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세 시대가 당연해진 2025년, 퇴직연금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개인형퇴직연금(IRP)은 사회 초년생에게 연 13.2~16.5% 수준의 세액공제 혜택이 주어지는 흔치 않은 재테크 수단이다. 장기적으로는 복리 효과와 은퇴 후 3.3~5.5%의 저율 과세 혜택까지 기대할 수 있는 든든한 자산 관리 도구다.
요즘 을지로 전광판을 지나가다 보면 ‘퇴직연금, 지금은 운용의 시대’라는 문구가 낯설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금융사들도 앞다퉈 퇴직연금 광고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바로 지금이 ‘퇴직연금 관리의 전환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직장인들이 퇴직연금을 정기예금으로 넣어두거나 어떻게 운용되는지 모른다. 문제는 이들이 결코 자산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데 있다. 평소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에 관심이 많아도 퇴직연금 앞에서는 ‘정기예금 자동 연장 모드’에 머무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안정성도 중요하지만 퇴직연금이 장기 상품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하루하루의 무관심이 모여 수십 년 뒤 내 노후 자산의 원금을 결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IRP는 10년, 20년, 어쩌면 30년 이상 함께 가야 하는 자산이다. 그런 긴 시간을 오로지 정기예금에만 의존한다면 은퇴 후 실질적인 노후 생활비를 충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특히 지금처럼 기대수명이 늘고 인플레이션이 이어지는 시기에는 ‘안전하게만 굴리자’는 전략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정부도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퇴직연금 제도를 손질해 왔다. 대표적인 변화가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다. 예전에는 만기가 도래한 예금이 자동으로 재예치돼 사실상 방치되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투자자 본인이 사전에 설정한 포트폴리오로 자동 운용된다. 이 포트폴리오는 고용노동부 승인을 받은 상품으로, 투자 성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고 필요하면 언제든 변경할 수도 있다.
디폴트옵션은 금융지식이 부족하거나 비대면에 익숙한 가입자에게 최소한의 수익률 방어장치를 제공한다. 제도가 국민의 노후를 ‘대충 넘어가지 않도록’ 한 단계 진화한 셈이다.
이제 IRP는 ‘정기예금 통장’이 아닌 나만의 ‘개인연금 자산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투자 기간이 길고 비대면에 익숙한 만큼 더 많은 선택지가 열려 있다. 주식형 펀드, ETF, 타깃데이트펀드(TDF) 등을 활용한 분산투자는 IRP 수익률을 높이는 핵심 전략이 될 수 있다.
IRP는 절세 혜택까지 갖춘 드문 금융상품이다. 연 900만원까지 세액공제가 가능하며, 중도해지 없이 유지하면 운용 수익에 대한 과세도 이연된다. 수익과 절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물론 리스크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 리스크는 무지와 무관심이 키우는 것이다. 관심과 이해, 그리고 약간의 시간만 투자하면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리스크다.
혹시 스스로 결정하기가 어렵다면 은행 창구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각 금융기관에는 연금 전문 인력이 배치돼 있고, 요즘은 비대면 상담이나 챗봇 서비스도 매우 잘 갖춰져 있다. IRP에 대해 궁금한 점이 생겼다면 근처 영업점을 방문하는 것이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
노후는 저절로 준비되지 않는다. IRP는 내 미래를 위한 투자, 그 출발점이자 설계도다. 너무 조심스러워하기보단 한 발 먼저 움직이길 권한다.
위스키는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깊어지지만 아무 술통이나 오랜 시간 둔다고 명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온도, 습도, 빛의 차단까지 섬세하게 관리된 숙성이 있어야 비로소 ‘좋은 위스키’가 탄생하듯, 퇴직연금이라는 위스키도 꾸준한 관심과 관리를 통해 깊은 풍미를 지닌 자산으로 돌아올 것이다.
미래의 나를 위해 오늘부터 숙성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