 박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현대경제연구원 산업연구실 신성장전략팀장 ▷고용노동부 고령화정책TF ▷한국장학재단 리스크관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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