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그린바이오 유전자가위 가축의 가능성

  • 생명공학이 바꾸는 축산의 미래

 
류재규
류재규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동물바이오유전체과 과장
21세기 축산업은 기후변화, 가축 전염병의 확산, 항생제 내성 증가 등 전례 없는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동시에 지속가능한 식량 안보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고조되면서, 기존의 대응 방식만으로는 한계에 봉착한 상황이다. 이러한 난제 속에서 주목받는 기술적 해법이 바로 유전자가위(편집) 기술이다. 특히,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저항성을 유전자 수준에서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은 축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기존에는 감염된 개체를 치료하거나, 백신접종으로 질병을 예방고 발생 시 격리 및 이동 제한 등 외부적 방역조치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CRISPR-Cas9' 기반의 유전자가위 기술은 병원체 자체가 가축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유전자 진입장벽'을 만드는 방식이다. 이 기술은 단순한 질병 예방을 넘어 폐사율 저하, 항생제 사용 감소, 생산성 향상, 동물복지 개선 등 다중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에서 개발한 PRRS(돼지생식기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가 감염되지 않는 돼지다. PRRS 바이러스는 침투할 때 'CD163' 유전자를 이용한다. 미주리대학교와 글로벌 육종기업 제너스는 'CD163' 유전자의 특정 부위를 정밀하게 제거한 돼지를 개발했다. 이 돼지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안전성 평가를 통과하고 올해 식용 승인을 받았다. 이는 유전자 편집 가축이 실제로 식탁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증명한 상징적 사건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성공이 아닌, 사회적·제도적 수용력까지 뒷받침된 국가 차원의 성과다. 미국, 일본, 아르헨티나 등 주요국들은 이미 유전자가위 기술을 적용한 동물의 상업화를 본격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논의에 머무르기보다는, 이미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신속한 실증 연구 체계 확립을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세계적 흐름에 발맞춰 실행에 나선다면, 대한민국은 유전자가위 가축 분야에서 후발주자가 아닌 '전략적 추격자'로 도약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유전자가위 기술 기반 동물의 정의와 분류 기준을 명확히 하고, 실험 및 사육 단계별 위해성 평가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정보 제공과 기술 수용성 조사, 사육 가이드라인 및 제도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준비는 기술 안전성과 국민 신뢰를 동시에 확보하는 기본 조건이다.
 
우리나라는 유전자가위 기술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연구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가축 유전체 해독, 체세포 복제 등 기반 기술은 이미 구축되어 있으며, 다수의 전문 연구 인력이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립축산과학원을 중심으로 유전자가위 기반 질병 저항성 가축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하여, PRRS와 같은 가축 질병에 대한 저항성 유전자를 탐색하고, 세포 및 배아 수준의 정밀 편집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유전자가위 기술은 단순한 생물학적 기술이 아니다. 이는 질병 저항, 생산성 향상, 항생제 사용 감소, 동물복지 개선이라는 축산업의 핵심 목표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법일 수 있다. 이미 세계는 기술을 넘어 제도, 소비자 인식, 산업화를 통합적으로 준비하며 미래를 선점하고 있다. 지금이 바로 전환의 시점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