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영상톡]"노동자들의 퇴근 장면만 모은 이유" 하룬 파로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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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성 기자
입력 2018-11-0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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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회고전

  • -10월 27일부터 2019년 4월 7일까지

  •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 "하룬 파로키와 같은 눈과 손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

프랑스 리옹에 있는 르미에르 공장의 정문이 열리자 일이 마친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공장을 빠져나간다. 1895년 르미에르(lemiere) 형제가 세계 처음으로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하룬 파로키(Harun Farocki,1944~2014)는 노동자들이 마치 물밀 듯이 나오는 것을 찍은 이 장면을 모티브로 해서 공장에서 퇴근하는 노동자의 모습이 담긴 영화 영상을 골라 작품으로 만들었다. 그 작품에는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1936) 한 장면도 있고, 미국 영화의 거장 D.W.그리피스의 '인톨러런스'(1916) 장면도 포함됐다. 하룬 파로키는 퇴근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하룬 파로키의 '110년 간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중의 영화 '리옹의 뤼미에르 공장 문을 나서는 노동자들' 한 장면]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관에서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전시를 10월 27일부터 내년 4월 7일까지 MMCA 서울 6, 7전시실, 미디어랩에서 개최한다.

1944년 인도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하룬 파로키는 인도, 인도네시아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독일 베를린으로 와서 교육을 받고 자란 독일 작가이다. 그는 베를린영화아케데미 1기로 입학했지만, 정치적인 활동 이유로 졸업하지는 못했다. 그는 우리가 사는 시대의 삶의 조건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영상 속에 숨어있는 참모습을 밝혀내면서 우리가 어떻게 잘 못 세뇌당하고 있는지 등을 알려주기 위한 작품을 만들었다.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전시 설명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지난달 25일 기자간담회에서 "하룬 파로키는 노동, 전쟁, 테크놀러지의 이면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세계를 지배하는 이미지의 작용방식과 함께 미디어와 산업기술이 인간에게 미치는 폭력성을 끊임없이 비판해왔다" 며 "그는 미술과 예술, 그리고 영화를 연결하는 아주 중요한 작가 중의 한 명이다"이라고 입을 열었다.

마리 관장은 이어 "하룬 파로키는 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현상들의 배후를 치밀하게 조사하고 현 세계를 지배하는 힘에 편승한 이미지의 실체를 추적하면서 영화를 포함한 현대예술이 반이성의 시대의 이성을 회복하는 역할을 하기를 희망했다"고 역설했다.

관객들은 하룬 파로키의 작품을 통해 우리 주변의 것들에 감춰진 진실한 면모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마리 관장은 끝으로 "하룬 파로키의 작품 세계는 대상을 인식하는 것을 넘어 제대로 아는 것, 또 세계가 어떻게 변모하고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에 있다" 며 "하룬 파로키와 같은 눈과 손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가 바로 지금인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전시 기획을 맡은 김은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왼쪽 첫 번째)와 안체 에마 작가(가운데)가 전시를 설명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김은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와 작품 '노동의 싱글 숏'을 하룬 파로키와 함께 제작했던 안체 에만 작가가 공동으로 기획했다.

안체 에마 작가는 "지난 15년간 하룬 파로키의 작업이 아시아 여러 곳에서 보였는데 서울에서 개막하는 정도의 규모는 처음이다" 며 "이번 전시의 공동 큐레이터이기도 하지만 작가 커플로서 하룬 파로키와 같이 작업하고 생활하기도 했다. '노동의 싱글 숏' 이라는 작품은 하루 파로키와 제가 함께 진행했던 작업이고 지금도 계속 진행하고 있는 작업이다"고 소감을 전했다.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영문: What Ought to Be Done? Work and Life)라는 전시 제목은 하루 파로키의 영화에 대한 교육적인 접근을 반영한다.

[김은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전시를 설명하고 있다.]


김은희 학예사는 "하룬 파로키 감독은 우리가 사는 삶이 무엇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지배당하고 있는지에 대한 젊었을 때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돌아가셨을 때까지 굉장히 집요하게 조사하고 분석했다" 며 "그런 그의 작업의 측면과 맞는 거 같아서 제목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하룬 파로키의 작품 9편이 공개된다. 그중에 4편으로 구성된 시리즈가 포함돼 있어 실제적으로는 6개 작품이다.

16분 길이 2채널 비디오인 '평행 I ~ IV'(2012~2014) 시리즈 작품, 23분 길이 2채널 비디오인 '인터페이스'(1995), 36분 길이 12채널 비디오인 '110년 간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2006), 24분 길이 2채널 비디오인 '비교'(2009), 아직도 계속 제작하고 있는 16채널 비디오인 '노동의 싱글 숏'(2011~2017), 마지막으로 12채널 비디오인 '리메이크-공장을 나서는 사람들'(2012~2017) 등이다.

아울러 하룬 파로키는 생전에 작품 외에 100여 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있는 필름앤비디오 영화관에서 11월 14일부터 내년 2월 24일까지 그의 대표작 48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노동의 싱글 숏' 중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영상]


▶노동의 싱글 숏(2011~2017), 16채널 비디오

전시장에 들어서면 16개의 대형 모니터가 천장에 매달려 있고, 그 앞에는 지향성 스피커를 설치해 해당 작품 아래에 서면 음향을 더 잘 들을 수 있게 했다.
16개의 모니터에는 16개 도시에서 촬영한 노동하는 모습들이 담겼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소규모 공장에서 일화는 노동자의 모습이 보이고, 멕시코시티에서는 수산물 시장에서 생선을 손질하는 주방장의 모습을 영상에 담겼다.
벵갈루루의 노동자는 물류 창고를 정리하는 가하면 우치에 있는 치과에서는 환자가 충치 치료를 받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노동의 싱글 숏' 중의 벵갈루루 영상]


'노동의 싱글 숏'에서 싱글 숏은 영화에서 한 번의 컷으로만 촬영하는 원테이크를 의미한다.
하룬 파로키와 안체 에만의 공동 작품이지만, 2014년 하루 파로키 사후에는 안체 에만이 도시를 추가하면서 작품을 이어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하룬 파로키의 '110년 간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110년 간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2006), 12채널 비디오

전시장 벽 면 앞에는 12개의 빈티지 CRT모니터가 일렬로 늘어서 있고, 모니터마다 공장에서 퇴근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담은 영화의 한 장면이 상영되고 있다.
첫 번째 모니터에서는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인 르미에르(lemiere) 형제의 '리옹의 뤼미에르 공장 문을 나서는 노동자들'(1895)의 한 장면이 보이고 뒤를 이어 가브리엘 베이르 '하노이의 메프르와 부르고앙 벽돌공장을 나서는 사람들'(1899), 작가 미상 모스크바 국립 영화 아카이브 소장 작품, D.W.그리피스의 '인톨러런스'(1916), 프리즈 랑의 '메트로폴리스'(1926),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1936), 즐라탄 두도우의 '여성의 운명'(1952),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붉은 사막'(1964), 자크 빌르몽의 '원더공장에서의 조업재개'(1968), 장 마리 스트라우브와 다니에 위예의 '너무 이른, 너무 늦은'(1981), 엘코스타의 'Durchfahrtssperre DSP'(1987), 라스 폰 트리의 '어둠 속의 댄서'(2000) 등이 모니터를 장식하고 있다.

하룬 파로키는 공장문으로 대변되는 경계면을 지날 때 노동자들이 조직의 구성원에서 개개인으로 변해 뿔뿔이 흩어지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형태를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하룬 파로키의 '리메이크-공장을 나서는 사람들']


▶리메이크-공장을 나서는 사람들(2012~2017), 12채널 비디오
7전시실 복도에 LCD모니터 12대가 설치돼 있다. 1895년 르이메르 형제가 처음으로 찍었던 영화 '리옹의 리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의 장면을 모티브로 해서 '노동의 싱글 숏'처럼 세계 곳곳의 도시의 사람들이 퇴근하는 모습을 원테이크로 촬영한 작품이다.
현재 이 작품은 17개 도시까지 만들어졌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12개 도시의 영상들을 전시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하룬 파로키의 '인터페이스']


▶인터페이스(1995), 2채널 비디오

'인터페이스'는 하룬 파로키 감독이 처음으로 전시용으로 만든 작품이다. 전시장에는 2대의 빈티지 CRT모니터에 담아 전시됐다.
하룬 파로키는 자신의 다큐멘터리 영화인 '혁명의 비디오그램'을 영화 편집과 비디오 편집의 2가지 다른 방식으로 보여 준다. 2개의 모니터를 놓고 편집실에서 볼 때 이미지와 1개의 모니터로 볼 때의 이미지가 어떻게 다르게 다가올 수 있는지에 대해서 분석한 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하룬 파로키의 '비교']


▶비교(2007), 2채널 비디오
전시장 벽면에 걸린 대형 LED모니터 2대에서는 벽돌을 만드는 영상이 보인다. 한쪽은 아프리카와 인도에서 수공업으로 벽돌을 만들어 내는 현장을 촬영한 것이고 다른 한쪽은 유럽에서 기계로 벽돌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영상이다.

여성들이 흙을 가지고 맨손으로 벽돌을 빚어서 만드는 것과 기계가 똑같은 벽돌을 찍어 내는 영상을 볼 때 우리는 노동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하룬 파로키의 '평행 IV']


▶'평행 I~IV' 시리즈(2012~2014)

'평행' 시리즈는 4개의 작품으로 구성됐으며, 한 작품당 2개의 비디오 채널이 설치됐다. 전시장에서도 한 방에 4개의 작품이 각기 다른 벽면 앞에 전시됐다.
평행시리즈는 컴퓨터 애니메이션 이미지 장르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컴퓨터 애니메이션 이미지가 어떻게 발전해 가고 있는지와 영화 이미지가 애니메이션 이미지와 상호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본다.
실제 이미지와 애니메이션 이미지가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 분석하고, 아울러 영화 이미지가 가진 한계를 애니메이션 이미지를 이용해 어떻게 벗어나게 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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