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지만 산업 기반과 기술 역량 측면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세계에서 10MW(메가와트) 이상급 대형 해상풍력터빈을 자체 설계·개발한 국가는 덴마크, 독일, 미국, 중국, 그리고 한국뿐이다. 특히 두 곳의 국내 기업이 각각 기어리스(Gearless) 방식의 대형 해상풍력터빈을 개발해 상용화 가능 단계에 도달했다. 이는 단순 조립이나 면허생산이 아닌, 고도의 설계력과 시스템 통합 역량을 갖춘 산업 기술의 성과다.
지금 세계는 인공지능, 반도체, 이차전지 등 미래 전략산업 육성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기존 주력산업의 강점을 활용한다면, 해상풍력도 단순한 에너지 사업을 넘어 국가 전략산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냉철한 시장분석을 통한 글로벌 공급망 전략이다. 풍력산업의 글로벌 밸류체인은 이미 성숙기에 접어들었고 국가별로 경쟁력이 확립된 분야가 있다. 예컨대 단순 주물품이나 철구조물 제작은 기술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경제성으로 인해 중국 등으로 아웃소싱이 일반화된 영역이다. 이런 분야까지 무리하게 국산화를 추진하면 산업의 미래지향성이 약화될 수 있다.
해상풍력 산업은 선진국형, 미래지향적 전략으로 가야 한다. 설계, 시스템 통합, 제어기술, 유지보수(O&M)와 같은 고도의 기술력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경쟁력을 키우고, 이를 통해 고소득·고숙련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이러한 요구에 가장 가까운 해답은 국산 터빈 기술과 산업의 육성이다. 터빈은 다양한 신기술의 집약체이자 수천 개의 부품과 공급망을 아우르는 산업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첫째 '기술개발 → 실증 → 상용화 → 수출'로 이어지는 일관된 국산 터빈 육성 로드맵이 필요하다. 단순 R&D 지원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용화를 통한 중장기 성장 전략과 이를 뒷받침할 금융 지원 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 필요하면 해상풍력에너지 공기업을 신설 출범시켜 강력한 추진동력을 갖출 수도 있다.
둘째 공공주도형 해상풍력 프로젝트에서 국산 터빈을 전략적으로 채택해 초기 수요를 창출하고 트랙레코드를 확보할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실적 부족을 이유로 국산 제품이 금융조달 단계에서 배제되는 현실은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정부가 일정 부분 리스크를 분담하고 국산 제품의 상용화를 촉진하는 적극적인 정책적 개입이 요구된다.
셋째 생존의 기로에 선 국산 터빈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해상풍력 실증단지를 조속히 지정해야 한다. 해상풍력특별법 제37조에 따른 법적 근거는 이미 마련되어 있다. 아직 시행령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미룰 것이 아니라, 법 취지에 따라 시행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지금이 바로 국산 해상풍력 산업의 골든타임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우리는 또다시 글로벌 시장의 변방에 머물 수밖에 없다. 정부와 공공이 먼저 길을 열고 민간이 그 길을 확장할 때 한국형 해상풍력은 비로소 미래 전략산업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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